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당신이 잘살기를, 당신의 아름다운 꿈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2008년 3월13일. 결혼 한 달 만에 남편 폭행으로 숨진 19살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 후안마이씨가 생전 남편에게 쓴 편지글이 세상에 공개됐다.
그는 이 편지를 끝으로 한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이는 허무하게 부서졌다.
후안마이씨는 2006년 12월 한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47세 한국 남성 장모씨와 만났다. 결혼정보업체는 장씨를 번듯한 직장인으로 소개했고 한국에 같이 살 집도 있다고 했다. 이 말을 철석같이 믿은 후안마이씨는 2007년 5월16일 충남 천안시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번듯한 직장인이라던 장씨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신혼집은 지하 월세방에 살림 도구 하나 멀쩡한 게 없었다. 후안마이씨는 이 모든 걸 한국에 오고 나서야 알게 됐다.
장씨는 후안마이씨 외출을 극도로 통제했다. 후안마이씨는 "남편과 더 대화하고 싶다"며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부탁했지만, 돌아온 건 끔찍한 폭력이었다.
후안마이씨는 여기에 시어머니의 이유 모를 구박과 모욕까지 견뎌야 했다.
후안마이씨는 결국 결혼 한 달 만인 그해 6월26일 여권과 옷을 챙겨 베트남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출국길에 술에 취해 귀가한 장씨와 마주치면서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장씨는 짐승처럼 후안마이씨를 때렸다. 후안마이씨 갈비뼈 18개를 부러뜨려 숨지게 했고, 이를 방치한 채 현장에서 도주했다.
경찰은 장씨 집에서 후안마이씨가 사망 전 베트남어로 쓴 편지를 발견했다.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한국 사람들 삶에 대해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에서도 부인이 기뻐 보이지 않으면 남편이 그 이유를 물어보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남편은 왜 오히려 아내에게 화를 내는지, 당신은 아세요.
저는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당신은 왜 제가 한국말을 공부하러 못 가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대화하고 싶어요. 당신을 잘 시중들기 위해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마시는지 알고 싶어요. 당신이 일을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건강은 어떤지 또 잠은 잘 잤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당신은 사소한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화를 견딜 수 없어하고, 이혼을 말하고, 당신처럼 행동하면 어느 누가 서로 편하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겠어요.
저는 당신이 저 말고 당신을 잘 이해해주고 사랑해 주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오기를 바래요. 당신과 전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이어서 제가 한국에 왔을 때 대화를 할 사람은 당신뿐이었는데."
장씨는 도주 두 달 만에 경찰에 검거됐다.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그는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장씨는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지만, 항소심 역시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을 맡은 대전고법 형사1부(재판장 김상준)는 후안마이씨 편지 내용을 판결문에 담고, 그에 대한 답장처럼 판결문을 써 내려갔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19살 나이에 서로 이해하고 위해 주는 애틋한 부부 관계를 꿈꾸고 한국에 왔지만 남편의 배려 부족과 어려운 경제 형편, 언어 문제로 원만한 결혼생활을 누리지 못했다"며 "결국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려고 한 게 장씨가 '사기 결혼을 당했다'고 착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책임을 장씨에게만 물을 수 없다며 "장씨가 베트남 현지에서 졸속으로 아내를 만나는 과정을 보면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우자가 될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도, 알고자 하지도 않은 채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배우자를 선택했다. 이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 대하는 우리 사회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21세기 경제대국의 허울 속에 갇힌 우리는 19살 후안마이 작은 소망도 지켜 줄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며 "이 사건이 장씨에 대한 징벌만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주여성긴급전화센터가 설치되고 국제결혼중개업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