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영화제 경쟁부문 韓작품 실종… 3년 연속 후보 못낼 판
10일 초청작 공식 발표하는데 경쟁부문 언급되는 韓영화 없어 2022년 ‘헤어질 결심’이 마지막
연상호 감독 ‘얼굴’ 초청 기대
롯데엔터도 ‘경주기행’ 등 출품
中日印 등 아시아 작품은 약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실종사태’라는 실타래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오는 10일 제78회 칸국제영화제 초청작이 공식 발표되는 가운데 3년 연속 ‘빈손’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크다.
한국 영화는 지난 2022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경쟁 부문에 후보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할리우드 리포터는 박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를 초청 가능성이 높은 60편 중 한 편으로 소개했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이 한국 영화 부진의 사슬을 끊어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결국 출품하지 못했다. 투자배급사인 CJ ENM 측은 “하반기 공개 예정이며, 현재 후반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어쩔수가없다’와 함께 조심스럽게 칸국제영화제 초청이 기대됐던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 역시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또 다른 ‘칸의 단골’인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이 초청을 기대하고 있다. 연 감독은 앞서 ‘돼지의 왕’(2012·감독주간), ‘부산행’(2016·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반도’(2020·공식초청) 등 세 차례 비(非)경쟁 부문 레드카펫을 밟은 바 있다.
2018년 공개했던 연 감독의 동명 만화를 실사로 옮긴 ‘얼굴’은 제작비 2억여 원이 투입된 저예산 영화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각(篆刻)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권해효)의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다. 배우 박정민은 어머니 죽음의 진실을 좇는 아들 임동환과 아버지인 임영규의 40년 전 모습을 연기하며 1인 2역을 소화한다.
연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이 사회의 혐오를 이겨내고 극복한다는 것의 의미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한 사회가 합심해 잊히게 만들고 싶었던 한 여자의 얼굴에 관한 이야기로 발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전지적 독자 시점’(감독 김병우)과 ‘경주기행’(감독 김미조) 두 편을 출품했다. 3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전지적 독자 시점’은 10년 이상 연재된 소설이 완결된 날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어 버리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판타지 액션 영화다. 배우 안효섭, 이민호, 블랙핑크 지수 등 내로라하는 한류스타들이 대거 참여해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 초청이 기대된다.
‘경주기행’은 막내딸 경주를 살해한 범인의 출소 날, 복수를 위해 경주로 떠난 네 모녀의 가족 여행기를 그린다. ‘기생충’의 주역인 이정은이 막내딸을 잃은 후 복수의 순간만을 기다려온 엄마 옥실 역을 맡았고 공효진, 박소담 등이 참여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은 양질의 한국 영화 생산을 가로막은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힌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직전인 2019∼2020년 초 충무로는 ‘기생충’의 성공을 기반으로 최고 성수기를 맞았으나, 이후 공급과 수요가 모두 폭락했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가 줄어들었고, 신진 감독의 발굴도 더뎠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맞았으나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과감한 투자나 제작을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 맞춰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높은 작품 제작에 치중한 결과”라면서 “영화진흥위원회나 문화체육관광부와 같은 기관 차원에서도 지원을 축소하면서 양질의 콘텐츠 제작이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한국 영화계의 침체는 다른 아시아 국가 영화들의 약진과 비교되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크다. 지난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끄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명가 지브리 스튜디오는 공로상에 해당하는 명예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기관이 이 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아울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경쟁 부문 심사위원을 맡았고, 야쿠쇼 고지가 폐막식 시상자로 무대에 오르는 등 일본 영화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중국 영화의 반격도 시작됐다. 2023년 4편이 칸국제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지아장커 감독의 ‘풍류일대’가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고 ‘검은 개’(주목할 만한 시선), ‘완성되지 않은 영화’(특별 상영), ‘월드 인’(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등 총 5편이 초청받았다. 아울러 인도 영화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은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쥐었다. 아시아 영화의 맹주였던 한국이 주춤하는 사이 타 국가의 영화들이 그 빈자리를 메우는 모양새다.
적절한 시점에 세대 교체 및 후발 주자가 등장하지 않은 점도 아쉽다. 약 20년 전부터 여전히 칸국제영화제를 언급하며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감독의 이름만 되뇌는 실정이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좋은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 젊은 감독들을 발굴하는 등 젊은 동력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쪽은 젊은 감독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경우를 찾기 어려워졌다”면서 “젊은 감독들의 과감한 도전과 이를 뒷받침하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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