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엔 김범석 기자] SBS 금토극 ‘보물섬’(극본 이명희, 연출 진창규)의 인기가 뜨겁다. 재벌가의 은밀한 설거지를 도맡는 해결사의 사랑과 복수극에 시청률은 벌써 10%가 넘었다. 애절한 러브스토리와 2조원의 비자금을 놓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두 축의 이야기 전개가 화제 몰이에 성공하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16부 중 4회가 공개됐을 뿐인데 박형식의 대표작이 됐다. ‘보물섬’이 대중을 사로잡은 비결 3.
◆ 빠른 속도감
요즘 드라마 성패는 속도감에 달렸다. 조금만 템포가 처지거나 서사가 느슨해진다 싶으면 자비 없이 채널이 돌아간다. 웹툰과 숏폼, 릴스에 익숙해진 세태와 무관치 않다. 지루한 걸 못 참지만 그렇다고 맥락 없는 급발진은 답이 아니다. ‘그래, 저럴 수 있어’하는 최소한의 개연성을 장착한 뒤 가속페달을 밟아야 하는데 이 점에서 ‘보물섬’은 재능을 보여줬다. '모범택시' '지옥에서 온 판사' 등으로 이 시간대를 장악한 'SBS가 SBS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1회부터 재벌 총수의 각종 뒷일을 해결하는 동주(박형식)의 활약과 내면을 보여주며 시청자를 정박시키는 데 성공했다. 재벌가 손녀인지 모른 채 서로에게 끌려 동거하게 된 동주, 은남 커플의 순수한 사랑과 생이별, 재결합 여부도 여심을 공략하는 혈자리다. 거의 매회 등장하는 둘의 키스 신과 애절한 눈빛 연기는 시청률 일등 공신이다.
◆ 연기 구멍이 없다
공비서까지 조 단역을 섭외한 캐스팅 디렉터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할 만큼 연기 구멍이 없다. ‘보물섬’의 취약점이라면 다소 막장 같은 설정일 텐데 모든 게 연기로 극복됐다. 바다에 빠진 남주가 총을 맞고도 죽지 않고, 출생의 비밀과 기억상실증까지 겪는다(기억을 잃은 것처럼 속인다는 추측도 있다). 아무리 주말드라마 경쟁이 치열하다지만 ‘돈꽃’을 쓴 중견 작가가 택하기 힘든 다소 용감한(?) 클리셰다.
그런데도 용케 막장 논란에 빠지지 않은 건 배우들의 고른 활약과 감정 절제를 강조한 연출 덕으로 보인다. 소년미에 갇혀 고전하던 박형식도 군 복무 후 남성미가 흐르고, 첫 여주를 맡은 홍화연도 다소 튀지만, 극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차강천 회장 역 우현도 코믹한 기존 캐릭터를 살리면서 재벌 총수다운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 진짜 보물 허준호
‘보물섬’의 진짜 보물은 단연 허준호와 이해영이다. 극 중 국정원장 출신으로 정치 권력 카르텔을 통해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염장선 연기는 누워서 보기 미안할 정도다. 특히 러닝셔츠 차림으로 나라 사랑을 강변할 때는 마치 히틀러 같은 확신범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작가와 PD가 그의 연기적 갈증을 잘 포착해 마음껏 놀아보라며 멍석을 깔아준 느낌이다.
또 대산그룹 맏사위 허일도 역의 이해영도 햄릿형 안타고니스트 연기의 표본을 보여주며 극의 몰입을 돕는다. 그는 넷플릭스 드라마 ‘돌풍’에서도 당차고 유능한 여자(김희애)의 남편으로 나왔는데 이번에도 승계에 대한 야망과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열등감, 두려움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냈다. 장진 사단 출신으로 데뷔 초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로 얼굴을 알렸고, 부패 형사로 나온 ‘더 글로리’ 이후 비로소 합리적인(?) 개런티를 받기 시작했다. 이밖에 염 선생의 사냥개 천구호로 나온 주연우 역시 인생작을 만나며 향후 다작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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