#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정시후 씨(22)는 최근 건강검진 후 충격을 받았다. 당 수치와 혈압이 평균 대비 높게 나온 탓이다. 군대 시절부터 이어진 군것질이 신체에 악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후 정 씨는 생활 습관을 대대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지금 건강을 관리하지 않으면 나이 들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변화를 이끌었다. 당장 식습관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액상과당이 건강에 해롭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음료 선택에 신중해졌고 가능한 백미밥 대신 잡곡밥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근력운동에도 나섰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근육을 늘리는 것이야말로 돈 버는 일이라는 신조어 ‘근테크(근육+재테크)’를 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정 씨는 “평소 음료를 마실 땐 제로 슈거 음료만 구입하고 식당에서 콜라 같은 액상과당이 포함된 음료만 팔 때는 음료 대신 물을 마시려고 한다”며 “식습관도 바꿨다. 어쩔 수 없이 마라탕 같은 자극적인 음식을 먹게 될 때는 채소 위주로 골라 먹고 국물은 최대한 적게 마시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 경기도 수원에 사는 직장인 임찬묵 씨(30)는 주 2~3회 갖던 술자리를 월 1~2회까지 줄였다. 억지로 절주를 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건강을 우선시하는 또래 동료가 많아지다 보니 퇴근 후 음주보다 운동을 함께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다. 친구들과 함께 헬스장을 등록하고 매 주말 축구를 주기적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활 방식이 달라졌다. 최근엔 러닝크루 가입을 위해 각종 달리기 정보를 알아보는 중이다. 식습관에도 사소한 변화가 생겼다. 자취방에서 혼자 식사할 때는 주로 잡곡밥과 닭가슴살 위주로 식단을 꾸린다. 편의점에서 즉석밥을 구매하더라도 가급적 잡곡밥을 선택하고 샐러드 구매 빈도를 늘렸다. 임 씨는 “직장 동료들을 보면 확실히 젊은 세대에서도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며 “운동량을 늘리고 식습관을 바꾸면서 과거보다 몸 상태가 좋아지니, 더 무리 없이 운동을 하게 되는 선순환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대 불문하고 건강은 인류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무병장수부터 웰빙과 안티에이징에 이르기까지. 키워드는 달라져왔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계속 커지는 중이다.
최근 건강관리 화두는 단연 ‘저속노화’다. 말 그대로 노화를 늦추는 데 방점을 찍은 건강 트렌드다. 노화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최대한 천천히 건강하게 나이를 먹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특히 키워드에 반응하는 ‘연령대’가 달라졌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기존에는 노화를 눈앞에 맞닥트린 중장년 이상에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컸다면, 최근에는 2030세대 심지어 10대 사이에서도 ‘느리게 늙기’를 실천하는 분위기다.
과거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던 ‘100세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젊은 세대 위기감이 높아졌다. 노인으로 살아야 할 나날이 이전 세대보다 크게 늘어나며, 미리미리 노화를 늦춰놔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저속노화가 대세로 떠오르며 기업들도 저마다 관련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2030세대를 겨냥한 건강 식음료 제품을 잇달아 내놓는가 하면, 저속노화를 돕는다고 알려진 식재료와 건강기능식품 마케팅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웰빙 → 안티에이징 → 저속노화
나쁜 습관 없애기…20대 오히려 열광
저속노화 개념은 단순하다. 말 그대로 ‘천천히 늙기’다. 저속노화 이전 건강관리 패러다임과 다른 점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저속노화에서는 노화를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인정한다. 억지로 노화를 거스르려하기보다는 그 속도를 늦추는 데 집중한다.
실천법에 있어서도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골라 먹어야 한다’ ‘음식량을 줄여야 한다’ ‘운동을 최소 몇 회 이상 해야 한다’ 같은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설명이다. 억지로 생활 습관을 바꾸려고 하는 데서 나오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오히려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노화를 늦추기 위한 다소 느슨한 방식을 제안한다. 몸에 나쁜 음식 줄여가기, 운동량 늘려보기,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건강 식단 추구하기, 수면 습관 개선하기 등이다. 오랜 기간 지속 가능한 건강 관리를 위해 극단적인 변화를 지양하는 움직임이다.
과거 건강 패러다임과 비교하면 저속노화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00년대 ‘웰빙(Well-being)’ 그리고 2010년대 ‘안티에이징(Anti-aging)’과의 비교다.
웰빙은 다소 추상적인 느낌이 강했다. 영어 단어 뜻 그대로 ‘잘 살자’였다. 별다른 목적 의식이 있다기보다는, 건강에 좋은 음식과 기능식품을 찾는 정도였다.
안티에이징은 ‘항노화’에 주안을 뒀다. 노화를 인정하기보다는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봤다. 특히 외모 관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원푸드 다이어트 등 다소 극단적인 식단이 인기를 끌었고 보톡스·필러 같은 에스테틱 시술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저속노화는 영어로 ‘슬로에이징(Slow -aging)’이다. 단기 건강보다는 ‘건강수명’을 늘리자는 점에서, 또 외모 관리를 위한 일회성 다이어트나 시술보다는 생활 습관 개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웰빙·안티에이징과 다르다.
관심을 갖는 연령대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과거 건강 관리와 노화 방지는 주로 60대 이후 고령층 이야기로 여겨졌다. 특히 안티에이징은 노화를 극복한다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 이미 노화가 진행한 중장년 이상에서 관심이 컸다. 하지만 저속노화는 유독 2030 젊은 세대가 열광한다. 노화를 늦출 때 얻을 수 있는 절대적인 효용이, 고령층보다 청년층에서 더 크기 때문이다. 미리미리 노화를 늦춰놔야 앞으로 건강하게 활동할 시간이 훨씬 길어진다는 점에서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조기 노화’를 자각한 영향도 크다. 요즘 1020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10년에서 15년 앞서 성인병과 만성피로, 호르몬 불균형 같은 문제를 겪는다. 수면 부족, 열량이 높은 가공식품 식사, 과도한 스트레스, 디지털기기 노출 등으로 ‘가속노화’가 진행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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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저속노화 실천법은
밥·빵 대신 잡곡…술·카페인 줄이기
저속노화는 사실 딱 정해진 방법은 없다. 다만 의사 등 여러 전문가가 방송이나 저서를 통해 추천한 생활 습관 개선 방법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에서 활발히 공유되는 중이다.
식단은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더 나은 식자재로 대체하는 움직임이 주를 이룬다. 먹을 음식은 먹되 혈당과 콜레스테롤 염증 관리에 도움이 되는 식자재를 대신 선택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흰 쌀밥이나 빵 같은 정제 탄수화물 대신 렌틸·퀴노아·카무트·파로 등 곡류를 넣은 잡곡밥 먹기, 붉은 고기보다는 콩이나 그릭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으로 단백질 보충하기, 버터나 일반 기름을 쓰는 대신 올리브유로 요리하고 불포화지방산이 포함된 견과류를 한 줌 더 먹기 등이다.
카페인 섭취를 줄이기 위해 커피를 대체하는 음료를 찾는 것도 비슷하다. 일반 커피 대신 맛이 비슷한 디카페인 커피나 보리 커피를 택한다거나, 보이차·도라지차 등 항산화에 효과가 있는 음료로 대체한다. 음주량을 줄이고 술 대신 논알코올 음료를 마시는 젊은 세대도 많다.
전문가가 추천하는 식사 순서나 방식에도 관심이 쏠린다. 음식을 먹을 땐 채소(식이섬유) → 단백질 → 탄수화물 순으로 섭취해야 혈당 급등을 막을 수 있다. ‘간헐적 단식’도 저속노화 트렌드 중 하나다. 아침 혹은 저녁 중 한 끼를 먹지 않고 하루 16시간 공복을 지키는 ‘16:8’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충분한 수면 취하기, 스마트폰 사용 시간 줄이기 등 생활 습관 개선도 저속노화에 도움이 된다. 정희원 교수는 “장시간 스마트폰 사용이나 음주·흡연 등은 당장은 즐겁지만 결과적으로 내 몸이 더 강력한 자극을 원하게 만들어 노화 속도를 빨라지게 한다”며 “대신 책 읽기 같은 ‘노잼 활동’을 늘리는 게 도움이 된다. 집중이 쉽지 않고 끈기를 요구하지만 노화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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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가 이끌 사회 변화는
다음 트렌드는 ‘래디컬 론제비티’
젊은 세대가 저속노화에 관심을 두는 최근 분위기를 놓고 의사뿐 아니라 각계 전문가 대부분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다. 건강 유지와 체력 보존 등에 신경을 쓰는 현상이 개인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경제 활동 기간은 더욱 길어지고 생산과 소비도 더 늘어난다. 노년기 질병이 줄면서 건강보험 건전성 확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당연히 저속노화 기술이나 관련 산업 전망도 밝다. 저속노화에 관한 대중적 관심이 큰 상황에서 이를 겨냥한 다양한 마케팅 전략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특히 피부 관리, 체형 개선, 치매 예방 등 건강한 노년기를 위한 미용과 헬스케어 산업 수혜가 클 것이라는 예상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산을 많이 보유한 노년세대 입장에선 노화와 건강 관리가 생존 문제이기 때문에 관심과 투자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젊은 세대도 저속노화에 관심을 갖는 만큼 관련 산업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저속노화를 통한 급격한 수명 연장은 어렵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이미 인간은 포유류 중 가장 수명이 긴 종에 속한다. 저속노화 붐이 한창이지만 급격한 건강 수명 연장은 의학적으로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현대 사회 수명 연장은 위생 수준 향상에 의한 감염성 질환이 줄어든 영향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저속노화 뒤를 이을 다음 건강관리 트렌드로 ‘래디컬 론제비티(Radical Longevity)’가 꼽히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급격한 수명 연장’을 뜻하는 용어로, 생활 습관 개선을 넘어 기술을 활용해 ‘수명을 늘리자’는 개념이다. 노화를 되돌리자는 시도로 현대판 ‘불로장생’으로 불리기도 한다. 노화를 질병으로 간주하고 이를 치료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다.
전 세계 연구진은 이미 유전자 편집, 줄기세포 기술, 세포 재프로그래밍 등 첨단 바이오 기술을 활용해 노화를 되돌리고자 노력 중이다. 일본 생물학자인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이 분야 개척자로 꼽힌다. ‘야마나카 인자’로 손상된 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기술을 선보여 2012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신야 교수는 동물실험에서 세포를 재프로그래밍해 노화 흔적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부터는 망막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한다는 발표가 나와 관심이 더욱 뜨겁다.
‘텔로미어 연장’ 역시 수명을 늘리는 핵심 기술로 주목받는다.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과 함께 짧아지는 염색체 끝부분을 뜻하는 용어로, 인체 노화를 일으키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동물실험에서 텔로미어 연장을 통해 수명을 평균 13% 연장하는 성과를 거두면서 노화를 되돌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텔로미어 연장을 목표로 개발된 소분자 약물인 ‘Telomir-1’ 역시 올해 말 임상시험에 돌입할 예정이다.
앞서 여러 연구 성과에 힘입어 글로벌 빅테크 역시 래디컬 론제비티 시장에 뛰어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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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4/0000096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