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스타트업 대표 A씨는 기자에게 1시간 가까이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한탄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 4일제까지 도입하겠다고 밝히자 더 이상 한국에서 기업을 운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A씨는 2018년 지금의 회사를 창업하기 전까지 애플·브로드컴·시스코 등 글로벌 기업에서 반도체 개발자로 근무했다. 미국에서 숱한 밤샘 연구로 굵직한 성과를 올린 경험을 했던 그에게 연구·개발직마저 근무 시간에 얽매여야 하는 한국의 현실은 지금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A씨는 과도한 노동 규제 탓에 쇠락해가는 유럽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롤모델인 유럽은 주 40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는데 최근 주 4일 근무제 도입으로 더 줄이려 한다. 미국도 법정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이지만, 주급 684달러 이상 고소득자는 예외다. 일부 고소득자가 죽어라 뛰어서 국가 전체 혁신과 성장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미국과 유럽 간 부(富)의 격차로 나타난다. 미국이 EU 전체의 명목 GDP(국내총생산)를 앞선 지 오래다. 미국은 엔비디아·애플·마이크로소프트 등 시가총액 2조달러가 넘는 기업이 수두룩하지만 유럽은 세계 테크 기업 시총 상위 10위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업이 한 곳도 없다. 생성형AI·스마트폰 OS(운영체제)·AI 반도체 등 첨단 시장도 모두 미국 기업이 주도한다.
유럽 경제가 망가진 데에는 코로나, 우크라 전쟁 같은 요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 내상을 첨단 산업으로 극복하고, 유럽은 그러지 못했다. 시간 제약 없이 마음껏 첨단 연구를 할 수 있던 환경이 그 차이를 만들었다. A씨는 “노동의 형태와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100년 전 컨베이어 벨트 시절의 근무 시간 규제를 일률 적용하는 게 의미가 있냐”고 물었다.
이재명 대표는 반도체 R&D 분야에 대해 52시간제를 예외 적용할 것처럼 했다가 양대 노총을 만나고는 입장을 바꿨다. 그러는 동안에도 우리 기업들은 전 세계 기업들과 피 말리는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제발 반도체 업계의 목소리를 더 들어 보기 바란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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