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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외상은 시작부터 끝까지, 몸 부서질 것 같지만"…'현실 백강혁'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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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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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는 사고, 외상외과는 지금①
[인터뷰]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 저자 허윤정 단국대병원 외상외과 교수

 

허윤정 단국대병원 충남권역외상센터 교수./사진=단국대병원

허윤정 단국대병원 충남권역외상센터 교수./사진=단국대병원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의사들이 보기에 '판타지 활극'에 가깝다. 헬기를 직접 조종하고 전장에서 총성을 뚫고 환자를 구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극적이다. 원작 웹소설을 집필한 이비인후과 의사 이낙준(작가명 한산이가)씨조차 인터뷰에서 주인공 백강혁(주지훈 분)을 '초인' '비현실적 캐릭터'라고 묘사했다. 현재의 중증 외상 치료 시스템은 '영웅'이 있어야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에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 백강혁은 실존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188명(2024년 전국 외상전담 전문의)의 의사는 멈춘 심장을 손으로 쥐어짜고,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배를 칼 대신 가위로 가르며 환자의 삶을 1분 1초라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중증외상 환자가 매년 8000명 이상 발생하는 한국에서 노동자, 학생과 같은 '보통의 사람'을 지키는 이들은 사실 누군가에게는 '진짜 영웅'이리라.

 

교통(운수)사고·추락과 같은 중증 외상 사망률(치명률)은 50%가 넘는다. 생과 사를 오가는 갈림길에서 '필수 의료 중 필수 의료'의 외상외과 의사는 무엇을 생각할까. 과로와 소송 위험에 직면한 채 여전히 사람을 살리는 의사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1988년생 'MZ세대'이자 약사에서 의사로, 그것도 외상외과를 선택한 허윤정 단국대병원 외상외과 교수를 지난 7일 병원에서 만나 질문을 쏟아냈다. 1시간 넘게 진행한 인터뷰와 최근 출간된 저서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를 토대로 외상 외과 의사의 속마음을 그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허윤정 교수가 최근 출윤정 교수가 최근 출판한 책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 표지./사진=시공사

허윤정 교수가 최근 출판한 책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 표지./사진=시공사

 


드라마 속 女의사에 꽂히다


외상외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접한 미국 드라마 '그래이 아나토미'의 주인공 메러디스 그레이를 사랑했다. 그레이 슬론 메모리얼 병원에서 생사가 달린 결정을 수없이 내리고 끝내 최고의 자리에 선 여의사 닥터(Dr)·그레이. 그는 나의 영웅이었다. 내과 의사인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의사를 꿈꿨지만, 나의 길은 Dr·그레이와 같은 최고의 외상외과 의사라고 끝없이 되뇌며 막막한 입시 전쟁을 치렀다.

 

수능 점수에 맞춰 약대에 진학했지만 졸업이 다가올수록 이루지 못한 외상외과 의사의 꿈은 더욱 강렬해졌다. 신약을 개발해 많은 생명을 살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약국에 갇혀있는 삶은 답답하게 느껴졌다. 피 튀기는 수술실에서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직접 구하고 싶었다. 약사 면허 시험과 의학전문대학원 입시를 동시에 준비할 땐 죽을 만큼 힘들었는 데 그럴 때면 '세상을 이로운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라'는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Dr·그레이에도 또 한 번 빚을 졌다. 현실과 타협하고 싶을 때마다 내 어깨를 다독여준 그는 멘토이자, 우상이었고 나의 가장 어둡고 힘든 순간을 함께해 준 동료다.

 

의전원을 졸업한 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외과로 전공의 생활을 시작했다. 대장항문·간담췌·위장관·이식혈관·유방갑상선·소아·중환자 7개 분과를 4년 동안 한 달 간격으로 돌며 힘들게 수련받았다. 외상외과는 외과 전공의를 거친 뒤 2년 펠로(전임의)로 세부 수련을 받아야 한다. 7개 외과 중 하나를 고를 수도 있었다. 개원하기도 수월하다. 그래도 한 번 마음 먹은 외상외과 꿈이 어디 가겠나. 오히려 "배울 거면 고수에게 제대로 배우자"는 생각에 2020년 천안 단국대병원 충남권역외상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24시간 '콜 폰' 두 개 들고 뛰어


번화한 도시일수록 중증외상 환자가 잘 없다. 단국대병원은 바로 옆으로 경부 고속도로가 지나며(교통사고) 서해안에는 산업 단지들이 위치하고(산재 사고) 농경지들도 인접해(농경지 사고) 외상 환자가 그야말로 넘쳐나는 곳이다. 그만큼 실력이 좋고 중증 외상 치료에 진심인 의료진이 모여있다.(참고로 단국대병원은 최근 전국 17개 권역외상센터 보건복지부 평가에서 아주대병원에 이어 2등을 했다) 동료란 이름으로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게 여전히 자랑스럽다. 동료와의 팀워크, 그리고 종교(천주교)의 힘. 이 두 가지 동력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이 일을 포기했을 것이다.

 


외상외과 의사의 삶은 '규칙'과는 거리가 멀다. 한 달에 8차례, 24시간 당직 근무를 서고 나머지 시간에는 입원 환자를 돌보려 오후 5시까지 일한다. 놀 시간도 없고 연구할 시간조차 부족하다. 인력이 부족한 지역 외상센터는 모든 의사가 이렇게 일해야 센터를 유지할 수 있다. 당직 근무는 아침 8시 시작해 다음 날 아침 8시에 끝나는데 전원 문의, 환자 상태를 알리는 '콜 폰' 두 개를 24시간 손에 쥔 채 뛰어다닌다. 요즘 같은 연초에는 술을 많이 마시는 탓인지 중증외상 환자가 쏟아져 들어온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종종 내가 밥을 먹었는지, 지금은 몇 시인지도 모르는 무아지경 상태에 빠진다.

 

그래도 환자가 들어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포 하나하나가 곤두선다. 외상외과는 시작부터 끝까지 '클라이맥스'다. 배를 여는 시간도 아까워 가위로 자르는 게 우리들이다. 계획도, 준비도 할 수 없다. 장기에서 피가 솟구치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어떤 장기, 어떤 혈관을 먼저 묶을지 초 단위로 결정해야 한다. 수술실 무영등(수술용 조명) 아래 설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부담감을 느낀다.

 

수술을 한 번에 끝내지 못할 때도 있다. 배를 열어둔 채 랩핑만 한 뒤 중환자실에서 생체징후(바이털)와 검사 결과를 지켜보고, 마취를 견딜 수 있다고 판단되면 또다시 수술을 반복한다. 지금 보는 환자는 입원 중 9번의 수술을 집도했다. 반복하다 보면 정말 몸이 부서질 것만 같다.


의정 갈등 후 커진 비난…상처 커


그런데도 외상외과를 떠나지 않는 것은, 막상 해보니 이 일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숭고한 일이기 때문이다. 생사가 오가는 공간에서 환자를 지켜보고, 그들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중책이지만 그만큼 고귀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가끔은 신이 나에게 사람을 살릴 기회를 주셨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기도 하다. 그렇게 외상외과 의사는 '만들어'진다.

 

병원에서 나는 상냥하거나 다정한 의사는 아니다. 외상 환자를 살리는데 감상과 사적인 감정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데 방해가 된다. 하지만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의사는 어느 땐 가족만큼 그 환자를 사랑한다. 멈춘 심장을 보며 한 번만 다시 뛰어달라고, 그러면 또 한 번 최선을 다하겠다고 속으로 소리치는 것은 사랑의 감정에 가깝다. 그런 만큼 의정 갈등 이후 의사를 향한 비난과 비판이 쇄도할 땐 충격을 받았다. 의사로서 국민 건강을 지킨다는 사명이 컸는데 국민이 응원해주지 않으면 외상센터를 지키는 것도, 외상외과 의사로 살아가는 것도 모두 부질없다고 느껴진다.

 

최근 출판한 책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는 환자의 영혼과 가족들을 애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말 대신 글을 쓰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됐다. 나만의 장례 의식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온 셈이다. 원래 지난해 출판할 예정이었는데, 의정 갈등이 터진 다음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져 세상에 꺼내지 않으려고 했었다. 제목도 '또다시 살려내겠습니다'에서 '살리고 싶어서'라고 은유적으로 바꿨다. 의사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과 반응에 상처가 크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젊은 의사를 외상외과에 지원하게 할까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필수 의료에 대한 아주 획기적인 처우개선과 정책적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후배들에게 '절대 외상외과에 지원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살리고 싶다"

 

중증외상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인적, 물적 자원이 모두 필요하다. 응급센터(응급실)가 있어도 외상외과 의사가 없으면 중증외상 환자를 살리기 힘들다. 응급의학과에서 외상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하고 그 중 '중증'인 경우에만 외상 외과가 개입한다. 반대로 실력 좋은 외상외과 의사가 있어도 24시간 비워진 수술실, 소생 장비 등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으면 제아무리 백강혁이 몇 명 있어도 환자를 살릴 수 없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나서야 하는 것처럼, 중증외상 환자를 살리는 데도 병원 전체가 '원 팀'처럼 한 마음이 돼 움직여야 한다. 누구나 알지만, 문제는 돈이다. 지금의 외상센터 지원금으로는 인건비와 저수가로 인한 적자를 피하지 못한다.

 

의료 행위에 대한 민사·형사 소송을 남발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의사의 자긍심과 생계를 무너트린다. 환자가 죽으면 의사가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어느새 '공식'처럼 적용되고 있다. 질병과 외상을 의사가 일으킨 것이 아닌 만큼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의사의 형사책임을 면책시키는 게 합당하다고 본다. 나 또한 최선을 다한 치료임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당하는 날에는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날 것이다. 당장 오늘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의사로서 환자들이 구급차 안에서 죽어가는데 손 놓고 있지는 않을 테다. 오히려 이 자리를 지키며 글과 말로 더 치열하게 목소리를 낼 것이다.

 

-생략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515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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