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NC파크에서 발생한 구조물 낙하 사고로 20대 관중이 사망한 것과 관련해 이날 현장을 목격한 야구팬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책임 있는 후속 조치가 트라우마 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조언한다.
ㄱ(23) 씨는 이번 낙하 사고로 다친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다만, 부상 정도가 비교적 가벼워 사고 직후 주변에 알리지도 않고, 별도 처치를 받지도 않았다. 현장이 이미 아수라장이어서 가벼운 부상으로는 처치를 요구하기도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오른쪽 무릎에 든 멍은 희미해졌지만, 머릿속에 남은 잔상은 더욱 또렷해졌다.
"낙하물이 제 바로 앞에 떨어졌어요. 저는 낙하물 끝부분에 무릎을 찧었는데 큰 부상은 아니었어요. 그때는 아픈 줄도 몰랐지요. 제 눈앞에 사람이 깔려 있었거든요. 일단 저랑 다른 사람 한 명이 낙하물을 치웠어요. 희생자분 머리에서 피가 너무 많이 났던 게 아직도 생생해요."
ㄱ 씨는 어렵사리 말을 이어갔다.
"사고 이후로 계속 기사를 찾아봤어요. 수술받았다는 기사를 본 뒤로 깨어났다는 기사를 기다렸는데…. 제가 본 기사는 사망하셨다는 기사였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제가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게 너무 죄송하고 죄책감이 들었어요."
사고 이후 ㄱ 씨의 일상도 멈췄다. 취업을 위해 하던 공부도 집중이 되질 않았다. 길을 가다가 무의식적으로 위를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ㄴ(28) 씨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 씨는 사고 직후 119에 직접 신고했다. 함께 있던 간호사 친구는 응급처치를 했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졌어요. 하늘에서 떨어진 물건을 치우고 보니 2명이 쓰러져 있었어요. 한 분은 한눈에 봐도 상태가 심각했어요. 친구가 응급처치를 하고 저는 근처에서 지혈할 물건을 찾다가 키친타월을 받아서 전달했어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ㄴ 씨는 오랜만에 고향 야구장을 찾았다. 하지만 이날 경기는 끝까지 볼 수 없었다. 사고 소식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에 야구장 안에서는 응원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사고 이후 아직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라 심장이 너무 쿵쿵거리고 손도 살짝 떨려요. 수술받고 회복되시는 줄 알았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바로 연차를 썼어요. 도저히 일을 할 마음이 안 생기더라고요. 도로에 붙어 있는 간판만 봐도 심장이 벌렁거려요."
ㄷ(14) 학생은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현장 근처에 있었다. 자리로 가는 길에 굉음을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지훈 학생이 본 현장은 참담했다. 보통 사고가 아니구나 싶었다.
"야구장이 바로 집 근처에 있어 평소에도 혼자 자주 가는데 그런 사고는 처음이에요. 사고 현장을 봤는데 그 순간 완전 패닉 상태가 됐어요. 피가 정말 많이 났거든요. 자려고 누워서 눈을 감으면 자꾸만 그날 현장이 그려져요."
지훈 학생도 다른 목격자와 마찬가지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부모님은 하늘이 도왔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제가 사고 지점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렀다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건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거를 보고 소리치면 아무도 안 다칠 수 있었잖아요."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트라우마는 초기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야구장은 사실상 공공장소입니다. 많은 분이 사고 장면을 봤을 가능성이 크지요. 그 경우 불면증이나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 등이 나타나는 것은 정상 스트레스 반응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증상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면서 일상에 지장을 초래하는 겁니다. 그때는 빨리 전문가 상담을 받는 게 필요합니다."
백 교수는 사고 책임자들의 빠른 후속 조치도 트라우마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고 책임자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트라우마 피해자 회복 속도에도 차이가 납니다. 사고 관련 정보를 숨김없이 공개하고 책임감 있게 수습할 때 피해자들도 마음을 놓고 회복할 수 있습니다."
구장 운영과 시설 관리 책임 주체인 창원시설공단과 NC는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NC 관계자는 "구단에서는 트라우마 피해자를 비롯해 이번 사고와 관련한 도의적인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창원시설공단 관계자도 "NC 측과 협의해서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