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공개에서 일일예능으로
"우리 《홍김동전》을 넷플릭스에 받아주신 유기환 총괄 매니저님."
넷플릭스 예능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에서 방송인 홍진경은 촬영 현장을 찾아온 유기환 넷플릭스 총괄을 보자 대뜸 이런 말을 전했다. 홍진경의 말대로 《도라이버》는 KBS에서 시청률 난항으로 안타깝게 폐지됐던 《홍김동전》 출연자와 제작진이 넷플릭스로 옮겨와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도라이버》라는 제목에서 풍겨나는 뉘앙스처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멘트들과 행동들로 기상천외한 웃음을 준다.
홍진경의 말끝에 개그맨 조세호가 덧붙이는 이야기가 의미심장하다. 조세호는 "일단은 우리가 내년 초까지는 좀 약속을 해서…"라고 말했다. 물론 진짜 방송이 약속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는 《도라이버》가 그간 넷플릭스에서 해왔던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제작·편성되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매주 제작 및 방영되는 방식으로, 지상파들이 해왔던 고정 예능 프로그램들의 방식 그대로라는 것이다.
구독자 확보보다 유지가 중요해진 넷플릭스
최근 넷플릭스는 '일일예능'이라는 색다른 편성을 선보이고 있다. 일주일에 한 편씩 공개하는 예능 프로그램 5편을 동시에 내놓았다. 그간 한 번에 전편을 공개하는 편성 전략을 고수해 왔던 것과 차이가 있다. 어찌 보면 지상파의 편성 방식처럼 보이는 이 방식은 무얼 말해 주는 걸까. 넷플릭스는 왜 이런 '지상파스러운' 편성의 변칙을 시도한 걸까.
현재 넷플릭스에선 월요일 《동미새: 동호회에 미친 새내기》, 수요일 《추라이 추라이》, 목요일 《미친 맛집: 미식가 친구의 맛집》, 토요일 《주관식당》, 일요일 《도라이버》가 매주 방영된다. 모두 20~30분 남짓의 미드폼이다. 매주 방영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포맷을 가진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순발력 있게 만들어낼 수 있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토크쇼 기반의 프로그램이다.
이런 편성 전략은 지상파들이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시청자를 붙들어매기 위해 해왔던 방식 그대로다. 매주 방영되기 때문에 그 시간대를 기다려서 보게 만드는 방식이다. 일일예능을 시도한 지 약 2주 만에 그 파괴력은 국내 TV 톱10 순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대다수 프로그램이 방영되던 날 톱10에 진입한 것이다. 워낙 예전부터 OTT를 통해 반응이 좋았던 《홍김동전》처럼 《도라이버》의 반응도 좋지만, 성시경과 일본 TV 프로그램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 마쓰시게 유타카가 한일 양국의 맛집들을 소개하는 《미친맛집》은 한국과 일본 양국 넷플릭스에서 모두 반응이 뜨겁다.
일일예능 편성의 목적은 분명하다. 지상파가 시청자들을 붙들어매려 했듯이, 구독자들이 넷플릭스에 계속 머물게 하려는 의도다. 전편 공개 방식은 작품에 호기심을 갖는 구독자들을 단번에 유입시키는 데 용이하지만, 구독자들을 계속 머물게 하는 데엔 일일예능 같은 '쪼개기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도라이버》는 워낙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분명하게 세워져 있어 이들이 다음 회에는 또 어떤 기상천외한 웃음을 줄까가 계속 궁금해진다. 《미친맛집》 역시 한일을 대표하는 성시경과 마쓰시게가 어떤 한일 양국의 맛집을 소개해 줄지가 매주 궁금해진다.
격투기 선수 추성훈이라는 독보적 캐릭터의 토크쇼인 《추라이 추라이》나 입담 좋은 가수 데프콘이 다양한 동호회 체험을 하는 《동미새》, 게스트를 초대해 원하는 음식을 '주관식'으로 만들어 선보이며 토크를 나누는 최강록, 문상훈의 《주관식당》 모두 다음 회에 어떤 게스트들이 출연해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까가 기대된다. 매주 특정 요일에 지상파에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기다려서 보던 그 방식 그대로다.
일일예능 방식은 또한 그간 글로벌 OTT의 특성상 제작 기간이 길어 트렌드를 맞추기 어려웠던 난점 또한 해결해 준다. 예능 프로그램은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당장 무언가가 유행하면 그것을 재빠르게 프로그램에 가져와 웃음으로 녹여낼 때 그 효과는 커지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예능은 새로움이나 앞서간다는 느낌을 줘야 시청자들의 관심이 커진다. 하지만 넷플릭스처럼 전 세계 송출을 기본으로 하는 글로벌 OTT는 예능 프로그램도 《피지컬:100》이나 《솔로지옥》처럼 블록버스터로 제작되는 경향이 있고 제작 기간이 긴 데다 전 세계 언어로 자막을 입히는 후속 작업에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재빠른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일일예능은 매주 편성으로 분량도 짧다. 무엇보다 콘셉트가 캐주얼하다. 어찌 보면 유튜브 예능을 넷플릭스 버전으로 제작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니 순발력 있게 프로그램을 끌고 나갈 수 있는 강점이 생겼다.
넷플릭스는 OTT계의 지상파를 꿈꾸는가
이런 새로운 편성 전략이 단지 예능 프로그램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슬쩍 보여주는 건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편성 방식이다. 가수 아이유와 배우 박보검이 주연으로 출연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남다른 기대감을 품는 작품이다. 이처럼 화제성을 지닌 작품이 기존 방식인 전편 공개가 아니라 4주 동안 나눠 공개되기 때문에 거의 한 달간 넷플릭스 구독자들은 이 드라마를 기다려서 볼 수밖에 없다. 그만큼 화제성도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는 점을 보면 이런 공개 방식이 드라마와 넷플릭스에 그리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이전에도 넷플릭스는 쪼개기 방식의 공개를 해온 바 있다. 주로 파트를 나눠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더 글로리》가 파트를 1, 2로 나눠 시차를 둔 후 공개했고, 《경성크리처》도 마찬가지 방식을 시도했다. 그 역시 구독자를 계속 머물게 하려는 전략이었지만, 파트와 파트 사이의 공백이 작품의 연결성을 끊어버려 작품 자체에는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려웠다. 《폭싹 속았수다》는 전편 공개는 아니지만 매주 공개되어 연결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이런 단점들을 넘어서면서 구독자를 묶어두는 데도 효과가 있다.
《흑백요리사》는 예능 프로그램으로도 매주 공개 방식으로 구독자들을 계속 몰입하게 하고 화제성 또한 유지했던 전례를 만든 바 있다. 물론 넷플릭스는 여전히 전편 공개가 그들의 메인 편성 방식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프로그램과 나라별로 유연한 편성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는 건 예의주시할 만한 일이다.
당연히 이런 편성의 변화는 매주 방송을 추구해온 레거시 미디어들에는 적잖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가 지상파스러운 느낌마저 갖게 된다면 굳이 지상파를 찾아 방송을 볼 이유가 점점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최근 SBS와 제휴를 통해 《그것이 알고 싶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같은 레귤러 프로그램들을 매주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SBS가 먼저 시작했지만 이러한 제휴는 현재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지상파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만일 다른 방송사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면 어떨까. 넷플릭스라는 OTT를 통해 여러 방송사의 지상파 콘텐츠들을 그 편성 방식 그대로 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는 넷플릭스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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