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오후 영양군 산보면 화매리.
마을 가장자리에 위치한 작은 밭에서 노인들이 묵묵히 모종을 심고 있었다. 불길이 덮칠 듯한 긴박한 순간에도, 그들은 마스크조차 쓰지 않은 채 땀방울을 흘리며 땅에 씨앗을 심고 있었다. 산불로 인한 재가 떠다니며 하늘의 해마저 가리고, 숨 쉬기조차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일을 멈추지 않았다.
농부의 철학을 지키는 파수꾼들은, 주름처럼 세월이 가득 담긴 거친 손으로 물을 뿌리는 기계를 들고 있었다. 한 줄기라도 생명을 키워내려 애쓰고 있었다. 내뿜은 물방울은 삶을 이어가려는 작은 몸부림이었고, 불길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모습이었다.
그와 함께, 불에 그을려 목줄이 끊긴 채 정적을 지키고 있는 강아지가 있었다. 불길을 피해 뛰쳐나온 강아지의 눈빛 속에서 마지막 남은 의지를 느끼게 했다.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었지만, 강아지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곁에 다가갔다.
산불로 인한 불안과 공포가 마을 곳곳을 뒤덮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그 어떤 두려움도 모종을 심는 손길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날씨는 여전히 덥고, 산불 연기 속에서 공기는 탁했지만, 묵묵히 일을 이어갔다. 그들이 심은 씨앗은 단순한 농작물이 아닌, 살아가려는 의지와 희망의 상징이었다. 마치 강아지가 불길 속에서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다시 다가온 것처럼, 그들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작은 생명도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한 어르신은 말없이 삽을 들고 흙을 고르고, 또 다른 어르신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굳은 얼굴로 씨앗을 심고 있었다. 그들의 손끝에서 삶은 더디게 움트고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살아가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주민 A씨(78)는 대피를 권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종을 심는다.”
그는 단지 씨앗을 뿌리는 것이 아닌, 삶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심고 있었다.
이 마을의 노인들에게 농사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일상이었고, 희망을 만드는 일이었다. 비록 산불이라는 큰 재난 속에서도, 그들은 농사라는 작은 일에 인생의 의미를 두고 있었다. 살아가는 이유는 단순했다. 내일을 위해, 희망을 위해.
영양의 산불이 지나간 뒤, 이 작은 마을은 아마도 조금 더 회복될 것이다. 씨앗이 땅 속에서 꿈틀거리며 농작물이 자라고, 삶 역시 다시금 뿌리를 깊게 내릴 것이다.
그들은 이 순간에도 살아가고 있다. 산불의 연기 속에서도, 희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이윽고 마침내,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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