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은 ‘계몽령’이 맞다. 윤석열과 국민의힘, 정부 고위인사들의 처참한 밑바닥을 국민들에게 알려준 계몽령이다. 현 집권세력에게는 정권을 담당할 양심도 용기도 없다는 점이 계엄·탄핵 국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 뒤 최고 책임자다운 모습을 보인 적 없다. 그는 지난해 12월7일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그날 오후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모면해보려는 시도였을뿐더러, ‘책임을 지겠다’는 게 아니라 ‘책임을 다투겠다’는 얘기였다.
윤석열의 변론대로라면, 그는 ‘야당의 패악’을 국민들에게 알려 경각심을 주기 위해 초단기·초미니 계엄을 선포해본 것일 뿐, 군경의 국회 무력화나 정치인 체포 시도는 밑에서 알아서 ‘오버’한 게 된다. 이 논리를 떠받들고자 윤석열 변호인단은 “‘요원’을 빼내라는 걸 ‘의원’으로 둔갑시킨 것”이라고 주장했고, 암 투병 중인 증인에게 “검경 조사 당시에 섬망 증세가 없었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과 계엄, 법원 폭동, 극우 유튜버, 부정선거론을 옹호하거나 그에 끌려가는 태도를 보이면서, 민주 국가의 공당으로서 자격 없음을 드러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제가 국회 현장에 있었더라도 (계엄 해제요구안)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덮어놓고 야당과 똑같이 행동하는 건 여당으로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입법부가 군홧발에 짓밟히는 초법적 상황이 펼쳐지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여당, 야당을 따지며 ‘전후 사정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 국회의원 입에서 나온다는 게 충격적이다.
국민의힘이 여태 허우적대는 배경에는, 처음부터 ‘계엄에서 여당 주류는 열외’라는 안온한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한 탓도 있다고 본다. 목숨 걸고 총부리에 맞서고 국회 담장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달려가던 야당 인사들과, 국회 밖 당사에서 텔레비전으로 상황을 지켜본 여당 주류의 심정이 똑같았을 수 없다. 계엄은 누구에겐 ‘생명의 위협’이지만, 누구에겐 ‘난 아니야’였을 수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야당 소속이었다면 텔레비전 토론에서 웃으면서 유시민 작가에게 “유 작가는 큰일 날 뻔 했다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국민의힘은 사안을 여야 이전에 민주 시민의 눈높이에서 대하는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정부 인사들 가운데서는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 밑천을 드러냈다. 조 원장은 부하인 홍장원 1차장이 체포 대상자 명단을 받아적었다는 장소가 ‘국정원장 공관 앞이 아니라 사무실이었다’는 등 본질과 무관한 주장으로 신빙성을 흔들려 했다. 그는 계엄 선포 전날과 당일 김건희 여사와 주고받은 문자에 대해서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면서도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최고 정보기관 수장의 모습인가 씁쓸하다. ‘여기서도 김 여사가 나오네’ 하며 나오는 헛웃음은 보너스다.
유독 힘들고 길었던 겨울과 함께, 윤석열 탄핵심판도 끝나간다. 오는 25일 윤석열의 최종 진술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공개 발언이 될 수 있다. 우리를 화나고 부끄럽게 해온 대통령은 단 한번이라도 책임을 인정하고 나라의 안정과 미래를 위한 메시지를 내놓을 수는 없을까. 그걸 기대하는 건 끝내 ‘호수 위 달그림자’를 쫓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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