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HN스포츠 장민수 기자)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봉준호 감독 특유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으나 신선도는 다소 아쉬운 영화 '미키 17'이다.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인 익스펜더블로서 미키가 겪는 이야기를 그린다.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다.
2022년 발간된 에드워드 애시튼의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2019) 이후 약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설국열차'(2013), '옥자'(2017), '기생충' 등 앞선 작품들에서 현대 사회 속 계층구조, 부조리한 시스템 등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아냈던 봉 감독이다. 이번 작품 역시 윤리적 문제가 산적한 복제 인간을 소재로 하는 만큼 그러한 시각이 가득하다.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그려냈다. 영화는 18번의 프린트를 거치며 숫자로 구분되던 미키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되찾고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인간 개개인의 가치와 존엄성을 강조한다.
더불어 얼음행성 개척단의 독재자 케네스 마셜(마크 러팔로), 그의 아내 일파 마셜(토니 콜렛), 개척 행성의 생명체를 식민 지배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잔혹한 비인간성에 대해 고발한다. 특히 미키와 연인 나샤(나오미 애키)가 가장 인간적인 감정인 사랑을 나눈다는 점과 대비되며 메시지는 한층 증폭된다.
풍자는 넘쳐나고 의미는 풍부한데, 영화적 재미를 논하자면 다소 아쉽다.
소설의 1인칭 시점을 고려해서인지 배경 설명이 주로 미키의 내레이션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이 부분에 할애되는 시간이 꽤 길어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극 자체도 잔잔한 드라마에 가깝다. 익스펜더블로서 미키의 일상, 그 속에서 나샤와의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또한 두 명의 복제인간이 갈등하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대립하는 구조는 숱하게 봐왔던 바, 그 자체로 신선함을 주긴 어렵다.
미키 17과 18이 서로 마주하는 부분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때 몰입을 격하게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
극 중 프린팅은 앞서 죽은 미키의 기억이 그대로 유지, 전달된다는 설정이다. 그렇다면 17과 18의 성격 또한 상당한 싱크로율을 보여야 할 텐데, 둘의 캐릭터가 너무 다르다.
한 명은 지나치게 소심하고, 한 명은 지나치게 과감하다. 도무지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극단의 두 인물. 한 인간 안에 감춰진 욕망이 발현된 것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만, 그렇더라도 그와 관련한 설명이 부족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같은' 인간이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으니, 둘 사이 관계에서 오는 긴장감도 부족하다. 자연스레 그 뒤로 펼쳐지는 모든 상황에서도 몰입이 떨어지게 된다.
연출적으로 봉 감독 전작들을 봐온 팬들이라면 반가우면서도 익숙한 지점들이 많다.
마셜 부부는 '설국열차' 속 메이슨(틸다 스윈튼)을, 외계생명체 크리퍼의 디자인은 '괴물'을 떠올리게 한다. 인물들의 엉뚱한 말과 예상 밖의 행동이 주는 특유의 유머 또한 여전하다.
시각적으로는 '봉테일'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디테일하고 탄탄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외계 얼음행성 니플하임, 대규모 우주선, 외계생명체 크리퍼 집단까지. SF적 상상력을 눈앞에 생생히 묘사한 비주얼이 돋보인다.
여기에 극과 극 두 인물을 표현한 로버트 패틴슨,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악당을 그려낸 마크 러팔로 등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결국 어떤 이야기를 기대하고 보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질 듯하다. 처량했던 한 인간의 로맨스와 성장 드라마로 본다면 호, 스펙터클한 우주 SF를 기대한다면 불호가 클 것.
한편 '미키 17'은 오는 28일 개봉한다. 러닝타임 137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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