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독히도 아프게 숨진 아이들이 세상에 이리 많았던가. 이루 말하기 힘든 참담함에 책을 읽다 잠시 덮었다.
책 제목은 '잊혀지지 않을 권리(느린서재, 2024년)'. 6개월만에 미라 상태로 발견된 보름이, 21일간 방치돼 굶어 죽은 주현이, 개 사료를 훔쳐 먹다 굶어 죽은 예린이….
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면 올해 몇 살이 됐을, 학대 피해 아동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출판사에서 실물 책을 받고 난 뒤에 생각했어요, 부족하지만 이제야 숙제 하나 했다고. 학대로 떠난 아이들에게, '내가 너희 잊혀지지 않게끔 조금 힘을 냈어', 그런 느낌이었어요. 오래도록 미안했었거든요. 그러게요, 잘 모르겠어요. 죄는 다른 사람이 지었는데 제가 왜 맨날 미안해하며 통곡했는지."

첫 문장도 쓰기 힘들어 오래 앓았다던, 공혜정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이제야 좀 후련한 듯 털어놓았다. 수백 명의 회원들과 법원 앞에서 '아동학대 가해자를 최고형으로 처벌해주십시오'라고 늘 사자후를 외치던 사람 말이다.
악인을 향해선 전사처럼 그리 거침없던 사람. 오죽하면 이 책 추천사를 쓴, 이동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PD('정인아 미안해' 연출)는 이리 말할 정도였다. '저 사람에게 안 걸린 게 천만다행이다'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그러나 공 대표는 고백했다. 실은 참혹한 이야기를 그만 마주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고.

2013년 10월 24일 오전.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생니와 갈비뼈 16개가 부러져 숨졌다. 이름은 서현이었다. 그날은 서현이가 소풍 가는 날이었다. 다음날인 25일, 울산에서 인천으로 전학 가는 터라, 친구들과 마지막 추억을 쌓을 시간이기도 했다.
계모인 박모씨(가명)가 서현이를 다그쳤다. "단골미용실 원장에게 받았던 2만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건 서현이가 작별 선물로 받은 용돈이었다. 2300원을 헐어 친구들과 젤리를 사 먹었단 말에, 박씨는 "너 같은 X은 소풍 갈 자격이 없다"며 닥치는 대로 서현이를 때렸다. 한 시간 반 동안 폭행이 이어졌다.
서현이는 흉부 손상과 폐 파열로 숨졌다. 끝내 소풍을 가지 못했다.

당시 사업가였던 공 대표는, 서현이 친모인 심모씨(가명)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탄원서를 어떻게 쓰는지 아느냐는 물음이었다. 공 대표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으나, 이리 반문했다.
"왜? 무슨 일인데?"
모른다고 하거나, 지식인에 물어보라고 했다면 거기서 끝났을 기나긴 이야기가, 오지랖 넓은 그 한마디로 인해 새로이 시작되고 있었다.
공 대표는 사건의 잔혹함에 몸서리쳤다. 서현이가 학대당하고 있단 징후는 이미 많았다. 숨지기 1년 전인 초등학교 1학년 때엔, 가장 단단하단 허벅지 뼈가 두 동강이 날 정도로 맞았다. 박씨 짓이었다.
박씨는 구치소에서 서현이 친부에게 편지를 보냈다. 공 대표가 우연히 그걸 입수하게 됐다. 두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의 내용이었다. 5년 징역을 살 것 같다는 것, 또 하나는 감방에 있는 동안 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할까 싶다는 것. 이에 대해 공 대표는 책 '잊혀지지 않을 권리'에 이리 적었다.
'꽃 같은 아이를 죽여놓고, 계모 박씨는 교도소에서 미래를 계획하고 있었다. 죄 없는 아이에게 5년간 지옥보다 끔찍한 학대를 가한 여자가, 서현이가 앞으로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빼앗은 여자가….'
공 대표는 분노했다. 분노는 에너지가 됐다. 잘 나가던 사업도 내던진 채, '하늘로 소풍간 아이들'이란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이 일을 알렸다. 연대하는 이들이 생겼다. 함께 피켓이란 걸 만들어 시위에 나섰다. '울산 계모를 살인죄로 처벌하라.' '솜방망이 아동학대치사는 살인죄로 엄벌하라.' 그러는 게 생전 처음인데도, 생각지도 않은 말들이 술술 흘러나왔단다.

법정에서 본 가해자 박씨 모습을 처음 보고, 공 대표는 놀랐다고 했다.
"그냥 옆집 아주머니 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잔인해 보이지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애를 패서 갈비뼈 16개를 부러뜨려서 죽인 거잖아요. 악마는 지옥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이웃에 있었다고. '악의 평범성'인 거예요. 그러니 이웃집에서 우당탕, 쿵쾅, 애 우는 소리가 들려도 혼내나 보다, 평범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도 우리 안의 악마성일 수 있고요."

그저 무작정 알렸다. 서현이가 당한 일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또 구할 기회가 몇 번이었는지, 왜 구하지 못했는지. 공 대표와 함께하는 이들이 늘었다. 뭘 해야 할지 알려달라고, 우리 아이도 서현이 또래라고. 연대하던 이들은 "댁의 아이가 죽었수?"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서명받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엄벌을 촉구했다.
첫 판결에선 박씨에게 '상해치사죄'로 징역 15년형이 선고됐다. 계속해 외치던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은 거였다. 공 대표는 굴하지 않았다. 울산지검 검사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부산고등법원 해당 재판부엔 국민의견서를 냈으며, 전국적으로 몇 천 장의 진정서를 모아서 냈다. 매일 법원 앞에서 시위가 열렸다.

2014년 10월 16일, 부산고등법원 301호실. 구남수 판사의 판결이 이리 울렸다.
'피고인을 살인죄로 징역 18년에 처한다.'
흉기를 쓰지 않고 맨손과 맨발로, 아동을 학대해 사망케 한 사건에서 살인죄가 인정된 건 처음이었다.
험난하고도 아름다운, 흡사 소설 같은 실화를 들으며 공 대표에게 품었던 물음을 꺼내놓았다. 매 순간, 그의 선택이 조금 더 편한 쪽으로 향할 수 있지 않았냐고. 그럼에도 그리 행동한 건, 어떤 것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하다고. 공 대표가 이리 답했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았어요. 눈앞에 있는 것에 대해서만 분노했지요. 정인이 사망 사건 때도 그랬죠. 그게 살인죄가 아니래, 왜 아니야? 이러고 시위하러 나간 거고요. 결과를 바라고 상상했다면 아무것도 못 했을 거예요. 저를 그렇게 거창한 사람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리 마주한 일마다 한 발씩 들어온 거였다.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를 만들었고, 회원은 2만여 명이 됐다. 그가 학대 피해 아동들을 위해 벌이는 일들이 좋아 수년간 취재해왔었다.
협회서 진행하는 다양한 사업은 시선이 꽤 섬세하다. 학대 피해 아동이 잘 회복해 살아가도록 하려 심리 치료 지원을 하고,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 8박9일 제주 도보 여행이나 방학 추억을 만들어주려 바다 여행이나 스키 캠프를 기획하는 것.

분노를 에너지로 쓰다 소진되면, 반복되는 사건에 무기력과 우울감이 엄습한다고 했다. 그에 삼켜지지 않고, 여전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겠다며 당면한 문제에 돌진하는 공혜정 대표. 12년간 아동학대 문제를 겪으며, 결국 핵심은 시스템을 쓰는 '사람'에 있다고 봤다. 그걸 바꾸는 건 '교육'이라고 진단했다.
"서현이 사건 때, 동네 사람들과 얘기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전부 울면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애가 삐쩍 말라보여도 입이 짧은 줄 알았다', '극존칭을 써도 예의가 바른가보다' 했다고요. 의심해볼 수 있었을 거예요. 진짜 제대로 된 교육이 있었다면요. 그때부터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인식을 바꾸는 일은 또 얼마나 오래 걸릴지 상상할 무렵, 공 대표가 이리 말했다.
"계란을 자꾸 던지다 보면 바위가 깨지겠냐고요. 계란만 깨지겠지요. 근데 누군가는 물어볼 거잖아요. '왜 자꾸 계란을 던지세요? 100만년 지나도 꿈쩍도 안 할텐데.' 왜 쓸데 없는짓 하냐고 관심을 가질 거잖아요."
덧붙인 말이 참 좋아, 끝으로 꼭 남기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또 모르죠. 누군가 포크레인을 가져와 바위를 깨부숴 줄 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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