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해 보이는 아이의 방에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끝이 난다. 10대 여학생 목숨을 흉기로 앗아간 13세 소년 제이미의 방. 문만 닫으면 부모의 관심이 닿지 않던 이곳에서 소년은 범죄자로 컸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 울음이 아들 없는 방을 채운다. 4부작 영국 범죄 스릴러 드라마 ‘소년의 시간’(원제 Adolescence)이 13일 공개 이후 해외 언론 호평 속에서 넷플릭스 TV쇼 세계 1위(18일 플릭스패트롤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79국에서 1위다.
각 회차를 중간에 한 번도 끊지 않고 찍은 ‘원 테이크’ 촬영 기법을 비롯해 뛰어난 연기가 어우러진 공력 있는 작품이라는 평이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오늘날 청소년과 양육자, 가정과 학교의 위기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많은 국내외 학부모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비평가 추천 지수는 98%다.
“온라인 세계 따라가지 못하는 부모”
드라마는 조용한 인상의 소년 제이미가 흉기로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며 시작된다. 범죄 스릴러지만 ‘제이미가 진짜 범인인가’에 대한 해답은 금세 나온다. 핵심은 이 사건을 통해 돌아보는 현실이다. 범행의 동기를 밝힘과 동시에 교권이 무너진 학교의 혼란상, 부모도 교사도 알지 못하지만 10대에게 막강한 영향을 행사하는 온라인 세계의 폐해가 드러난다. 아들의 진짜 모습을 몰랐던 부모는 조용히 절규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드라마에 대해 “실제 가정과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과 많은 접점이 있다. 소외된 청소년들이 품고 있는 문제와 위험을 인식하게 하며 모두에게 교훈을 전하는 시리즈”라며 주목했다. 국적을 불문하고 시청자 사이에서도 요즘 부모와 자녀 사이 현실을 보여줘 공감된다는 평이 쏟아졌다.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의 속도가 너무 빨라 어른들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통제하고 가르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같은 후기와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제작자이자 제이미 아버지 역을 연기한 배우 스티븐 그레이엄은 “이 작품의 목표 중 하나는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또래, 인터넷, 소셜미디어로부터 어떤 압박을 받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며 “시청자들이 ‘우리 가족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바랐다”고 했다.
“더 잘했어야” 부모의 후회로 끝나
전반부는 호흡 느린 범죄 스릴러같이 느껴질 수 있지만, 후반부 3~4화는 제이미의 내면과 제이미 가족의 심리를 탁월하게 조명한다는 평이 나온다. 제이미 마음속 악마의 실체가 임상 심리학자가 제이미와 면담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열등감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폭력성으로 튀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혐오적 사고가 아이의 얼굴에서 나온다. ‘제이미의 아버지에게 폭력성 문제가 있는가’도 스릴러의 한 축이지만 평범한 가정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닫힌 아들의 방문을 열고 더 대화했어야 했다는 아버지의 후회와 미안함으로 드라마는 끝이 난다.
촬영 당시 14세의 나이로 제이미를 연기한 배우 오언 쿠퍼는 이 작품이 첫 출연작이지만 제이미 감정의 진폭을 소름 끼치게 연기해 에미상 후보 등에 오를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아버지 역의 그레이엄과 심리학자 역의 에린 도허티의 호연도 돋보인다. 필립 바란티니 감독의 ‘원 테이크’ 촬영 방식도 알고 보면 흥미진진하다. 1시간 분량의 한 회차를 끊지 않고 촬영했다. 장소를 옮기는 차 안에서도 연기를 이어가고 드론으로 카메라를 날려 이동하기도 한다. 배우들은 “많은 연습을 통해 인물에 완전히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