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상캐스터로 일하다 숨진 오요안나씨 사건이 묻어둔 기억을 들쑤셨다. 김정은씨 역시 MBC 보도국 소속 프리랜서 작가였다. 같은 프리랜서 신분이었던 오요안나씨 사건에 자신을 계속 겹쳐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증거를 찾아보기도 했다. 새벽별 보며 출근할 때마다 가해자가 죽어버리기를 바랐던 마음이 떠올라 어지러웠다. 개신교인이기도 한 김씨는 그런 마음으로 교회를 다닐 수 없어서 한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했다.
MBC 내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묵살 다음에는 보복이다. 저는 오요안나씨의 선택을 이해한다. 그 다리 위에 제가 있을 수도 있었다.” 고립과 반목을 경험하다 결국 김씨는 지난해 퇴사했다. 김씨의 자리는 또 다른 비정규직 작가로 채워졌다. “퇴사 이유를 건강상 이유라고 했지만, 방송 쪽 일은 앞으로도 절대 하지 않을 거다.”
김씨는 2년여 소송 끝에 법원에서도 상시·지속 업무로 인정받아 2022년 복직이 이뤄졌지만, MBC는 무기계약직인 ‘방송지원직’ 직군을 신설하는 것으로 맞섰다. 임금인상이 없고, 상여금과 승진 기회에서도 제외된다. 피해 노동자가 법정 싸움을 결심하기도 어렵지만, 법적으로 노동자성이 인정되어도 이처럼 법을 ‘무시하는’ 사례는 노동자를 더욱 고립시킨다. “오요안나씨 외에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나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 프리랜서다. 누군가의 실수가 나의 기회로 연결될 수 있는 고용 불안정 상황은 동료의 잘못을 그저 잘못으로만 두지 못하게 만든다. MBC 보도국의 한 관계자는 “프리랜서가 프리랜서를 괴롭히는 구조를 방송사가 방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프리랜서 계약이라는 ‘방패’가 있기 때문에 인사관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이 관계자는 “알아서 나가게끔 만들 수 있는데 방송사가 왜 손에 피를 묻히겠나”라고도 지적했다.
MBC 기상과학팀 내부 사정을 아는 또 다른 관계자는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알았어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지금도 인력이 부족해서 프리랜서라고 쉽게 자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가해자가 밝혀지면 내보내야 하는 데 그런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MBC 기상캐스터가 투입되는 방송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개다. 아침 뉴스 〈뉴스투데이〉와 메인 뉴스 〈뉴스데스크〉, 오후 2시 〈뉴스외전〉이 있고 그 사이에 라디오를 포함해 작은 뉴스들이 있다. “기상캐스터가 큰 뉴스를 선호할 거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대부분 녹화로 진행되는 다른 방송과 달리 〈뉴스투데이〉는 이른 아침에 방송되는 데다 생방송이라 실수도 잦기 쉬워서 더 어려워한다.” 오요안나씨의 경우 입사 초부터 새벽 라디오와 아침 방송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지상파 재허가 조건에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새로 포함된 바 있다. 방송사 비정규직 현황 파악 및 처우 개선 방안을 마련하여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하고, 이행 실적을 보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핵심 심사 조건이라기보다는 지침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윤석열 정부 들어 2024년 1월 김홍일 방통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2인 체제’ 시절 해당 지침은 이행 실적을 보고할 필요 없도록 완화됐다.
MBC는 진상조사 상황과 노동부 근로감독에 대한 〈시사IN〉 질의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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