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세대 걸그룹’은 존재하는가?
최근 케이(K)팝 업계는 신인 걸그룹 데뷔 러시로 화제다. 지난해 3월 데뷔한 하이브 계열의 아일릿을 시작으로,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의 베이비몬스터, ‘블랙핑크 신화’ 프로듀서 테디가 이끄는 더블랙레이블의 미야오가 치열한 걸그룹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새해에는 더 가열차다.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준비한 하츠투하츠가 지난달 24일 데뷔했고, 아이브가 속한 스타쉽엔터테인먼트는 키키라는 걸그룹을 깜짝 공개했다.
콘셉트와 노래 스타일이 제각각이지만, 이들에게 붙는 공통된 수식어가 있다. 바로 ‘5세대 걸그룹’이란 용어다. 언론 보도에도 ‘5세대’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특히 갓 데뷔한 하츠투하츠와 내달 정식 데뷔를 앞둔 키키가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본격적인 ‘5세대 걸그룹 논쟁’이 시작됐다.
대대적인 쇼케이스를 통해 데뷔한 하츠투하츠는 지난 2일 싱글 ‘더 체이스’의 초동 판매량(발매 일주일간 판매량)이 40만장을 넘기며 역대 걸그룹 데뷔 음반 초동 판매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데뷔 타이틀곡 ‘더 체이스’는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 ‘핫 100’(최신곡 대상)에서 8위, ‘톱 100’(전 곡 대상)에선 49위까지 오르는 등 준수한 성적을 보였다.
키키는 예고 없이 티저 영상을 선보이는 깜짝 등장 방식을 택했다. 하츠투하츠와는 정반대 전략이다. 내달 미니앨범 발표 전 선공개한 싱글 ‘아이 두 미’는 멜론 ‘핫 100’ 6위, ‘톱 100’ 28위까지 올랐다. 정식 데뷔 전 걸그룹으로선 상당한 성과다. 스타쉽은 보도자료에 “5세대 괴물 신인 탄생 예고”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두 그룹의 데뷔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들을 성과와 5세대 호칭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존 4세대와 차별성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기획사 입장에선 신인 걸그룹이 새로워 보여야 하기 때문에 5세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며 “현재 5세대라고 주장하는 그룹들을 보면 기존 걸그룹과 큰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 ‘누구누구의 여동생 그룹’이란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존 4세대까지 분류되는 걸그룹 세대 구분에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세대를 구분 짓는 경우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느냐가 주요한 척도가 된다. 1세대 에스이에스(S.E.S.)∙핑클, 2세대 원더걸스∙소녀시대∙투애니원(2NE1), 3세대 블랙핑크∙트와이스, 4세대 에스파∙아이브∙뉴진스는 확실히 앞선 그룹과의 차별성을 통해 세대별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 경우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대체적으로 합의됐다. 예를 들어, 에스파를 4세대 걸그룹의 시작으로 보는 이유는 ‘광야’라는 가상공간을 처음 걸그룹 세계관에 도입했기 때문이다. 임희윤 평론가는 “현재 나오는 걸그룹들을 5세대라고 칭하려면, 가령 에이아이(AI)나 버추얼적 요소 같은 차별화된 패러다임이 전면에 드러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도 “걸그룹 세대론은 마케팅 용어다. 기획사나 언론이나 5세대라는 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며 “세대라는 것은 시대정신 같은 큰 개념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 잡아야 사용할 수 있다. 세대를 나누는 것은 생산자가 아니라 대중의 몫”이라고 꼬집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734343?sid=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