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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국공립어린이집을 들여와? 거지야?" 맞벌이 부모 눈물 짓게 한 '혐오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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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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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지난해 10월,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에 종로구청이 보낸 공문 하나가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교회가 운영해온 인근 민간 어린이집이 폐원 예정이니 아파트 단지 내부로 이전하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어린이집에는 이 아파트 영·유아 14명이 다녔는데 갑작스레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학부모들은 애가 탔다. 이 같은 민원을 접수한 구청이 이를 아파트 단지로 옮기는 안을 제안한 것이다. 구청 측은 "일단 민간 어린이집을 아파트로 이전한 뒤 국공립 전환 절차를 밟겠다"고 덧붙였다. 이 아파트 주변에는 규모가 큰 회사가 여럿 있는 까닭에 젊은 맞벌이 부부가 많이 거주한다. 50명 남짓한 영·유아가 살아 어린이집 수요가 있다는 게 구청 측 판단이다.

입대의는 곧 절차를 밟았다. 내부 회의를 거쳐 "우리 단지 어린이와 학부모가 맞닥뜨린 어려움 등을 감안해 입주자 동의 여부를 투표하자"고 의결했다. 이 아파트 관리규약상 단지 내 공유공간을 용도변경해 어린이집을 만들려면 입주자 투표를 거쳐 과반이 찬성해야 한다. 공유공간은 입주민들이 1/n씩 지분을 소유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선거관리위원회도 이에 동의해 같은 해 12월 2~5일 투표를 하겠다고 주민들에게 공고했다. 입대의는 법에 따라 찬성이 많으면 어린이집을 짓고, 반대가 많으면 없던 일로 할 계획이었다. (...) 

 

 

공청회는 난장판이었다. 일부 극렬한 반대 주민들이 비난을 퍼부었다. "근처에 다른 어린이집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아파트 안에 만들려고 하느냐"고 따진 건 점잖은 편이었다. 재산으로 계급을 나누며 상대방을 공격했다. 어린이집 설치를 찬성하는 주민들에게 "너희들이 거지야? 돈이 없어서 (국공립어린이집을) 여기에 가져와?"라거나 "영어유치원(유아 영어학원)이면 몰라도 국공립어린이집은 안돼"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자리에 있던 워킹맘 입주자 C씨는 "가장 충격적인 말은 '국공립어린이집에 차상위계층 애들이 들어올 수 있으니 우선 입소권이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반대 주민들은 입대의 해임요청안도 제출했다. 입대의에 속한 동대표들이 △고의·중과실로 공용시설물을 없어지게 하거나 파손해 입주자에게 손해를 끼쳤고 △용역업자 선정 때 해당 업체에 입찰정보를 제공하거나 입찰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었다. 이에 아파트 선관위는 "명백한 해임 사유를 확인할 수 없다"고 봤다.

입대의 관계자는 "주민들이 투표해 반대가 많으면 어린이집을 만들 수 없는데 투표 자체를 못하게 하는 건 비민주적 행태"라며 곤혹스러워했다. 압박에 시달리던 기존 입대위원 1명과 선관위원 3명이 그만두기도 했다.

갈등에 휘말린 건 주민뿐만이 아니었다. 아파트 관리 직원들이나 저출생 대응 업무를 하는 공무원들도 온갖 '갑질'에 시달렸다. 일부 반대 주민들은 아파트 관리업체 임원과 가진 면담에서 "생활지원센터장(관리사무소장)이 입대위와 한몸이니 교체해달라"며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오는 8월 관리업체 재계약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취지의 요구를 했다. 관리소장도 면담 자리에 앉아 자신을 비난하는 모든 대화를 들어야 했다.

노동 문제 전문인 권두섭 변호사는 "공동주택관리법 65조에 따르면 입주자 등은 관리사무소장에게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협박 등 위력을 사용해 정당한 업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만약 이런 행위를 당했다면 관리사무소장은 지자체장에 이를 알려 사실 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 또, 지자체장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면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다.

구청의 어린이집 담당 공무원들도 표적이 됐다. 반대 주민들은 민원을 넣어 "팀장을 직위해제하라"거나 "팀장이 승진 욕심에 무리하게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 설치를 추진한 것이 의심되니 감사해달라"고 구청에 요구했다. 하지만 구청 감사팀은 담당 팀장이 어린이집 관련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주장한 문제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팀장은 계속 어린이집 업무를 맡고 있다.

 

아파트가 전쟁터처럼 변해버린 사이 "어린이집 이전 비용을 6,000만 원까지 지원해주겠다"며 폐원을 미루던 교회 측도 두 손을 들었다. 12월 말까지 아파트로 이전이 결정되면 비용을 지급할 예정이었으나, 일부 주민 반대로 미뤄지자 결국 올해 2월 문을 닫았다.

거처를 잃은 어린 아이들은 다른 어린이집들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번 사태의 여파로 최근 다른 아파트로 이사한 한 워킹맘은 "어린이집에 다닌 14명 중 4명이 이사를 갔다"며 "일부 주민들이 조성한 공포 분위기 탓에 안전을 위해서라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반대 주민들은 "아파트에서 600~900m 내에 있는 다른 기관·민간 어린이집을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하지만 영유아 부모들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유모차를 끌고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에 어린이집이 충분히 없다면 날씨가 궂은 날엔 어려움이 큰 데다 맞벌이 부부들에겐 바쁜 출근길에 아이를 매번 차로 데려다주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공립어린이집 설치를 반대하는 한 주민은 본지 통화에서 "인근 공공기관 어린이집에서 주민 자녀도 받아주는 등 시설이 충분한데 국민의 세금으로 국공립어린이집을 더 지어야 하느냐"고 말했다. 실제 이 아파트의 몇몇 아이들이 공공기관 어린이집에 다니지만, 입소 우선순위에서 밀려 어려움이 있다. 반대 주민들을 대표하는 비상대책위원회의 회장은 본지 기자에 "어린이집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는 105동 주민의 상당수가 반대한다"며 "그 이상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아파트 내 국공립어린이집 설립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아파트 입주민은 "젊은층이 아이를 안 낳는 이유 중 하나는 회사 업무와 육아라는 두 가지 일을 마치 저글링하듯 잘 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며 "아파트 내 국공립어린이집 설치가 이런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내주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604370005190?di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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