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경기 A아파트 지하주차장. 사각기둥 한 곳 표면에 비(非)파괴 철근 검사기를 갖다 대고 왼쪽부터 천천히 훑었다. 검사기 액정 화면에 ‘철근’을 나타내는 파란 수직선이 하나씩 나타났다. 총 4개. 표면에서 깊이 3cm 안에 철근 4개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8개여야 하는데 4개가 안 보이네요.” 설계 도면대로면 철근은 8개여야 했다. 기둥의 다른 3개 면도 검사기로 훑었다. 그 결과 기둥 속에 있어야 할 주철근 총 24개 중 12개가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과 검사에 동행한 최명기 한국건설안전학회 부회장은 “기둥이 잘못 설치됐다”고 말했다.
2023년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뒤 국토교통부는 같은해 10월 23일 전국 민간 무량판 아파트 427곳(시공 중 139곳, 준공 288곳)을 2개월간 전수 조사한 결과 ‘철근 누락 등 부실 시공이 없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토부는 결과만 발표하고 아파트 명단, 세부 안전진단 결과는 비공개에 부쳤다.
아파트는 한국인에게 ‘집’을 넘어 재산 대부분이자 정체성이다. 한국인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정부 발표대로 우리 아파트는 안전할까. 검증이 필요했다. 히어로팀은 정부가 공개하지 않은 1102쪽 분량(준공 288곳)의 무량판 아파트 안전진단 보고서 전체를 입수해 전문가들과 수개월간 분석했다. 철근 누락 8곳, 콘크리트 강도 미달 3곳 등 최소 11곳에서 부실이 발견됐다.

● 21곳 아파트 중 9곳 철근 누락
주철근은 건물을 지탱하는 여러 소재 중 콘크리트와 함께 가장 중요한 ‘뼈대’ 역할을 한다. 2023년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전단보강근’은 기둥과 천장, 바닥의 연결 부위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주철근은 건물 무게를 직접 지탱한다. 건물의 붕괴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부위지만 정작 국토부 조사에서는 대상에서 빠졌다.
히어로팀은 지난해 5개월간 전국 5개 시도의 21개 단지 아파트 지하주차장 기둥의 주철근 시공 상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9개 단지에서 주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기둥 숫자로는 총 850여 개를 조사했는데 그중 25개(약 3%) 기둥에 철근 총 60개가 빠져 있었다.
● 철근 1개=사무실 하나 버틸 힘… “1개라도 누락 땐 보강해야”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철근 누락 지점을 반드시 보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감정인(건설) 오석진 진이엔씨 대표는 “신차 타이어 부품 1개가 없어도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 아파트도 같다”고 말했다. 구조설계전문업체 정승열 SH구조엔지니어링 대표는 “철근 한 개라도 빠지면 그만큼 무게를 버틸 여유가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건설 현장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내는 ‘밸류엔지니어링(VE)’이 확대되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율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1.5배 이상 두던 안전율을 1에 가깝게 타이트하게 수정하는 식이다. 김규용 충남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시공 관리 감독 역량이 떨어진다”며 “무턱대고 안전율만 타이트하게 가져가면 붕괴 위험만 높아지는 꼴”이라고 했다.

출처 :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611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