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강산 작가] 2015년 우리나라에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작품들이 전시된 적이 있다.
우리집에서 전시장은 꽤 멀었다. 그날은 비도 왔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을 아기띠에 안고 그 먼 전시장까지 가서 프리다 칼로의 일생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녀의 일생과 작품을 접하며 얼마나 눈물을 쏟았던지.
그녀의 안타까운 일생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소아마비를 겪었고 청소년기 버스 사고로 인해 크게 다쳤으며 유부남을 사랑했고, 어렵게 임신했으나 과거의 사고로 인해 건강하지 않은 탓인지 유산하게 된다. 남편은 바람둥이였고 유산한 지 얼마 안 된 프리다를 두고 처제와도 바람이 났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 중 한 가지만 겪어도 큰 좌절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씩씩한 그녀는 모든 것을 그림으로써 이겨내려 하였다. 이 수많은 이슈 중에서도 그녀에게 큰 상처를 준 것 중 하나는 아이를 유산한 것임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디에고의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 의사는 절대 임신이 불가능하고 임신하더라도 임신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하였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임신하려고 노력하였고 많은 노력 끝에 디에고의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를 유산하고 말았고 앞으로 영원히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판정을 듣게 되었다.
이러한 말을 듣고 프리다 칼로가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들로서 그녀가 얼마나 큰 고통 속에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그림은 유산 후 프리다의 어머니까지 사망 후 그린 작품이다. 얼굴을 덮고 누워있는 여성은 그녀의 어머니인지 그녀 자신인지 알 수 없다. 태어나고 있는 것은 갓난아기가 아닌, 프리다 자신과 닮은 다 큰 사람이다. 그림 제목이 나의 탄생이므로 그림 속 태어나고 있는 것은 프리다 칼로 자신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모든 것을 꿋꿋하게 잘 버텨내고는 있지만 작품을 완성할 당시의 프리다 칼로가 처한 상황들로 보아 아마도 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그날 나도 죽었다’고 생각한 듯하다.

이 그림은 ‘나의 탄생’ 완성 전에 먼저 그린 작품이다. 그녀는 아이를 사산하고 난 후에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많은 상징적인 그림들이 그녀의 배와 연결되어 있지만 가장 가운데 눈에 띄는 자리에 배치한 것은 그녀의 아이이다. 그녀는 피를 흘리며 울고 있다. 아이는 그녀보다 더 크게 그려져 있다. 괴로움과 고통 속에 있는 그녀는 자신이 흘리는 피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림을 보면서도 안쓰럽고 눈물이 난다. 얼마나 처절했을지, 얼마나 매일 밤 울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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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강산 칼럼] 프리다 칼로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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