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버트 와일더 브루스 테일러
3. 운동당시 세브란스 병원 지하실에서는 3.1 운동을 준비하기 위해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있던 곳 중 하나여서 일제가 이 사실을 알고 세브란스 병원에 들이닥치자 조선인 수간호사가 외국인 병실은 함부로 탐색하지 못할 것임을 판단하고 미국인 병실에 이를 숨겼는데 그곳이 바로 메리가 막 출산을 마친 병실이었던 것이다. 메리의 침상 밑에 숨겨져 있던 독립선언서를 병실에 방문한 앨버트가 우연히 발견하고 이것을 동생 윌리엄에게 맡겼다. 윌리엄은 이를 구두 뒤축에 숨겨 순사의 눈을 피해 도쿄로 반출하는 데 성공했고, 도쿄의 통신사망을 통해 미국으로 타전하면서 한국의 3·1 운동은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에도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하고, 스코필드, 언더우드와 함께 조선 총독에게 항의 방문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며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적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앨버트는 6개월형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보냈고, 부인 메리는 딜쿠샤에 가택연금되었다.
1942년 5월 조선총독부의 외국인추방령에 따라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1948년 한국독립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미군정청 광업담당관으로 새 일을 하기 직전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73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사후 유해라도 한국땅에 가길 소원한 유언에 따르기 위해 부인 메리가 성공회 헌트 신부님과 언더우드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 군함을 타고 대한민국으로 들어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했다.
현재는 외아들 브루스 테일러도 한국에 묻혀있다
"When I die, please bury me next to my father in my beloved land of Korea."
내가 사랑하는 땅 대한민국, 아버지의 묘소 옆에 나를 묻어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