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 “왜 사람이 죽어도 룰을 만들지 않습니까”.
2024년 9월 사망한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 씨의 유족은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프리랜서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는 입장을 전했다.
고 오요안나 씨는 2021년 5월 MBC 기상캐스터로 발탁됐다. 고인은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 외에도 대부분 방송사 기상캐스터는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되고 있으며 PD, 아나운서, 방송작가 등 방송국 내 많은 인력들이 프리랜서 또는 간접 고용 형태의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방송사 비정규직 근로 여건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2021년 MBC를 포함한 13개 지상파 방송사 인력 중 9199명이 비정규직이다. 이들 중 32.1%(2953명)가 프리랜서였고, 19.2%(1769명)가 파견직, 12.5%(1154명)가 계약직이었다. 같은 해 지상파 신규직원 인력충원 현황을 보면, 방송제작 인력 237명의 64.1%(152명)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졌고 작가와 리포터 등이 포함된 ‘기타’ 직군의 4분의 1이 비정규직으로 충원됐다.
미디어 비정규직 노동단체 ‘엔딩크레딧’은 2월 4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사건은 MBC 내부에서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불법 부당한 피해를 입었을 때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경로로 이를 올바르게 해결할 수 없음을 드러낸 사례”라면서 “고용노동부는 MBC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이번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방송사 불법 프리랜서 문제,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2월 4일 오요안나 씨 직장 내 괴롭힘 의혹과 관련한 예비 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서부고용노동지청은 MBC에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자체 조사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린 바 있다. 고용노동부는 MBC의 자체 진상조사와 별개로 사업장에 관련 서류 등을 요구해 ‘오요안나 사건’을 살펴볼 계획이다. 자체 진상조사 결과가 사측인 MBC에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고용노동부는 우선 기상캐스터의 ‘근로자성’에 대해 검토할 계획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일 경우에만 적용되며,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규정된다. 근로자성 판단에 가장 중요한 건 회사의 지시·관리·통제 하에서 일했는지 여부이기 때문에 프리랜서라 하더라도 이러한 사용종속관계가 유지됐다고 인정되면 근로자로 볼 수 있다.
한편 오 씨 유족 A 씨는 “한 번을 찔렀든 두 번을 찔렀든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라면서 “누구를 처벌해 복수한다거나 MBC 사장을 끌어내리려는 게 아니다. 괴롭힘에 의해 사람이 죽었으니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직장 내 ‘을’들이 계속 죽어가는 사회에 안전망을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다른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요안나 죽음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A 씨는 “방송국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 자신들의 문화라고 보는 듯하다. 잘못했으니 혼나는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라면서 “‘군대 가면 원래 맞는 거야’ ‘시집살이 원래 힘든 거야’ 이런 태도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나오지 않나. 한 사람의 의지가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을 믿고 있다. 저희가 하는 싸움이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MBC 측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면서 프리랜서 노동자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프리랜서 노동자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증명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여하도록 하는 ‘오요안나법’ 제정 요구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A 씨는 “도로에서 사람이 죽으면 도로교통법을 개정하고 스포츠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룰을 만드는데, 왜 노동 시장에서는 개선하거나 룰을 만들지 않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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