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먼저 온 소방... 아비규환 현장서 기지
전남 함평119안전센터 구급대원 조희주(45) 주임은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근무 교대를 위해 장비를 점검하다 상황판에 적힌 '여객기 추락'을 봤다. 이어진 "181명 탑승" "사망자 다수 발생"이란 상황보고 무전에 오싹해졌다. 당일 오전 9시 20분, 현장에서 마주한 처참한 광경에 몸이 굳어버렸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수습에 안간힘을 썼다. 생존자 이송, 중증도 분류(먼저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가려내는 작업), 사망자 수습을 위해 구급대원 2명과 구조대원 3명이 한 조를 이뤄 초동 대처에 나섰다. 조 주임은 폭발한 기체 잔해에 뒤엉킨 시신을 조심스레 분리하고, 흩어진 시신 일부와 유류품을 찾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참사 당일부터 시작된 비상근무 10일간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은 853명에 달한다.

호남권 대형 재난 현장에 투입된 전남소방본부 119특수구조대 소속 조양현(60) 대장은 참사 초기 '현장 반장' 역할을 했다. 그는 맨 먼저 철물점으로 달려갔다. 1m 길이 금속봉을 있는 대로 끌어 모아, 천을 연결해 깃발을 만들었다. 수색 권역을 기체가 있는 사고 중심부, 활주로, 외곽 갈대밭으로 나눈 뒤 주검이나 시신 일부가 발견된 지점에 깃발을 꽂고 번호를 썼다. 그렇게 꽂은 깃발은 200개가 넘었다. 수색했던 구역을 여러 번 반복해 보지 않는 효율적인 수색과 현장 훼손 최소화를 위한 조치였다는 게 조 대장 설명이다.
지난달 8일 시신이 모두 인도된 뒤에도 소방관들은 20여 일간 수색을 이어갔다. 허리춤까지 올라온 갈대를 전부 밀고, 대원 200명이 투입돼 호미와 갈고리로 훑으며 '현미경 수색'을 했다. 조 대장은 "시신의 아주 작은 일부라도 전부 유족께 돌려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을 잃은 고통에서도 저희를 믿고 기다려준 유가족들께 감사하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2014년 세월호 침몰과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 초대형 참사를 다수 겪은 '37년차 베테랑' 조 대장도 이번 현장 수습은 손에 꼽을 만큼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시신들이 흩어진 범위가 넓은 데다 외부에 훤히 노출돼 있어 부담이 더욱 컸다고 한다. 화재 진압을 위해 다량의 물이 뿌려진 활주로 인근 갈대밭은 늪처럼 변해 대원들이 발을 디딜 때마다 10~20㎝씩 푹푹 빠졌다.
"트라우마 간과 말아야"

소방관들은 참사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유가족은 물론, 소방관들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도 간과해선 안 된다면서다. 전남소방본부에 따르면 구급대원 등 현장에 머무른 직원 1,200여 명 중 당장 치료가 필요한 인원은 52명, 관심군은 190여 명에 달한다. 현장 긴급구조통제단 운영을 맡았던 전남소방본부 임미란(53) 조정관은 사고 초기 3일의 기억이 사라져 지금도 사진 등을 보며 과거를 복구하고 있다. 27년차 베테랑 소방관이 단기 기억상실 증상을 겪을 정도로 충격이 컸던 것이다. 참사 당시 유족과 소방관들에게 심리 지원을 제공했던 김동준 전남소방본부 안전보건팀장은 "현장에 갔던 대원은 당장 이상이 없어도 모두 '일상 잠재군'이라 보고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상담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미란 조정관은 "안전 관리 관련 예산 확보나 의식 강화 등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습 이후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https://v.daum.net/v/20250217120003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