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더미에서 찾은 운명적 만남

시작은 우연이었다. 문학 전공자인 김 관장은 2016년 2월 연구차 찾은 일본 야마구치현의 도서관에서 '조선총독부' 자료를 무더기로 발견했다. "다른 도서관에서 검색할 때 나오던 양보다 월등하게 많았어요. 반복해서 나오는 이름 중 하나가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였고요. 뭔가가 있구나 싶었죠."
야마구치 출신인 데라우치와 관련된 자료를 살피다 집어든 책의 뒷표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선관 앞에서 미야노 지역 사람들과 찍은 집합 사진'이라는 제목의 사진 속 표지판에는 '경복궁의 일부를 철거해서 이건했다'는 문구가 선명했다. 건물은 1951년 폭풍우에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
"조선관의 역사를 유추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 몇 달을 헤매다가 포기하려던 찰나 당시 현장을 수습한 건설업체를 찾아보자는 생각이 스쳤어요. 전화번호 100개를 들고 수소문해서 어렵게 찾아낸 지역의 한 업체 창고에서 마주한 건 뜻밖에도 '선원전'이라는 금색 한자가 쓰인 거대한 현판이었죠. 그때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책은 경복궁의 가장 상징적인 전각의 현판이 일본 시골집의 어두컴컴한 창고 천장에 매달리게 된 사연을 상세히 다룬다. 그에 따르면 당시 조선관의 잔해에서 소장자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현판을 수거했고 대를 이어 보관해왔다. 폭풍이나 홍수로부터 현판을 보존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창고의 대들보에 매달아 놓은 덕분에 현판이 반세기 동안 훼손 없이 보존될 수 있었다. "조선 왕의 어진을 보관하고 제사를 지내던 진전(眞殿)의 현판이 이렇게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슬프고 감격스러웠어요. 두 달 뒤 한번 더 볼 기회가 있었는데 온전한 모습에 마냥 좋아서 웃음이 나더군요."
김 관장은 현판을 옮겨온 데라우치에 대해 파고들다 태생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놀랍게도 데라우치는 백제에서 야마구치로 망명한 임성태자를 섬기는 절에 같이 살던 부하의 후손이었다"며 "조선 왕실의 근원을 상징하는 선원전의 현판을 몰래 고향으로 옮겨온 이유도 데라우치 본인의 뿌리를 조선에서 찾았던 데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고 추측했다.
7년 만에 日 경매장 등장

김 관장은 다시 소장자를 찾았지만 만날 수 없었다. 건물이 철거돼 현판의 행방을 더 이상 알 수 없게 됐다. 200일간 뭔가에 홀린 듯 현판을 추적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일제강점기 조국의 아픈 역사가 눈앞에서 역사의 톱니바퀴와 맞물리는 모습을 본 여운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기 때문. "선원전이 어디서 어떻게 뜯기고 숨겨지고 사라졌는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언젠가 선원전 현판이 세상에 나오면 100년 동안 잊혀 있던 자취를 고증하는 사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가 자비를 털어 책을 낸 이유다.
선원전 현판은 그로부터 7년 뒤인 2023년 12월 일본 후쿠오카 경매에 나왔다. 김 관장이 경매 전 미리 배포하는 인쇄물에 경복궁 현판이 실려 있다는 연락을 받고 경매장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한국 정부가 환수해간 후였다. "그 소식을 듣고 무릎에 힘이 풀렸어요. 지난 몇 년간 갈증과 애달픔이 가라앉는 느낌이었죠. 이렇게 신속하게 문화재를 찾아 환수해간 국력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여기까지가 그가 전한 '옥의 뿌리(璿源)' 선원전 현판의 과거이자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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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0314320001753)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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