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확정판결에도 정보공개 사실상 거부
뉴스타파와 참여연대는 지난달 13일, 대통령실을 상대로 낸 '대통령실 직원 명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날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려 직원 명단을 공개하도록 한 원심을 확정했다. 원심은 대통령실이 직원 명단, 구체적으로 대통령실 직원의 이름·소속부서·직책·직급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행정소송법 30조에 따라 정보공개 행정소송에서 패소한 대통령실은 '재처분 의무'를 진다. 이제 대통령실은 직원 명단 공개하거나, 아니면 재판에서 기각된 비공개 사유가 아닌 새로운 사유를 들어 또다시 비공개하거나 재처분을 해야 한다. 물론 실제 정보공개 행정소송에서 최종 패소하고도 또 비공개 처분을 하는 기관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기관은 원고 측에 연락해 언제, 어떻게 자료를 공개할지 안내한다. 일반적이라면 대통령실은 소송 대상이었던 2022년 8월 기준 직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대법원 확정판결로부터 한 달 가까이 흐른 현재까지 정보를 공개하기는커녕, 어떠한 의사도 밝히지 않았다. 연락 한 번 없었다. 뉴스타파는 지난달 14일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에게 연락해 확정판결 사실을 알렸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행태다.
뉴스타파와 같은 날 대법원에서 정보공개 확정판결을 받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도 대통령실 직원 명단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법원 판결에 따라 직원 명단을 공개해야 하지만 대통령실은 지금껏 아무 조치도, 연락도 없는 상태다.
강성국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상식적으로 직원 명단은 정보량이 많지 않아 의지만 있다면, 하루 안에도 공개할 수 있다"며 "대통령실은 업무용 전화번호나 팩스 번호, 이메일 주소가 공개되지 않아 먼저 연락할 수도 없다. 대통령실이 이런 점을 악용해 정권의 치부를 감추려 국민 알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2년 8월 대통령실은 뉴스타파가 정보공개를 청구한 '대통령실 직원 명단'에 대해 비공개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지난달 13일 대법원 확정 판결로 해당 처분은 취소됐다.
직원 명단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대통령실의 '꼼수' 의심
뉴스타파는 대법원 확정판결 다음날인 지난달 14일 대통령실에 추가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2022년 9월 1일부터 2025년 2월 1일까지 매달 1일 기준 대통령실 직원 명단과 세부 조직도를 공개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미 대법원 판결로 '2022년 8월 기준' 직원 명단을 공개해야 하는 대통령실이 '2022년 9월 이후'의 직원 명단 공개를 거부할 근거는 없었다. 이 청구의 처분 기간은 10일 이내(토요일·공휴일 제외)로 최종 처분 기한은 지난달 28일까지였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지난달 28일 갑자기 처분 기간을 10일 더 연장했다. 정보공개법 11조에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10일의 범위에서 공개 여부 결정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법원 판결 무시에 이어 정보공개법을 악용해 직원 명단 공개를 또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대통령실은 법원 판결을 무시하면서 버티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정보공개청구의 공개 결정 시한을 3월 14일까지 늦췄다. 만약, 그 사이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되면 대통령실은 '새로운 이유'를 들어 또다시 직원 명단을 비공개할 수 있게 된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대통령기록물법) 때문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대통령의 임기는 즉시 종료된다. 동시에 대통령실에서 생산한 자료들은 법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된다. 대통령실 직원들의 인사 정보도 이관 대상에 포함될 확률이 매우 높다. 대통령기록물법 20조의 2에 따르면,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 궐위 시 즉시 이관 대상 대통령기록물을 확인해 목록을 작성하는 등 이관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고, 차기 대통령의 임기가 개시되기 전까지 이관을 완료해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 옮겨질 대통령지정기록물도 지정된다는 점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면 최장 30년까지 정보를 비공개할 수 있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대통령지정기록물의 지정권자는 대통령이지만, 대통령 권한대행도 가능하다.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의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국가기록원은 "대통령기록물법에 별도 규정이 없고,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에도 제한 규정이 없다. 권한대행도 지정기록물을 지정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혹은 탄핵이 기각된다면 권한대행으로 복귀할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실 직원 명단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실은 '직원 정보는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이미 지정됐거나 지정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또다시 비공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로 '모든 국민에 공개해야 하는 정보'가 최장 30년 동안 은폐되는 셈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심판 변론기일에 출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
뉴스타파, 법원 판결 무시한 대통령실에 간접강제 신청
지난 6일 뉴스타파는 대통령실을 상대로 한 '간접강제' 신청서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간접강제란 행정소송법 34조에 따라 행정처분의 취소 확정판결이 내려졌음에도 행정청이 판결 취지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그 지연 기간만큼 배상하도록 법원이 명령할 수 있는 조치다. 뉴스타파는 대통령실이 대법원 판결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7일 내 판결 취지에 따른 재처분을 하지 않으면, 이행 처분 시까지 1일당 1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신청했다. 정보공개센터도 간접강제를 신청한 상태다.
뉴스타파의 간접강제 신청을 대리한 최용문 변호사는 "지금까지 여러 정보공개 사건을 했는데, 법원의 확정판결에도 행정청이 정보공개를 하지 않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대통령실이 계속 정보공개를 하지 않는 것은 완전히 법치주의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법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적절한 법적 제재가 주어져야 한다. 그래서 간접강제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확정판결 취지에 따른 정보공개를 하지 않는 대통령비서실장과 이하 담당 공무원들은 언젠가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직무유기 혐의로 형사고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뉴스타파는 지난 4일과 5일,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에게 연락해 처분 기간 연장 사유가 무엇인지,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과 관련이 있는지, 대법원 확정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지만 아무런 답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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