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아티스트’는 특정 문화예술 분야 ‘전문인력’ 정도를 가리킨다.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해 자기 세계관을 펼치는 한국식 개념과는 좀 다르다. 그러니 2010년 소녀시대 등 한국 걸그룹들의 일본시장 상륙 당시 일본미디어에서 이들을 가리켜 ‘아티스트에 가깝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면 한국대중 입장에선 점점 더 아리송한 얘기가 된다. 일본서 아이돌이란 의도적으로 전문성으로부터 탈피한 직종이란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다.
일본이라고 춤 잘 추는 댄서, 노래 잘 부르는 가수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대중문화계 전문인력 저변 자체는 한국보다 활성화돼있는 실정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런 갖가지 전문 분야들도 제각각 작은 시장들을 성립시킬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문 댄스 팀 공연시장이 따로 있고, 싱어송라이터 공연과 음반시장이 따로 있으며, 그보다 마니악한 취향들도 보상받을 수 있는 시장 환경이 마련돼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아이돌’은 전혀 다른 조건으로 성립될 수밖에 없다. 갖가지 전문영역 ‘표피’들만을 그러모은 형태, 다양한 영역에 걸쳐는 있지만 이렇다 할 역량은 갖추지 못한 다용도 범용상품 노선이 된다. 실제로 일본에서 아이돌은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심지어 라멘 말아주며 노래하는 아이돌도 존재한다.
전문성에서 벗어난 만큼 보다 살갑고 가볍게 소비되는 존재인 셈이다. 그 이상을 원한다면 그에 합당한 작은 시장들이 따로 존재하니 그리로 소비하면 된다. 그렇게 일본 아이돌은, 어찌 보면 비전문성을 목표(?)로 삼는 노선이라고까지 볼만 하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대중문화 어느 분야건 중심이 되는 ‘굵은’ 노선을 제외하곤 작은 시장들 성립이 잘 안 되는 분위기다. 인디음악 시장은 미미하게나마 존립되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전문 댄스 팀 공연시장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 외에 잡지모델 등 모델시장 역시 국내수요만으론 성립이 잘 안 된다. ‘작은 것’은 뭐든 잘 안 된다. 대신 그 중심이 되는 ‘굵은’ 산업이 모든 근접 장르 시장은 물론 그 경향과 개념까지도 모조리 빨아들이는 형태다.
그래서 한국 아이돌은 춤도 전문 댄서 못지않게 춰야 하고, 노래도 수준급으로 불러야 하며, 개중에서 또 튀어 인정받으려면 작사/작곡/편곡 실력까지 갖춰야 한다. 거기다 외모 역시 모델 수준이어야 한다. 제대로 굴러가는 시장이 ‘굵은’ 아이돌 시장 하나밖에 없으니 다른 근접 분야들 요구조건까지 그 안으로 스며들어 훨씬 까다로운 조건들을 탄생시킨 형태다. 결국 아이돌이란 상품 하나만으로도 (실제로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가지각색 분야들 쾌(快)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디자인된 셈이다.
한국서 이 같은 쏠림현상은 비단 아이돌산업 차원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영화산업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일례로, 한국엔 ‘예술영화시장’이란 게 딱히 존재하질 않는다. 해외기준으로 아트하우스(예술영화전용관) 등에서 상영되는 영화들 말이다. 그 외 각종 마니악한 서브장르영화 시장들도 존재하질 않는다. 영화산업에서 역시 ‘작은 것’은 성립되질 않는다. 대신 ‘굵은’ 대중용 상업영화가 모든 잔가지 장르 시장들은 물론 그 특성과 경향들까지 모조리 흡수한 형태다.
K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봐도 아이돌상품인데도 퀄리티가 불필요할 정도(?)로 높다. 음악 자체 퀄리티도 그렇거니와, 칼군무 등 퍼포먼스 차원에서도 전문 댄서 버금가는 실력이 추가된다. 대충 설렁설렁 율동하는 일본이나 미국 보이그룹 노선과는 차원이 다른 상품, 그런데도 어찌됐건 아이돌이란 범용노선에 기반하고 있는 독특한 차별화 상품이 되는 것이다. 자신들 시장엔 존재하지 않는 ‘중간노선 상품’이기에 일종의 경계상품-특수상품으로서 활로가 열린 셈이다.
잘게 나뉜 마니악한 시장들을 아우르는 범용상품 시장이란 본래 퀄리티 차원에선 큰 요구가 없는 법이다. 오히려 한국이 특이한 환경에 가깝다. 그리고 그 특이함으로 해외시장 ‘틈새’를 공략해낸 게 바로 한류다.
출처 - 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