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완서 작가가 아들을 잃고 쓴 일기를 책으로 엮은 내용이고
일부만 발췌해서 가져옴
1.
하느님도 너무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 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잔병 한번 치른 적이 없고, 청동기처럼 단단한 다리와 매달리고 싶은 든든한 어깨와 짙은 눈썹과 우뚝한 코와 익살을 잘 부리는 입을 가진 준수한 청년입니다. 걔는 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 의사였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 그럼 하느님도 아니지요.
2.
울집도 잠실 경기장과 올림픽 공원 사이에 있어 그 들뜬 야단 법석이 싫어도 들리고 보일 것 같더니만 여기까지 그 축제가 따라올 게 뭐람.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걸 어찌 견디랴. 아아, 만일 내가 독재자라면 팔팔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
3.
나는 겨우 이틀 울지 않았으니까 깨끗이 배의 통증이 가시는 내 건강이 혐오스러웠다. 절이 있는 데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닥 힘들지 않았다. 먹은 건 없는데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는 걸까. 정말 싫다. 예전 우리 시골에선 자식을 앞세운 에미한테 자식을 잡아먹었다고 말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소리가 끔찍해 소름이 끼쳤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한테 해당하는 소리가 아닌가. 나야말로 자식을 잡아먹은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줄창 먹지 않고도 배부를 수가 없고, 먹지 않았는데도 수족을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을 수가 없지 않은가.
4.
내 아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땅 속에 누워 있는 것일까? 내 아들이 어두운 땅 속에 누워 있다는 걸 내가 믿어야 하다니. 발작적인 설움이 복받쳤다. 나는 내 정신이 미치기 직전까지 곧장 돌진해 들어갔다가 어떤 강인한 저지선에 부딪쳐 몸부림치는 걸 여실하게 느낀다. 그 저시선을 느낄 수 없어야 미칠 수 있는 건데 그게 안 된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정말 있다면 내 아들의 생명도 내가 봉숭아를 뽑았듯이 실수도 못 되는 순간적인 호기심으로 장난처럼 거두어간 게 아니었을까? 하느님 당신의 장난이 인간에겐 얼마나 무서운 운명의 손길이 된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 당신의 거룩한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이렇게 막 가지고 장난을 쳐도 되는 겁니까.
5.
“인생은 풀과 같은 것, 들에 핀 꽃처럼 한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 (시편 15-16).
주여, 그렇게 하찮은 존재에다 왜 이렇게 진한 사랑을 불어넣으셨습니까.
6.
에미 눈에 자랑스럽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을까마는 자식들마다 건강하고 공부 잘해 한 번도 속 안 썩이고 일류학교만 척척 들어가고 마음 먹은 대로 풀릴 때, 그 에미의 자랑은 기고만장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랬었다. 기고만장 정도가 아니라 서슬 푸른 교만이었다. 그래서 남의 공부 못하는 자식, 방탕하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을 속으로 은근히 깔보았었다. 그것도 학교라고 허리가 위게 번 돈을 등록금을 대야 하다니, 이런 마음으로 내 눈엔 도무지 차지 않는 대학에 보내고도 좋아하는 친구나 친척을 겉으론 축하해주는 척하면서 속으론 불쌍해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뇌성마비로 태어난 남의 자식을 보고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걸 하는 모진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노파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가장 못난 최악의 아들을 가정해도 역시 노파가 부러웠다. 가슴이 아리게 부러웠다.
내가 받은 벌은 내 그런 교만의 대가였을까.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게 교만이라니 나는 엄중하지만 마땅한 벌을 받은 것이었다. 조금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나는 내 아들이 이 세상에 없다는 무서운 사실을 견디기 위해서 왜 그런 벌을 받아야 하는지 영문을 알아야만 했다. 아들을 잃은 것과 동시에 내 교만도 무너졌다. 재기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하게. 그러나 교만이 꺾인 자리는 겸손이 아니라 황폐였다. 내 죄목이 뭔지 알아냈다고 생각하자 조금 가라앉는 듯하던 마음이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교만의 대가로 이렇듯 비참해지고 고통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자. 그럼 내 아들은 뭔가. 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건 가장 잔인한 최악의 벌이거늘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벌을 받는단 말인가. 이 에미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벌을 주는데 이용하려고 그 아이를 그토록 준수하고 사랑 깊은 아이로 점지하셨더란 말인가. 하느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 사랑 그 자체란 하느님이 그것밖에 안 되는 분이라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아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금 맹렬한 포악이 치밀었다. 신은 죽여도 죽여도 가장 큰 문제거리로 되살아난다. 사생결단 죽이고 또 죽여 골백번 고쳐 죽여도 아직 다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최대의 극치인 살의 殺意, 나의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암 있어야 하구말구.
7.
이해인 수녀의 방문을 받았다. 남편의 병중, 상중에도 기도와 위로를 아끼자 않아 큰 힘이 되었는데 여기서 또 이런 꼴을 보이다니, 부끄럽고 숨고 싶었다. 딸애가 있는 대로지만 정성껏 점심을 지어 대접했다. 식사 후 수녀님한테 눈물을 보이고부터는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사진첩까지 꺼내놓고 아들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그 애가 얼마나 특별한 아인지, 나에게 꼭 있어야 할 아들일 뿐 아니라 직업인으로서도 이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 인물인지, 그리고 동기간과 일가친척 사이에서 얼마나 사랑과 기대를 모았었는지, 눈에선 눈물을 쉴새 없이 흘리며, 입에선 침이 마르게 늘어놓았다. 그 동안 가족들 사이에선 상처를 피하듯이 조심스럽게 화제에 올리기를 삼가던 아들 얘기를 그 애를 전혀 알지 못하는 수녀님을 상대로 마치 걸신들린 것처럼 지칠 줄 모르고 해댔다. 특히 우리가 얼마나 특별하고도 완전한 모자 母子 사이였다는 걸 강조할 때 내 허망한 열정은 극에 달했다. 막연한 불안과 함께 예전에 본 미국 영화 속에 싸이코 엄마 생각이 났다. 나도 이러다 싸이코가 되는 게 아닐까.
수녀님도 내 정신의 불균형을 감지한 듯 얼마 동안 부산의 분도 수녀원에 들어가 있으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번거로운 인간관계도
피할 수 있고, 공기 좋고 조용해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신앙이나 기도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소리가
안 들어간 권고여서 마음에 들었지만 그럴 엄두가 날 것 같지는 않았다.
8.
어젯밤엔 맥주 대신 소주를 마셨더니 좀 잔 것 같다. 꿈을 꾸었으니까. 난리가 나서 허둥거리며 피난을 가고, 사람들이 죽고, 거리가 삼엄하고, 양식이 동이 나는 꿈이었다. 꿈속에서도 올림픽 첫날에 난리가 나서 다 중단됐다고 했다. 내란 같기도 하고 천재지변 같기도 한 묘한 공포분위기였건만 깨어나니까 좋은 꿈을 놓치고 난 것처럼 허전했다.
내 아들이 없는데도 온 세상이 살판난 것처럼 들떠 있는 올림픽의 축제 분위기가 참을 수 없더니, 내 아들이 없는 세상 차라리 망해버리길 바란 거나 아니었을까. 내 무의식을 엿본 것 같아 섬칫했다. 아아, 천박한 정신의 천박한 꿈이여. 내 아들아, 어쩌면 에미를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니.
9.
문득 내가 아들 대신 딸 중의 하나를 잃었더라면 이보다는 조금 덜 애통하고, 덜 억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해보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 자체가 두려워 나는 황급히 성호를 그었다. 행여 또 그런 생각이 떠오를까 봐 속으로 주모경을 외웠다. 그래도 두려워 화장실에 가서 울며 용서를 비는 기도를 했다. 오랜만에 해보는 기도였다. 그래도 두려움과 가슴의 울렁거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10.
나는 신이 생사를 관장하는 방법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고, 특히 그 종잡을 수 없음과 순서 없음에 대해선 아무리 분노하고 비웃어도 성이 차지 않지만 또한 그런고로 그분을 덧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직 그분만이 생사를 관장하고 있다고 신의 권위를 믿고 있었고, 불쌍하게도 깊이 공구 恐懼하고 있었다.
11.
젊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세계 속엔 그 자신과 그의 부모형제가 걸던 얼마나 다채롭고 풍부한 미래가 포함돼 있는가. 특히 자식이 부모의 소망은 물론 허영심까지 충족시켜줄 만큼 잘 자라 부모가 한참 우쭐해 있을 때, 부모는 어리석게도 자식이 성취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었다. 아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동일한 축 軸을 가지고 마냥 팽배해가고 있었다. 그 나름의 독립, 혹은 연애나 결혼 등으로 에미로부터 분화 분화 해 나가기 직전, 모든 가능성과 희망을 공유하던 에미로서는 가장 행복한 착각의 시절에 아들은 홀연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니까 그의 죽음은 하나의 세계의 소멸이 아니라 두 개의 세계의 소멸을 뜻했다
12.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이에 대해 과연 무엇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들이 인턴 과정을 끝마치고 전문의는 무슨 과를 택할까 의논해왔을 때 생각이 났다. 그 애는 나만 반대하지 않는다면 마취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 뜻밖이었다.
나는 아들로 인하여 자랑스럽고 우쭐해 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누가 시키거나 애써서가 아니라 그 애 스스로가 선택한 학교나 학과가 에미의 자긍심을 충분히 채워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내 무지의 탓도 있었지만 마취과는 어째 내 허영심에 흡족하지가 못했다 나는 왜 하필 마취과냐고 물었다. 그 애는 그 과의 중요성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 식으로 말해서 중요하지 않은 과가 어디 있겠니? 이왕 임상을 하려면 남 조기에 좀더 그럴 듯한 과를 했으면 싶구나.”
나는 내 허영심을 숨기지 않고 실토했다. 그때 아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어머니, 마취과 의사는 주로 수술장에서 환자의 의식과 감각이 없는 동안 환자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가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의식이 돌아오면 별볼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환자나 환자 가족으로부터 고맙다든가 애썼다는 치하를 받은 일이 거의 없지요. 자기가 애를 태우며 생명줄을 붙들어준 환자가 살아나서 자기를 전혀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쓸쓸한 일이겠어요. 전 그 쓸쓸함에 왠지 마음이 끌려요.”
그 아들에 그 에미랄까, 나 또한 아들의 마음이 끌린 쓸쓸함에 무조건 마음이 끌려 그 애가 원하는 것을 쾌히 승낙했다. 늘 사랑과 칭찬만 받으면서 자라 명랑하고 거침이 없고 남을 웃기기 잘하고 농담 따먹기에 능하던 아들의 전혀 새로운 면이었다.
나는 그때 아들에 대해 새롭게 알았다. 품 안의 자식인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알아버렸다가 아니라 알아야 할 무진장한 걸 가진 대상으로 우뚝 섰을 때 얼마나 대견했던지, 그리고 그때의 그 앎의 시작에 대한 설레임까지 꼬박이 밝은 새벽 빛 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13.
내 아들의 죽음의 의미는 뭘까? 죽음 후에도 만남이 있을까? 그 애의 죽음은 과연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신이 있기나 있는 것일까? 인간의 기도나 선행과는 상관없이 인간으로 하여금 한 치 앞도 못 내다보게 눈을 가려놓고 그 운명을 마음대로 희롱하는 신이라면 있으나마나 가 아닐까?
여지껏 지녀온 신의 개념 중에 자비로움 공정성 같은 걸 빼버리면 신 또한 시체만 남게 된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기 직전에 큰 소리로 남기신 말은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라고 기록하고 있고 그 뜻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작 숨은 뜻은 “하느님, 하느님, 결국 당신은 안 계셨군요?” 가 아닐까.
14.
나는 그 애에 대한 갈증을 참을 수가 없어 집에서 가져온 그 애의 사진첩을 꺼냈다. 너무 힘들어 스스로 자제해온 일이건만 오늘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생전에 무심히 그저 잘 나왔다, 못 나왔다 정도의 평을 하며 보던 사진들이 한 장 한 장 생전의 모습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나 에미의 살갗을 으스러뜨리며 에미 안으로 스민다. 친구들과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핀 교정에서 찍은 사진은 그 애의 설레이는 행복감은 물론, 대기 중에 충만한 봄내음, 친구들과의 악의없는 농지거리, 벌들의 잉잉거림까지 현장에 잇는 것과 다름없이 느끼게 해준다. 그 애의 졸업식 날은 왜 그렇게 추웠던지, 졸업식 때 찍은 사진에선 얼굴에 살짝 돋은 소름, 분주하게 돌아다니느라 가빠진 숨결, 빨리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고 싶은 왕성한 식욕, 추위와 가족들의 만족감이 자아내는 묘한 축제 분위기를 눈앞에 또렷이 보고 느낀다.
15.
그래, 나는 주님과 한번 맞붙어보려고 이곳에 이끌렸고, 혼자 돼보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주님,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알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 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16.
그 중 어린 수녀님이 속세의 친구에게 하는 소리가 문득 내 관심을 끌었다.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 얘기였다. 남동생이 어찌나 고약하게 구는지 집안이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왜 하필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 비관도 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세상엔 속 썩이는 젊은이가 얼마든지 있다, 내 동생이라고 해서 그래서는 안 되란 법이 어디 있나?’ ‘내가 뭐라고…’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동생과의 관계도 호전이 되더라고 했다.
‘왜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와 ‘왜 내 동생이라고 저러면 안 되나?’는 간발의 차이 같지만 실은 사고 思考의 대 전환이 아닌가? 나는 신선한 놀라움으로 그 예비수녀님을 다시 바라보았다. 내 막내딸보다도 앳돼 보이는 수녀님이었다. 저 나이에 어쩌면 그런 유연한 사고를 할 수가 있었을까? 내가 만약 “왜 하필 내 아들을 데려갔을까”” 라는 집요한 질문과 원한을 “내 아들이라고 해서 데려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로 고쳐 먹을 수만 있다면, 아아 그럴 수만 있다면. 구원의 실마리가 바로 거기 있을 것 같았다.
17.
세상엔 남의 불행이 위안이 되는 고통이 얼마든지 있다. 세상사람들이 예서 제서 자기들의 근심이나 걱정을 위로받으려고 내 불행을 예로 들어가며 쑥덕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남의 고통에 쓸 약으로서의 내 고통, 생각만 해도 끔찍한 치욕이었다.
주여, 어찌하여 나를 이다지도 미천하게 만드시나이까. 나는 마음으로 무릎을 꺾으며 이렇게 탄식했다.
18.
가슴에 걸린 빗장이 부러지는 것처럼 격렬한 통증이 오면서 점심 먹은 걸 고스란히 토해냈다. 복통이 없어지자 내 존재도 소멸한 것 같았다. 완벽한 평화였다. 고통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변기의 가장자리를 양손으로 짚고 무릎 꿇은 자세로 꼼짝도 할 수가 없었고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얼마 만이었을까, 한 생각이 떠올랐다. 텅 빈 머리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어서인지 그건 내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라기보다는 계시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미사시간에도 기도시간에도 산책하면서도 긴긴 반 잠 못 이루면서도 신에 대한 내 물음은 딱 한가지였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그렇게 크게 잘못했기에 이런 무서운 벌을 받아야 하느냐는, 질문이라기보다는 포악이요 항의였다. 그러니까 내가 신의 부당함을 하의하고 내가 억울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나는 그닥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죄가 있다면 어디 말해보시지 하는 신에 대한 일종의 시험이었다. 십자가 밑에서 밤새도록 몸부림치며 구해도 얻어낼 수 없었던 응답이 하필 변기 앞에 무릎 꿇고 앉았을 때 들려올 게 뭐였을까? 그때 계시처럼 떠오른 나의 죄는 이러했다.
나는 남에게 뭔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그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 나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위선으로 사랑한 척한 적조차 없었다. 물론 나을 해친 적도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모르고 잘못한 적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의식하고 남에게 악을 행한 적이 없다는 자신감이 내가 신에게도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대들 수 있는 유일한 도덕적 근거였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하필 변기 앞에 무릎 꿇은 자세로, 나는 그 정답에 머리 숙여 승복했다. 나중에 나의 간지 奸智가 또다시 빠져나갈 구멍을 찾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은 그건 꼼짝달싹 도 할 수 없는 정답이었다. 그리고 구원이었다. 고통도 나눌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나누리라.
19.
주여, 나를 받으소서. 나의 모든 자유와 나의 기억력과 지력과 모든 의지와 내게 있는 것과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소서. 나의 고통까지도. 당신이 내게 이 모든 것을 주셨나이다. 주여,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도로 드리나이다.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이오니, 온전히 당신 의향대로 그것들을 처리하소서. 내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이 내게 족하나이다.
20.
이윽고 기운을 차리고 화장실을 나왔다. 침대에 누우니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난 육신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몸이 아무데도 불편하거나 아프지 않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해야 마땅할 것 같았다. 세상 모든 즐거움에 뜻이 없다고 여겼는데 몸에 아픈 데가 없다는 사실에 거의 행복감에 가까운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감미로운 잠이 엄습했다.
정말 처절하게 솔직히 쓰여진 일기라고 생각함
한번 읽어보기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