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80년..."동료의 죽음" 전일본병이 본 비참한 전장
오자키 켄이치씨 96세.
얘기해 준 건, 80년 전의 "비참한 전쟁 체험"이었습니다.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아비규환의 지옥도를 봤어요. 『오자키…오자키…오자키…』라고 제 이름을 연호하고 숨이 막혔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라고
소년 통신병의 학교에 들어간 오자키씨.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종전 전 해(1944년) 여름방학 때 집에 왔을 때 찍은 사진"
○사쿠라이
"아직 천진난만하다고나 할까"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어린애네요."
이때가 16살.
전시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2학년때를 11개월에 졸업시키고, 명령받은 것이 「필리핀 파견」.

1944년 12월.
도착한 곳은 당시 옛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필리핀 루손 섬.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비행장이 있었어요. 일본군이 관리하고 있는. 그 비행장에 미군 전투기들이 폭격을 매일 했어요."
○사쿠라이
"매일?"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그런데 그에 대해 대공사격을 한다던가, 우군기가 요격한다든가 하는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미 패전 상태."
패색이 짙은 가운데 충격을 받은 일이.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악덕 무도한 일본군. 그런 군대인가 하고."

오자키씨에 의하면, 필리핀 게릴라들이, 구 일본군 병사를 습격해 살해.
그 보복으로서, 일본군이 마을을 덮쳤다고 합니다.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집에 흙발로 침입하는 거죠. 장롱을 잡아당겨 바닥에 뒤집어 엎어놓고. 금목걸이, 목걸이 반지, 그런 것들을 강제로 가져갑니다. 출정하기 전에는 가정이든 직장이든 성실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전쟁터에 가면 이렇게까지 변할 줄이야."
○사쿠라이
"뭐가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거죠?"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전쟁터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 군중심리도 있겠지요."
○ 사쿠라이
"군중심리"

그리고 1945년 1월 9일.
필리핀을 탈환하기 위해, 미군이 루손섬에 상륙.

이것은 수도 마닐라로 쳐들어가는 미군의 영상.
압도적 병력으로 많은 일본군이 목숨을 잃고 오자키씨의 부대는, 불과 한 달 만에 궤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자키씨는 「패잔병」으로서, 정글 속을 7개월에 걸쳐 도망다니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굶주림'과 '동료의 죽음'이었습니다.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먹을 게 없어요. 전혀 없어요"
○ 사쿠라이
"전혀..."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제로입니다. 산에 자라는 잡초. 잡초 속에서 먹을 수 있는 풀을 찾았습니다. 아사, 쇠약사. 그런 게 점점 늘었습니다."

더욱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는 미군의 공격으로, 동료들은 차례차례 목숨을 잃어 갔습니다.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갑자기 밤중에 박격포의 맹폭을 받았습니다. 아비규환의 지옥도를 봤어요. 30여 명이 숨졌습니다."
그 중에는 함께 필리핀에 온 통신병학교 동기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깜짝 놀라 안아올렸습니다. 턱이 없었어. 박격포 파편에 날아가서. 안아들고 몸을 흔들며 이름을 자꾸 부르면 나를 알아채고 혀가 잘 움직이지 않는 목소리로 『오자키...오자키...』라고 나의 이름을 연호하고는, 숨이 끊어졌어요."

극한의 상태 속에서, 고뇌의 결단을 강요당했을 때도…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산을 걷다가 우연히 만났어요. 산 쪽을 머리에 두고 다리를 내던지고 (앉아 있었다)"
기적적으로 재회한 것은,
같은 고치현 출신으로, 학교에서도 가장 사이가 좋았던 동기.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놀라서 이름을 불러 옆에 앉아서 얘기를 했는데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었어요."
○사쿠라이
"쇠약했다는 건가요?"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쇠약했네요. '나는 이제 여기서 죽을 수밖에 없다'고.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하고 등에 업어서라도 가려고 생각했는데,
'내버려 둬. 괴롭지 않아.' 라며.
나는 단장의 심정으로 돌아갔습니다만, 10m정도 걸어서 뒤를 돌아보고 그를 보고 손을 흔들었어요.
그도 손을 들었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죠."
9월.
미군이 뿌린 전단지로, 「일본의 패전」을 알고, 오자키씨는 투항.

오자키 씨에 의하면 함께 필리핀에 파견된 동료는 317명.
그중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10명.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우리 죽은 녀석들은요,
먹을 것이 없어 도망만 다니다가, 마지막에는 굶어 죽었습니다.
굶어 죽거나 쇠약해져 죽거나.
적어도 나만이라도 그 사실을 알리고 싶어요.
그것이 그들에 대한 제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쿠라이
"이토록 억울한 죽음을 더 많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다."
○전 일본병 오자키 켄이치씨(96)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게 제 소원입니다."
○사쿠라이
취재를 마치고 며칠이 지난 후
오자키 씨로부터,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추가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목소리를 내라,
어떤 행동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취재 당일도 직접 정리한 상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 동안 비참한 경험을 많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 취재를 마치고 추가적으로, 이렇게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정치와 시대의 흐름에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
그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말이라고 느꼈고요,
그 마음의 강렬함을, 단단히 받아들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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