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애순과 양금명, 1인 2역을 연기한 아이유는 '폭싹 속았수다'에서 단연코 가장 많은 고생을 한 배우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유는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두 인물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던 것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그 둘 모두에게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유가 느꼈던 동질감은 우리 모두가 느꼈던 것이었다.
'폭싹 속았수다'(연출 김원석, 극본 임상춘)는 제주에서 태어난 '당차고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의 모험 가득한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넷플릭스 시리즈다.
아이유는 어린 시절의 애순과 애순의 딸 양금명 1인 2역을 맡았다. 방송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2일 오후,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아이유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아이유는 "너무 큰 반응에 행복하다"는 소감과 함께 인터뷰를 시작했다.
"너무 큰 반응을 보내주고 계셔서 기분이 좋고 행복해요. 인터뷰에도 이렇게 많은 기자분들이 찾아주신 것도 처음이에요. 작품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기뻐요. 처음에는 시청자 반응을 팔로우했는데 어느 순간 양이 엄청나게 많아지더라고요. 제 주변 분들 사이의 반응이 체감되기도 하고 무작위로 SNS에 뜨는 양도 많아 너무 감사하고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평소 임상춘 작가의 팬이었다는 아이유는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임상춘 작가와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 임상춘 작가의 제안으로 대본을 일찌감치 받아봤다는 아이유는 심상치 않았던 '폭싹 속았수다'와의 첫 만남을 소개했다.
"저도 이렇게는 처음이었어요. 제작이 확정되기 전에 작가님께서 '이런 글이 있는데 한 번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마침 저도 스케줄이 없어서 바로 작가님께 갔어요. 제작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톤도 조심스러우셔서 저도 회사에는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이 작품이 언제 만들어지든 참여해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임상춘 작가와 나눈 대화, 그리고 받아본 대본은 아이유에게 두근거림을 안겼다. 물론 캐릭터가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꼭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심어줬다.
"작가님이 전체적인 줄기와 이야기, 특별한 신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것만 듣고도 두근거렸어요. 대본을 읽어보니 설명해 주신 것보다 더 재미있더라고요. 글을 잘 써놓으시고 줄여서 말씀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님이 이야기해 주신 건 금명이의 결혼식 날 관식이의 눈에 어린 금명이부터 성인의 금명이가 지가나는 장면, 금명이가 출산하고 애순이와 관식이는 새봄이 보다 먼저 금명이를 보러 오는 장면 등이었어요. 사실 제가 처음에 받았던 분량에는 담기지 않았거든요. 그런데도 재미있으면 후반에는 더 좋겠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어려운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꼭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폭싹 속았수다'는 오애순의 일대기를 펼쳐놓듯 전개된다. 그 안의 배우들은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 이 자체로도 쉽지 않은데 오애순과 양금명을 모두 연기해야 했던 아이유로서는 그 어려움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애순이도 10대 때부터의 모습이 나오고, 금명이도 시간이 흐른 뒤의 모습이 나오잖아요. 나이대별로 달라지는 인간의 성장, 너무 다르지 않으면서도 역할이 나이 들어감이 보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제가 지나온 시간에 있어서는 저라는 인물을 투영하기도 했고, 그 이후에는 온전히 대본에 기대었어요. 임상춘 작가님의 대본은 신기하게 글을 읽으면 목소리가 들려요. 그렇게 몰두했던 것 같아요. 또, 모든 이야기 훨씬 이후의 시점으로 금명이의 내레이션이 나오기 때문에 그 목소리 설정에도 공을 들였어요. 제가 나이를 잊을 때마다 감독님이 '금명이는 50대 이후입니다'라고 주지시켜 주셨어요."
다만, 70대가 된 애순과 50대가 된 금명에 대해서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아이유 역시 "오래 상의한 장면"이라며 해당 장면에 대해 설명했다.
"감독님과 작가님도 오래 상의했고, 저와 소리 선배님과도 많이 회의를 했어요. 시간이 훌쩍 지났을 때의 모습이 낯설 수도 있고, 어색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50대의 금명이를 소리 선배님이 하시고 70대의 애순이를 또 다른 선배님이 하는 것도 후보에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대하사극처럼 이름을 띄워주는 것도 아니고 너무 헷갈릴 것 같아서 배우들이 분장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어요. 감독님께서 확신을 가지고 '요즘 50대분들은 관념적인 50대의 모습이 아니다. 게다가 금명이는 연예인까지는 아니어도 유명인의 관리를 받고 TV에 나가는 인물이다'라고 설득해 주셨어요. 제가 '새치라도 분장할까요'라고 물으면 '당연히 새치 염색했지'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듣고 보면 그 말도 일리가 있더라고요."
아이유는 시간의 변화와 동시에 오애순과 양금명의 차이도 그려내야 했다. 아이유는 자신이 생각한 오애순과 양금명의 차이를 설명하며 캐릭터를 구체화 시킨 방식을 설명했다.
"애순이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도 그늘이 생기지 않는, 인물 자체의 생명력과 강인함이 큰 캐릭터라고 느꼈어요. 힘든 역경이 있어도 그걸 극복해 내기 때문에 작품의 다른 누구보다도 센 거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금명이는 애순이보다는 덜 강하다고 느꼈어요. 금명이의 삶에는 그늘이 있는데 20대를 거치면서 나름의 방식대로 떨쳐나가는 게 제가 사랑하는 포인트였어요. 그게 가장 큰 차이였던 것 같아요. 결국 금명이도 나이가 들면서 성장하고 애순이에게 물려받은 강인함을 갖게 되는 거죠."
동시에 아이유는 오애순과 양금명 그리고 이지은 사이의 공통점도 발견했다. 아이유는 "어쩌면 애순이와 금명이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연기를 하면서 이 역할이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캐릭터에도 각자의 말투를 녹여주신 것 같아요. 애순이든 금명이든 저라는 인간과 많이 닮아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어쩌면 애순이와 금명이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닮아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애순이와 금명이 모두 꿈이 많고 긍정적 의미의 욕심이 많잖아요. 애순이가 '그 봄에 다 꺾였지'라는 말을 하는데 저는 애순이가 한 번도 꺾인 적이 없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시선에서 성공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순이가 성공하지 못한 인생이라는 감정은 들지 않았어요. 저도 욕심이 많고 지는 거 싫어하는데 못 이룬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고 나름의 맷집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금명이도 마찬가지였어요. 욕심이 더 부각된 캐릭터이긴 했지만, 출발점이 비슷하다 보니 모든 신이 납득이 됐고 저라는 인물을 투영하게 됐어요."
오애순과 양금명은 많은 모녀가 그렇듯 싸우고 또 후회한다. 두 캐릭터를 모두 연기한 아이유는 "양쪽의 입장이 이해가 갔다"라고 전했다.
"제가 연기한 인물이 키운 딸이 되어 저에게 모진 말을 하는 건 해본 적 없는 경험이었어요. 그래도 그런 연기를 하면 후회하는 속마음이 내레이션으로 나와서 이해가 안 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엄마한테 그러면 안 돼'와는 다른 영역이었어요. 사실 애순이와 금명이의 모든 신들에서 양쪽이 다 이해됐어요. 유학과 관련해서 두 사람이 통화를 하는 신이 있는데 기분 좋게 시작했다가 서로에게 거슬리는 한마디로 상처를 받고 싸움으로 번지는 그 흐름이 너무 현실적이었어요."
"광례-애순-금명-새봄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정말 아끼고 아껴서 써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금명이가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그 욕심을 꺾지 않는 모습을 본 새봄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금명이가 그럴 수 있던 이유는 애순이가 밥상을 엎어서 그랬던 거고, 애순이가 밥상을 엎을 수 있던 건 광례가 물질하며 애순이를 지켰기 때문이잖아요. 그런 메시지들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 같은 여성서사는 아이유가 지난해 발매한 앨범 'THE WINNING'의 수록곡 'Shh..'를 떠올리게도 한다. 아이유는 '폭싹 속았수다'를 촬영하지 않았으면 훨씬 늦게 나왔을 곡이라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Shh..'는 '폭싹 속았수다'를 촬영하지 않았다면 훨씬 늦게 나왔을 곡이에요. 언제나 머릿속에는 있었는데 구체화되지 않았던 것들이 '폭싹 속았수다'를 찍으면서 모녀의 이야기, 저에게 영향을 미친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로 구체화됐어요. 발매 당시에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는데 앨범이 발매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많은 분들이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Shh..' 라는 노래를 자연스럽게 떠올리시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신기했어요."
마지막으로 아이유는 '폭싹 속았수다'가 헤어짐을 대하는 방식에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작품이 전하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었다.
"한 인물의 일생을 다루다 보니 많은 헤어짐이 있고 그 헤어짐에서 인물들이 좌절하는 모습도 보여주거든요. 다만, 헤어짐 이후의 시간을 섬세하고 애정어린 시각으로 남아내는 게 대본을 읽은 독자로서 위안이 됐어요. 여러 방식의 헤어짐에서 슬픔에 방점을 찍지 않거든요. 사실 애순이도 관식이와 헤어지고 난 후에야 시집을 완성하잖아요. 삶이 왜 가치 있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명해 준다고 생각해서 큰 힘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