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엔믹스(NMIXX)'에 대한 K-팝 마니아들의 최근 호평은 치밀한 세계관과 그에 적확하게 부합하는 음악에서 나온다. '이지 리스닝'의 부상 속에서 기존 K-팝을 설계한 세계관이 안티 테제가 됐지만, 엔믹스의 3부작은 이 전복된 논리에 당당하게 맞선다.
최근 엔믹스의 활동은 '에스파(aespa)'와 함께 퓨처리즘 계열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에스파가 이미지적으로 완성된 콘셉추얼을 보여준다면, 엔믹스의 그것은 좀 더 서사화에 방점이 찍혔다.
'에프이쓰리오포(Fe3O4)' 3부작이 증거다. Fe3O4는 대기 중 산소와 만나 산화된 산화철의 화학식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특정하면 자철석(磁鐵石)을 가리킨다. 자기력이 있어 철이 달라붙는다. 고대 나침반에 이를 사용했다.
데뷔 초부터 배, 항해, 연대, 다양성 등을 팀의 주요 모티브로 삼은 엔믹스의 초창기 이미지에도 나침반이 등장하고, 자기력이나 자기장의 코드가 나타났다. 자성(磁性)은 엔믹스의 태생적 기질인 셈이다.
즉 작년 1월부터 7개월씩 간격을 두고 발매된 '에프이쓰리오포' 트릴로지는 그냥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엔믹스가 기반을 삼은 정체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성장이 결합해 재가동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획을 포함하면 약 2년 간 진행해온 프로젝트인 '에프이쓰리오포' 시리즈는 모험에 차질이 생기게 된 소녀들이 필드(FIELD)에 머물면서 시작된다.
시리즈의 1부이자 엔믹스 미니 2집 '에프이쓰리오포: 브레이크(BREAK)'는 벽을 부수는 '대시(DASH) 각성'이 빚어낸 자성(Magnetic Energy)으로 사람들을 더 많이 모으고자 시도했다.
이후 시리즈의 2부이자 미니 3집인 ' '에프이쓰리오포: 스틱 아웃(STICK OUT)', 시리즈의 피날레이자 최근 발매한 미니 4집 '에프이쓰리오포: 포워드(FORWARD)'까지 인위적인 연작이 아닌 텍스트로서 불가피하게 엮일 수밖에 없는 유기성을 보여준다.
벽을 부숴('대시') 자신들의 세상을 드러낸('별별별') 뒤 배를 복원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믹스 세계로 나아가는('노 어바웃 미(KNOW ABOUT ME)')는 3부작의 서사 과정은 점층법적인 고양감이 일품이다. 특히 '노 어바웃 미' 뮤직비디오 막판에 수면 아래에 있던 배가 솟구치고 공중에서 항해할 때 정경은 하늘·바다의 구별이 힘든데, 그건 엔믹스가 바라는 모든 것이 공존하는 이상형이 아닐까 상상하게 한다.
소셜 미디어에선 뮤직비디오 속 배를 만든 디자인팀이 설계도를 공유해 현실성을 부여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엔믹스와 이들을 제작하는 JYP엔터테인먼트 프로덕션은 이렇게 영영 만나지 못할 거 같던 고립됐던 이들의 세계에 소실점을 부여한다. 진보적인 영상의 매커니즘은 엔믹스의 팬덤 엔써의 기억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장면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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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계에서 3부작이 어느 순간부터 본질이 아닌 일종의 레토릭이 돼 버렸는데, 엔믹스의 균일하고 유기적인 프로덕션의 자성(磁性)은 탄탄한 서사를 만드는 데 안일했던 K팝계 자성(自省)을 촉구한다. '에프이쓰리오포' 3부작 합본을 바라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다. 이렇게 K팝 업계 3부작의 또 다른 분기점이 나왔다.
다음은 세 평론가의 엔믹스 이번 4집에 대한 전체 촌평.
김도헌 평론가
"세계관이 허물어지고 '이지 리스닝'이라 불리는 대중적 선율의 멜로디 중심 싱글이 강세를 보이는 근래 K-팝 시장의 흐름과 무관하게 그룹이 고집스레 지켜온 철학을 차분하고도 견고하게 다듬어 낸 작품이다. 트랩, 래칫 등 힙합 비트를 중심으로 브레이크비트, 하우스, 신스 팝 등 전자음악의 요소를 멤버들의 탄탄한 보컬 및 댄스 퍼포먼스로 결합한다. 이상향을 향한 노력, 정상을 향한 질주와 같은 주제 의식도 여섯 곡의 미니 앨범에서 유기적인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타협을 택하는 대신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정답이 없어진 시장에서 정답이라고 믿는 방향을 향해 돌진하는 대담함이 빛나는 작품이다."
김윤하 평론가
"힙합, 가스펠, 브레이크비트, 재즈를 마구 뒤섞은 첫 곡 '하이 호스'부터 이미 아무것도 타협할 생각이 없어보이는 점이 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앨범 마지막 곡까지 힘 있게 이어지는 이 패기는 결국 지난해 성공적이었던 싱글 '대시'로 문을 열었던 'Fe3O4' 시리즈 앨범 전체를 다시 순서대로 들어보고 싶게 만든다. 무엇보다 데뷔 당시부터 뛰어나기로 유명했던 멤버들의 보컬과 랩 능력치가 십분 발휘된 점이 가장 만족스럽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만큼 해낸 그룹 앨범은 K-팝에서 좀처럼 드무니까."
황선업 평론가
"좋은 의미로 도무지 평범한 구석이라곤 보이지 않는 작품이다. 첫 만남 당시에는 다소 당황스럽게 여겨 졌던 정체불명의 '믹스팝'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조금씩 깎고 다듬어 겨우내 완성형의 모습으로 선보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수록곡들이 각자 경험한 적 없는 공식으로 무장해 나아감에도, 그것이 전부 엔믹스라는 팀의 스펙트럼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장르의 교차를 통해 역동성과 서정성을 절묘하게 융합한 '하이 호스', 현악 세션의 절묘한 불협화음이 다른 공간에서 들려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골든 레시피'를 특히 추천하고 싶다. K-팝 그룹으로서 전례 없는 성취를 이끌어 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앨범."
이재훈 기자(realpaper7@newsis.com)
전문 : https://m.entertain.naver.com/article/003/0013135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