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쌍용총 등의 고구려 벽화에 고증되어 있는 특유의 땡땡이 무늬와 다채로운 색상의 주름치마
중국과의 교류도 잦았던 고구려는 우리 예맥민족 전통복식(상의-하의가 나뉘어진 투피스) 외에도
남자들마저 상하의가 원피스 치마 형태로 연결된 한나라 양식의 옷도 볼 수 있었음
백제
일본에 선진문물 전파에 적극적이었던 백제의 상류층 복식은
고분시대 - 나라 아스카시대 일본 지배층들의 복식에 그대로 답습되었음
그리고 신라는 6세기까지 전기신라랑 후기 통일신라 나눠서 봐야 함
통일이전 초기 신라
후기 통일신라
김춘추의 적극적인 당 문물 수용정책 이후
상류층에서 당나라 스타일이 크게 유행함
(드라마 '해신'에서 진골 귀족으로 나온 자미부인의 패션에서 당나라 유행의 영향을 받은 상류층 복식을 볼 수 있음)
그러나 오래전부터 내려져 온
우리 예맥민족 전통 양식의 복장도 여전히 이어졌음
이는 고려시대에도 전기(송나라+우리 전통양식)와
후기(원나라+우리 전통양식) 이중 양식으로 이어지게 됨
초창기 신라
후기 통일신라
관리들의 신료복도 신라 전기와 통일 이후 후기가 크게 달라짐
원래 삼국시대의 신료들은 새의 깃털을 꽂은 모자(고구려의 조우관)나 금관 등을 썼지만
김춘추가 당나라 풍속을 대거 받아들인 이후
복두를 쓰고 단령을 입는 관료복이 정착되기 시작
고려 전기
(고려시대만 해도 상류층 남자들은 귀걸이를 하고 다녔음)
고려 후기
고려 전기에는 신라 시대의 복식이 그대로 이어지거나 중국 송나라의 유행이 혼합된 모습이지만
고려 후기에는 소위 '몽골풍'이 상류층에서 크게 유행하게 됨
특히 남자들이 즐겨입기 시작한 '철릭'(몽골이름으로 테를릭)이라든지
여자들의 '족두리'는 전형적인 몽골풍으로
이후 조선시대 한복까지 이어져 우리나라의 전통으로 녹아 든 사례들
마찬가지로 몽골풍의 영향을 받았으며
다음 왕조인 조선시대까지 영향을 주게 된
고려 후기 관료들의 옷차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