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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불바다' 천년 고찰 목욕탕서 버틴 소방관 11명, 동료들에 극적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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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3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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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고립 소방관 구출 작전 비하인드]
콘크리트 목욕탕에 대피시킨 지휘관 기지
방화복 하의·양말로 틈새 막고 2시간 버텨
동료 구조팀 도착해 대원들 전원 극적 생환
"같은 소방대원이지만 구조팀에 정말 감사"

25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경내 목욕시설에 대피 중인 소방대원 얼굴이 산불 화마에 의한 고온 열기로 땀범벅이 돼 있다. 고운사 현장 출동 소방대원 제공
대피! 전 대원 즉시 목욕탕으로!

25일 오후 4시쯤 경북 의성군 단촌면 등운산 자락 고운사. 산불 영향권에 든 '천년 고찰' 고운사 사수팀의 현장 지휘관인 이종혁 경산소방서 재난대응과장의 외침이 경내에 울려 퍼졌다. 사찰 전각들이 불타는 가운데 대원 10명이 대웅전 50m 앞에 콘크리트 외벽으로 지어진 '목욕탕'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그제야 이 과장은 거친 숨을 고르며 말했다. "인원 체크해봐! 다 있지?"

이번 산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 전각 30개 동 중 21개 동이 소실됐으며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과 가운루도 전소됐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스님 등 사찰 관계자와 소방대원들의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는 소방당국 '고운사 사수대'와 '최정예 구조대' 두 팀의 기지와 분투 덕이었다. 한국일보는 30일 두 팀을 전화 인터뷰해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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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경내 전각이 산불에 전소돼 잔해만 남아있다. 그 위로 동종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의성=연합뉴스

29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경내 전각이 산불에 전소돼 잔해만 남아있다. 그 위로 동종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의성=연합뉴스

목욕탕 '벙커'에서 피 말리는 2시간

25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경내 대웅전 50m 앞쪽에 외벽이 콘크리트로 된 목욕장이 설치돼 있다. 내부는 산불로 전기가 끊겨 깜깜했다. 이종혁 경산소방서 재난대응과장 제공

25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경내 대웅전 50m 앞쪽에 외벽이 콘크리트로 된 목욕장이 설치돼 있다. 내부는 산불로 전기가 끊겨 깜깜했다. 이종혁 경산소방서 재난대응과장 제공

고운사에 소방 인력은 24일 오후부터 본격 배치됐다. 경북 지역 4개 소방서(경산·예천·안동·문경)에서 온 대원 11명이 경내에서 소방호스를 이용한 살수 작업을 벌였다. 현장 책임자로 지정된 이종혁 과장은 우선 사찰 곳곳의 지형 지물을 파악했다. 그는 "산골 지형이라 (화염에) 갇히면 소방차로는 밖으로 빠르게 빠져나갈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맨 안쪽 대웅전에 다다르자 콘크리트 벙커 같은 건물이 눈에 띄었다. '목욕탕' 시설이었다. 문도 열려 있었고, 물이 나오는 걸 확인하고는 긴급 대피처로 찍어뒀다. 그는 다음날 오전 대원 10명을 모두 목욕탕 건물로 데려와 "내가 명령하면 앞뒤 보지 말고 목욕탕으로 내달려라"고 일러뒀다.

25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경내 건물들에 산불이 옮겨붙고 있다. 현장 소방대원 제공

25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경내 건물들에 산불이 옮겨붙고 있다. 현장 소방대원 제공

오후 3시 15분쯤 고운사 일대에 강풍주의보가 발효되자 불길의 확산을 우려한 대원들은 더욱 분주해졌다. 대원들은 당시 불상을 방염포로 둘러매고 사찰 밖으로 빼내려던 스님, 사찰 관계자, 인부 등과 현장 산림청 관계자에게 "위험하니 빨리 나가라"고 외쳤다.

스님 등이 사찰을 나간 직후 불길은 순식간에 산을 넘어 고운사를 덮쳤다. 이 과장은 대원들에게 "소방차량 시동을 끄고 공기호흡기를 챙겨 목욕탕으로 대피하라"고 주문했다. 이 과장은 모든 대원들의 대피를 확인한 뒤 목욕탕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곧장 119로 전화했으나 당시 빗발치던 신고로 5분을 기다린 끝에 "RIT(신속동료구조팀)랑 소방차량 최대한 빨리 좀 보내달라"며 지원을 요청했다.

대원들이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괴물 산불'은 사찰 곳곳을 삼키고 있었다. 목욕탕 벙커에도 연기가 들어찼다. 대원들은 특수방화복 하의를 벗어 물에 적신 뒤 문틈을 막고, 주위에 떨어진 양말을 주워들어 단전으로 멈춘 환풍기 틈을 메웠다. 화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작은 창을 통해 바라본 바깥 광경은 '불바다'였다. 고립이 길어질 수 있어 공기호흡기의 산소를 최대한 아껴쓰면서 극한 상황을 마주한 대원들은 점점 지쳐갔다. 한 대원은 지인에게 전화해 울먹였다. 이 과장은 "1시간만 지나면 우리는 다 손잡고 웃으며 나가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만 믿고 따라오면 살 수 있다"고 다독였다.

같은 시각, 소방상황실의 연락을 받은 '구조팀'이 동료들을 살리려 고운사로 내달리고 있었다. 가는 길은 고됐다. RIT팀으로 출동한 경북119특수대응단 3팀 소속 구조대원 7명(김남석 팀장·황기하 박두열 이윤호 강대현 황시철 이태건 대원)은 고운사 3㎞ 거리 마을 초입부터 강풍에 날리는 불티 탓에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차량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김남석 팀장은 애써 두려움을 감추려는 팀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자. 가족들한테 연락도 한번 하고"라고 얘기했다. 숱한 재난 현장에서 인명을 구한 베테랑들도 낯선 지형에서 동료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크게 긴장했다.

구조팀은 마을 초입에 들어선 지 30분 만에 고운사 입구에 도착했다. 김 팀장은 "입구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대원들과 연락이 닿아 피신 위치를 알게 됐다"고 했다.

25일 경북119특수대응단 3팀 대원들이 경북 의성군 고운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해 바라본 경내 전각이 전소되고 있다. 강대현 소방장 제공

25일 경북119특수대응단 3팀 대원들이 경북 의성군 고운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해 바라본 경내 전각이 전소되고 있다. 강대현 소방장 제공

두 팀은 마침내 저녁 6시쯤 대웅전 앞에서 만났다. 특수대응단 김 팀장과 강대현 대원은 "목욕탕에 고립된 11명 모두 '이제 살았다'고 안도하는 표정이었고 우리를 매우 반가워했다"고 말했다. 고운사 사수팀엔 화마가 덮칠지 모를 대웅전이 눈에 밟혔으나, RIT팀은 "입구에 있는 건물이 화염에 휩싸여 무너지면 퇴로가 막힌다"고 설득해 구조버스에 모두 태웠다. 구조된 예천소방서 송홍직 대원은 "검은 연기가 길 따라 내려오는 내내 자욱했다"며 "나오는 길이 더 불안했다"고 떠올렸다.

두 팀은 합심해 단 1명의 인명 피해도 없이 철수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그을린 머리카락, 박살난 대원의 휴대폰, 녹아내린 소방차량 경광등은 위급했던 당시 상황을 짐작게 했다. 송 대원은 "같은 소방관이지만 구조대원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이종혁 과장도 "문화재가 타는 걸 두 눈으로 봐 매우 안타깝다"면서도 "인명 피해가 없다는 걸 위안 삼는다"고 말했다.

https://v.daum.net/v/2025033104315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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