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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9,013 16
2025.04.04 20:55
9,013 16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이기도 할까.

촛불의 가장자릴 흔들리게 할까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 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 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죽을 수 있지만, 어쩌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겠지만, 어쩌면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 들 속에.

다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이름만 걸어놓고 얼굴도 한번 안 비쳤던 유족회에 처음 나간 것은,

부회장이란 엄마가 돌린 전화를 받고서였다이.

그 군인 대통령이 온다고, 그 살인자가 여기로 온다고 해서….

네 피가 아직 안말랐는디.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특별히 잔인한 군인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처어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 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이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 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QKBHcc
한강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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