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천년고찰 고운사가 대형 산불의 화마를 이기지 못하고 25일 오후 4시 30분께 전소됐다. 신라시대에 창건돼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온 대형 사찰이 무너지며 남은 이들에게는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손을 쓸 수 없던 상황에 대한 참담함이 남았다.
25일 고운사 부주지 정우스님은 대구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런 참담함을 느끼고 있다”며 “모든 것은 저희의 부덕의 소치로 돌리고 싶다”고 자책했다.
고운사에서 산불 확대를 확인하고 대피 조치에 나선 건 이날 오후 3시 50분께였다. 불이 확산하고 있는 산 정상과 고운사의 거리는 2㎞. 당시 순간풍속은 시속 20㎞로 불이 사찰까지 내려오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비상이 걸린 정우스님은 방송 장비가 없는 탓에 일일이 사찰 내부를 확인하며 “피해야 한다”고 목놓아 외쳤다. 신도와 스님 40여명을 산 아래로 대피시키고 돌아온 후에는 고운사가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전소 직전 가장 긴박했던 사안은 보물 제246호 ‘석조여래좌상’이다. 고운사는 방염포만으로는 화염을 이겨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즉시 인부들을 호출했다. 무거운 불상을 옮기는 데만 10여명이 투입됐다. 불상을 차에 싣자마자 불상을 실은 트럭을 제외한 주위에 대부분 불이 옮겨붙었고 인부들이 타고 왔던 차들도 모두 화마에 휩싸였다.
스님들과 신도들의 노력으로 고운사 내에 있던 보물과 유물들은 다행히 모두 인근 박물관과 절로 옮겨졌다. 스님들도 안동 봉정사로 몸을 이동한 상태다. 인근의 최치원 문학관은 현재까지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고운사는 신라신문왕 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대형 사찰 중 하나다. 신라시대 천년고찰로 보물과 유물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고운사 가운루는 지난 6월 20일 국가보물로 지정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쉰 목소리로 허탈한 웃음을 짓던 정우스님은 “고운사는 전국에서 불자들과 시민분들이 많이 찾는 절이었다. 우리가 힘들고 괴로울 때 즐겁고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되는 곳이 고운사였다”며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닦는 세심의 도랑이고 우리 스님들에게는 수행의 도랑이었다. 가운루가 지난해 보물로 지정되는 등 스님들이 애정을 갖고 지켜내온 절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고운사가 다시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저희 스님들도 협조하겠지만 불자나 대중의 힘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을 것이다. 국가적으로도 이런 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측면 속에서 하루속히 복원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류예지기자 ry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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