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심에 관심 가지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어.
전문 읽어봐줘. 전문은 링크에 ↓↓
https://n.news.naver.com/article/308/0000036319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132
10·26 사건에 대한 재심이 결정됐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 사건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까? 김재규의 조카 김성신 교수가 생각을 밝혔다.
김성신 한양대 겸임교수(56)는 종종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어?”라는 반응을 접한다. 출판평론가로만 알려진 그가 김재규의 조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김 교수의 어머니 김정숙씨는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셋째 여동생이다. 2020년 김정숙씨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함께 김재규 재판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5년여 뒤인 지난 2월19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는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10·26 사건 후 46년 만이다.김성신 교수는 고령인 모친을 대신해 유족 입장을 알리고 있다. 김 교수가 말하는 이번 재심 청구의 주된 목적은 김재규라는 개인의 명예회복이나 고초를 겪어온 가족들의 해원(解冤)이 아니었다. 더 장기적 목표는 “역사적 상식”의 변화이다. 한국 사회가 10·26을 ‘주군에 대한 패륜 행위’도 ‘유신 2인자가 벌인 궁중 권력 다툼’도 아닌,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긍정적 사건으로 인식하길 바란다. 김 교수는 재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러한 변화가 곧장 시작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100년, 150년 뒤 역사적 평가를 위해 남겨두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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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청구의 목적은 김재규의 명예회복인가?
당연히 판결을 통해 당시 재판이 잘못됐다는 점이 밝혀지고 복권되어 외삼촌이 명예로워진다면 그것은 큰 진전이다. 10·26 재판은 절차에 하자가 많다. 고문을 했고, 보안사가 개입한 데다,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는데도 군사재판으로 진행한 것 또한 잘못이다. 내란 목적이란 부분이 빠질 뿐만 아니라 무죄가 나올 가능성도 우리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의 명예회복만 좇고 있는 건 아니다. 내란죄 혐의를 벗는다고 45년 전에 돌아가신 분이 살아 돌아오시지는 않는다. 재심을 청구하게 된 더 큰 이유는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10·26 의인들’을 위해 매해 추도식을 열고 계신 함세웅 신부님이나 녹취 테이프를 확보하고 재심 아이디어를 낸 봉지욱 기자, 수년간 이 사건에 대해 보도해온 정희상 전 〈시사IN〉 기자(현 편집위원), 민변의 이상희·이영기·조영선 변호사 등 많은 분이 오랫동안 힘써주었다. 이분들 외에도 적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이 ‘10·26과 김재규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재심을 통해 “당신들의 신념이 옳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게 우리에겐 큰 의미다.
승소하면 그 생각이 입증될까? 만약 패소하면 틀린 것인가?
판결은 중요하다. 하지만 재판 결과에 모든 걸 걸어놓고 있지는 않다. 최종 목표는 10·26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대한민국의 역사적 상식으로 채택되는 것이다. 현재 10·26에 대한 견해는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의거’ ‘유신 2인자의 권력투쟁’ ‘주군의 권력을 빼앗으려 한 패륜’ 세 갈래로 갈려 있다. 나는 역사적 맥락상, 봉건제나 다름없던 나라가 현대적 민주주의 국가로 이행하기까지 10·26과 김재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짚고 싶다. (10·26 이후) 45년이란 시간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긴 세월이지만 역사를 기술하기에는 너무 짧은 간격이다. 우리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 사건을 객관화하기 어렵다. 10·26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상식이 되는 것은 일러도 100년, 150년 뒤 일로 생각한다. 후대 사람들이 기록을 통해 객관적으로 시대를 들여다보고 사건을 평가할 것이다. 그들을 위해 남기는 기록 중 하나가 이번 재심 절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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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집권과 탄핵, 윤석열의 계엄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인물을 가족으로 둬 정치에 좀 더 관심을 지니며 살아왔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이나 윤석열의 계엄은 우리 사회에 이미 내재한 모순이 떠오른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이들이 갑자기 꺼낸 게 아니라, 저런 사람에게 기꺼이 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있는 한 얼마든지 벌일 수 있는 악행이었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이런 환부를 끊임없이 찾아내고, 고치고, 버리면서 이루어졌다. 장마철 폭우가 쏟아지면 평소 맑게만 보였던 강물이 뒤집힌다. 강바닥에 있던 온갖 오물이 물 위에 떠오른다. 지금은 그런 시기다.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한번 오물을 청소하고 나면 또 한동안은 후대에 깨끗한 강을 물려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탄핵 집회에 나온 젊은이들을 ‘기특하다’고 보는 관점은 잘못이다. 그들은 이미 역사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그 의미는 윤석열이 저지른 악행 자체보다 훨씬 무겁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