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임시기가 제2차세계대전 중이었는데 암암리에 히틀러의 나치랑 각을 세웠다고 함 당연히 이를 몹시 짜증내던 히틀러는 교황을 독일로 끌고 오거나 숙청할 계획을 세웠다고 함
사실 이는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때부터 나온 이야기이다. 납치뿐만 아니라 아예 바티칸으로 쳐들어가서 바티칸을 불태우고 교황을 성 베드로 광장에 끌어내 총살시키려 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치아노의 일기나 당시 회의록을 보면 이탈리아가 자신의 뒤통수를 치고 연합군에게 항복한 것 때문에 화가 나서 말로만 그랬고, 부하들조차도 위험하다고 만류할 정도였다.

어쨌든 나치는 바티칸을 포위만 했을 뿐 그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교황청의 끄나풀이 어디까지 뻗어있을지 알 수 없으므로 교황청과 돌이킬 수 없이 척을 지지 말고 적당히 구슬러 이용하는 쪽이 낫기 때문이었다.
포위된 상황에서 연합군은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제 3국으로 교황을 피신시키는 게 어떠냐고 타진했지만 비오 12세가 자신은 로마 주교이므로 로마에서 순교하겠다며 바티칸에 남기를 고집하자 추기경들도 더러는 감동과 충성심으로, 더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바티칸에 남았다.
비오 12세는 "나는 끝까지 로마를 지키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원하면 떠나도 좋다"라고 말했지만 추기경 누구도 '교황 버리고 도망간 추기경'이라고 전세계적인 비난을 받으면서 역사에 영원한 오명으로 새겨지기는 싫었던 듯 모두 바티칸에 남았다.
이후 나치 기갑 사단이 교황청을 포위하자 교황은 근위병들과 나치군 사이 교전이 일어나면 근위병들이 전멸하리라 예상, 총포류 무장을 해제하라고 명령한다. 근위대가 아무리 정예부대라고 해도 겨우 수백 명의 병력으로 나치의 대군과 정면으로 교전하면 전멸한다는 건 불보듯 뻔하기 때문. 그래서 포위 당시 근위병들은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나치 군인들이 보는 앞에서 창을 들고 순찰을 돌고 경계를 섰다.



이러고 다녔다는 이야기와 몇몇은 최신 중화기로 무장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만약 히틀러가 교황을 죽였다면 그는 빼도박도 못하고 전세계의 가톨릭 신자를 적으로 돌렸을것이다. 거기다 그의 휘하에 있는 부하들조차도 이 일을 격렬하게 반대해서 결국은 포위를 풀고 물러가는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