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지금 외국인 관광객 분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헬로우.(Hello) 노 파이어, 노 파이어.(No, fire)”
서울 종로구 북촌 한가운데 자리한 헌법재판소 앞으로 깃발을 든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줄지어 지나가자 그 앞에서 ‘탄핵 반대’ 집회 중이던 한 참가자가 손을 흔들며 ‘노 파이어’라고 외친다. 이들은 ‘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춰라)’이라는 팻말도 든다. 이는 4년 전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승리하자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내세운 구호다. 부정선거를 확신하며 성조기도 드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미국땅에서 횡행하던 구호를 가져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건너편 안국역 앞에선 한 여성이 “Impeach Yoon, Arrest Yoon, You Are Fired!!’(윤석열을 탄핵하고 체포하라, 너는 해고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서있었다. 2024년 1월 케이(K) 관광지의 진풍경이다.
지난해 12월1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지 한달여가 지났다. 주요 관광지인 북촌에서 엄·근·진(엄격·근엄·진지) 모습으로 자리를 지켜온 헌재가 이제는 ‘케이-탄핵’의 상징이 돼 관광명소가 됐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갈 정도다.
탄핵안이 통과된 이후 윤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할 재판관들에게 관심이 쏠렸다. 기자들은 매일 아침 재판관 6명의 출근길을 지켰다. 이들은 매일같이 회의를 하며 윤 대통령 탄핵 재판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는다. 기자들이 재판관들을 만나 유일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게 바로 이 출근길이다. 재판관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뉴스가 되는 셈인데, 지난해 16일 동안(2024년 12월16일∼12월31일) 재판관들 중 유일하게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한 재판관은 김형두 재판관 한명이었다. 그마저도 주로 “자세한 건 공보관에게 물어보라”는 답변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판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헌재는 새해부터는 출근길 취재도 아예 금지했다. 올해 1월1일부턴 기자들도 재판관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청사 인근 먼발치에서 카메라를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었다.
재판관들에 대한 보안 강화는 헌재 앞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될 만하다. 재판관들이 느끼는 압박의 수위는 헌재 앞 줄지어선 화환들만 봐도 알 수 있다. 탄핵안 통과 다음날부터 하나둘 놓이기 시작한 ‘탄핵 각하’ ‘대통령님 힘내세요’ 등이 적힌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화환은 줄지어서다 못해 헌재 주변을 뱅 둘렀다.
지난달 27일 첫 변론준비기일을 진행한 이후에는 헌재 앞 시위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위는 유독 특정 재판관을 향한 메시지로 가득했다. 변론준비기일을 진행하는 수명재판관인 정형식·이미선 재판관은 증거와 쟁점을 정리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들은 탄핵 여부 판단에 필요하다며 윤 대통령 내란죄 관련 수사기록을 수사기관으로부터 받아보기로 결정했다. 윤 대통령 쪽이 강하게 반발하자 지지자들도 함께 움직였다. 주로 공격 대상은 이미선 재판관이었다. 1차 변론기일 이후부터 헌재 앞에는 ‘이미선 OUT’이라는 손팻말이 등장했다. 헌재 누리집 인터넷게시판에는 이 재판관 사퇴를 촉구하는 글도 폭발적으로 올라왔다. 이 재판관은 지난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고, 정 재판관은 지난 2023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21일 헌재에 처음으로 출석하면서 지지층 결집은 더욱 거세졌다. 경찰들은 휴대전화를 셀카봉에 끼우고 이른바 ‘인방’(인터넷 방송)을 하는 유튜버들을 가장 경계했다. 경찰은 윤 대통령 출석 2시간 전부터 안국역에서 헌재로 가는 길을 아예 통제해 ‘유튜버’들의 출입을 막았다.
기자의 헌재 출입도 어려워졌다. 안국역 앞에서 경찰한테 기자증을 보여주고, 헌재 출입문에서 직원에게 신분증과 기자증을 한번 더 보여준 뒤, 다시 경비실로 들어가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고서야 헌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박근혜 정권을 하루빨리 퇴진시킬 수 있도록 헌법재판관들이 밤새가며 일해야 할 때입니다. 헌법재판소 마당에 라꾸라꾸침대와 컵라면, 커피를 보냅시다.”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됐을 때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한 말이다.
8년 만에 다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접수한 헌재 앞 풍경은 당시의 ‘응원’ 움직임과는 많이 다르다. ‘탄핵 반대’를 넘어 재판관을 끌어내리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남은 변론기일에 ‘개근’을 예고하면서 지지자들도 더욱 결집하고 있다. 경찰은 윤 대통령이 출석하는 날마다 4000명가량의 경찰을 헌재 주변에 투입하고 있다.
탄핵 반대 목소리가 찬성 목소리보다 유난히 더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정당 출신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탄핵을 한번 경험한 보수정당 골수 지지자들이 이번 탄핵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절실함을 비뚤게 표출해내고 있다. 탄핵될 가능성이 크다는 불안감이 이렇게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과연 진짜 윤 대통령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서울 종로구 북촌 한가운데 자리한 헌법재판소 앞으로 깃발을 든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줄지어 지나가자 그 앞에서 ‘탄핵 반대’ 집회 중이던 한 참가자가 손을 흔들며 ‘노 파이어’라고 외친다. 이들은 ‘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춰라)’이라는 팻말도 든다. 이는 4년 전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승리하자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내세운 구호다. 부정선거를 확신하며 성조기도 드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미국땅에서 횡행하던 구호를 가져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건너편 안국역 앞에선 한 여성이 “Impeach Yoon, Arrest Yoon, You Are Fired!!’(윤석열을 탄핵하고 체포하라, 너는 해고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서있었다. 2024년 1월 케이(K) 관광지의 진풍경이다.
지난해 12월1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지 한달여가 지났다. 주요 관광지인 북촌에서 엄·근·진(엄격·근엄·진지) 모습으로 자리를 지켜온 헌재가 이제는 ‘케이-탄핵’의 상징이 돼 관광명소가 됐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갈 정도다.
■ 관심 높아질수록 ‘입꾹닫’ 재판관들
탄핵안이 통과된 이후 윤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할 재판관들에게 관심이 쏠렸다. 기자들은 매일 아침 재판관 6명의 출근길을 지켰다. 이들은 매일같이 회의를 하며 윤 대통령 탄핵 재판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는다. 기자들이 재판관들을 만나 유일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게 바로 이 출근길이다. 재판관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뉴스가 되는 셈인데, 지난해 16일 동안(2024년 12월16일∼12월31일) 재판관들 중 유일하게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한 재판관은 김형두 재판관 한명이었다. 그마저도 주로 “자세한 건 공보관에게 물어보라”는 답변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판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헌재는 새해부터는 출근길 취재도 아예 금지했다. 올해 1월1일부턴 기자들도 재판관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청사 인근 먼발치에서 카메라를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었다.
■ ‘극우’의 과격해진 좌표찍기
재판관들에 대한 보안 강화는 헌재 앞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될 만하다. 재판관들이 느끼는 압박의 수위는 헌재 앞 줄지어선 화환들만 봐도 알 수 있다. 탄핵안 통과 다음날부터 하나둘 놓이기 시작한 ‘탄핵 각하’ ‘대통령님 힘내세요’ 등이 적힌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화환은 줄지어서다 못해 헌재 주변을 뱅 둘렀다.
지난달 27일 첫 변론준비기일을 진행한 이후에는 헌재 앞 시위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위는 유독 특정 재판관을 향한 메시지로 가득했다. 변론준비기일을 진행하는 수명재판관인 정형식·이미선 재판관은 증거와 쟁점을 정리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들은 탄핵 여부 판단에 필요하다며 윤 대통령 내란죄 관련 수사기록을 수사기관으로부터 받아보기로 결정했다. 윤 대통령 쪽이 강하게 반발하자 지지자들도 함께 움직였다. 주로 공격 대상은 이미선 재판관이었다. 1차 변론기일 이후부터 헌재 앞에는 ‘이미선 OUT’이라는 손팻말이 등장했다. 헌재 누리집 인터넷게시판에는 이 재판관 사퇴를 촉구하는 글도 폭발적으로 올라왔다. 이 재판관은 지난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고, 정 재판관은 지난 2023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했다.
헌재 앞 시위가 정점을 찍은 건 지난 19일 윤 대통령 극우 지지자들의 서부지법 난동사태가 벌어진 직후였다. 시위대들은 그날 이후 헌재 앞으로 몰려들었고 헌재 담을 넘으려던 남성이 현장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재판관들의 신변보호와 헌재 안팎 경비도 강화됐다.
윤 대통령이 지난 21일 헌재에 처음으로 출석하면서 지지층 결집은 더욱 거세졌다. 경찰들은 휴대전화를 셀카봉에 끼우고 이른바 ‘인방’(인터넷 방송)을 하는 유튜버들을 가장 경계했다. 경찰은 윤 대통령 출석 2시간 전부터 안국역에서 헌재로 가는 길을 아예 통제해 ‘유튜버’들의 출입을 막았다.
기자의 헌재 출입도 어려워졌다. 안국역 앞에서 경찰한테 기자증을 보여주고, 헌재 출입문에서 직원에게 신분증과 기자증을 한번 더 보여준 뒤, 다시 경비실로 들어가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고서야 헌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 8년 만의 또 대통령 탄핵…보수와 극우가 배운 것
“박근혜 정권을 하루빨리 퇴진시킬 수 있도록 헌법재판관들이 밤새가며 일해야 할 때입니다. 헌법재판소 마당에 라꾸라꾸침대와 컵라면, 커피를 보냅시다.”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됐을 때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한 말이다.
8년 만에 다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접수한 헌재 앞 풍경은 당시의 ‘응원’ 움직임과는 많이 다르다. ‘탄핵 반대’를 넘어 재판관을 끌어내리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남은 변론기일에 ‘개근’을 예고하면서 지지자들도 더욱 결집하고 있다. 경찰은 윤 대통령이 출석하는 날마다 4000명가량의 경찰을 헌재 주변에 투입하고 있다.
탄핵 반대 목소리가 찬성 목소리보다 유난히 더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정당 출신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탄핵을 한번 경험한 보수정당 골수 지지자들이 이번 탄핵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절실함을 비뚤게 표출해내고 있다. 탄핵될 가능성이 크다는 불안감이 이렇게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과연 진짜 윤 대통령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728647?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