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자를 넘어 전 세계인에게 '악마'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이름, 루시퍼
동서고금 수많은 콘텐츠에서 신에 대적하는 존재로 등장하는 루시퍼지만, 진실은 다소 맥 빠진다
성경에서 '루시퍼'는 인명이 아니며, 애초에 악마를 지칭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단어 lūcifer(lucifer, 루치페르)는 5세기에 나온 라틴어 성경에서 유일하게 등장한다.
구약 이사야서 14장 12절인데, 이는 '샛별', 즉 '금성'이란 뜻이다.
이 lucifer를 인명과 같은 고유명사로 착각한 데서 이 모든 해프닝이 빚어졌다.
영어로 샛별이라고 번역하는 대신, 그대로 lucifer로 남겨놓고 악마의 이름이라고 우기게 된 것이다
다행히 현대 영어 성경에선 'Morning star'나 'Day star'등으로 올바르게 번역하고 있다.
진짜 고유명사였다면 애초에 라틴어 성경에서부터 Lucifer라고 대문자로 쓰였어야 한다.
쉽게 비유하면, 어떤 외국인이 '빛나는 샛별은 아름답다'는 문장을 잘못 이해해 "'샛별'은 절세미인의 이름"이라고 자기 나라 말로 재생산해온 꼴이다
이 lucifer는 거슬러 올라가 그리스어 성경에선 Ἑωσφόρος(에오스포로스)로 쓰였는데, 이는 역시 '금성'을 뜻하는 단어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 근본인 히브리어 성경에선 הֵילֵל(헤이렐)로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빛나는 자'.
즉 천체에서 태양과 달 다음으로 환하게 빛나는 '금성'을 일컫는 말이다
그럼 이사야에서 이 '금성'에 비유되는 대상은 누구냐?
바로 타락천사도 악마도 아니라 인간인 '바빌론의 왕'이다
이사야서 14장은 가장 빛나는 별 금성처럼 영광과 권세를 자랑하던 오만한 바빌론 왕이 처참히 몰락하는 모습을 조롱하는 내용이다
바빌론뿐 아니라 아시리아의 멸망과 필리스티아에 대한 언급도 있다.
즉, 이는 유대인을 노예로 부리는 바빌론 등의 비참한 말로에 대한 통쾌함이 느껴지는 대목일지언데
맥락에도 안 맞는 타락천사나 악마가 갑자기 왜 튀어 나오겠는가?
단순히 '하늘에서 저승으로 떨어졌다'는 비유에 천착해 사실은 악마에 대한 은유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는데, 루시퍼의 뜻이 '금성'이란 걸 진즉에 알았으면 이런 끼워 맞추기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lucifer가 진짜 '악마의 이름'이 맞다고 친다면, 성경 내용은 그야말로 코미디가 돼 버린다
라틴어 성경에는 이 lucifer라는 단어가 3번이나 더 등장하는데, 모두 '악마'로 바꿔 읽어보자
"거룩한 빛 속에 네가 나던 날, 주권이 너에게 있었으니, 악마가 돋기 전에 이슬처럼 내 너를 낳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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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나날을 대낮보다 환해지고 어둠은 악마처럼 밝아질 것이네"
희망적인 내용에서 갑자기 호러물로 변한다
"여러분 마음 속에 동이 트고 악마가 떠오를 때까지는 어둠 속을 밝혀주는 등불을 바라보듯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슨 놈의 예언 말씀이 이렇단 말인가?
심지어 여기서 lucifer(샛별)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 혹은 그의 재림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많다
물론 루시퍼가 인명으로 쓰인 적이 아예 없진 않다
하지만 결코 악마의 이름은 아니었다는 게 확실한 이유가 있는데
바로 루시퍼라는 이름을 쓴 인물 2명 모두 로마 제국(이탈리아)의 주교인데다가 한 명은 무려 성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친 사람이라도 본인이 성직자인데 악마 이름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탐욕의 악마 이름으로 자주 사용되는 '마몬' 역시 고유명사가 아니다
그냥 '재물'이란 뜻의 히브리어 단어일 뿐이다
ㅊㅊ다음카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