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CIA는 김대중의 납치 소식을 즉시 파악하고 납치된 김대중의 소재를 24시간 안에 파악하고자 별도의 액션을 취했다. 이때 주한 미국 대사이던 필립 C. 하비브는 CIA 한국 지부장이었던 도널드 그레그에게 "박정희는 김대중이 납치된 이후 24시간 동안은 미국의 눈치를 볼 것이니 그 안에 찾아내도록 하라"며 조언했고 서울에 있었던 그레그 본인 역시 CIA의 감청 요원으로부터 김대중이 납치되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직접 한국의 중앙정보부에 전화를 걸어 "김대중을 죽이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결국 CIA 한국지부 요원들이 김대중의 소재를 찾아냈다. 도널드 그레그는 훗날 '하비브 주한 미국대사가 청와대에 직접 찾아갔으며, 박정희에게 "김대중을 죽이면 한미 관계에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자 박정희로부터 "(김대중은) 곧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변하였다. 배로 어떤 전화가 걸려왔고, 전화를 받은 선원들은 갑자기 김대중의 복면을 벗기고 손을 풀어준 뒤 갈증을 호소하는 김대중에게 물도 마시게 하였다. 김대중을 배에 태운 지 53시간 만의 일이었다. 이때 어떤 젊은 선원이 김대중에게 "당신은 왜 해외에서 반국가적인 행동을 하고 다니는 것이오?"라고 물었고 김대중이 "나는 박정희 정권을 반대한 것이지 국가를 반대한 적이 없소."라고 답하자 그 선원이 "정부는 국가나 마찬가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 끝에 김대중을 더 이상 살해할 여지가 없어지자 김대중은 8월 11일 새벽 부산항으로 추정되는 항구에 도착해 구급차에 태워지고 수면제에 의해 잠들었다. 잠이 깼을 때는 어느 2층 건물에 있었다. 다시 날이 어두워지자 차에 태워진 김대중은 서울 동교동 자택 근처에서 풀려났다. 납치된 지 129시간 만인 8월 13일 밤 10시 15분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