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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돌봄 외주화하면 저출생 해결? 한국 남성 정치인들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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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6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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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khan.co.kr/article/202501151019001/?utm_source=twitter&utm_medium=social&utm_campaign=khan

 

필리핀 페미니즘 철학 연구자

노엘 크루즈 드라살대 교수

 

지난해 9월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서울에서 시작됐다. 100명 규모였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이를 1200명 규모로 확대하기 위해 수요조사를 했지만 서울에서 900명, 부산 및 세종에서 20명 이하 등 수요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17개 지방자치단체에선 수요가 아예 없었다.

세계 최저의 출생률 문제가 심화하면서 일각에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며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을 통해 필리핀 사람들은 필리핀에서보다 많은 돈을 벌고 한국 사람들은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윈윈(win-win)’ 아니냐고 묻는다.

노엘 레슬리 델라 크루즈 필리핀 드라살대 철학과 교수는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피상적으로는 좋게 보인다. 하지만 여성의 돌봄을 착취하는 동시에 여성을 평가절하하는 체제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손해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 시대 초국적 돌봄 체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12월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인종과 젠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노엘 레슬리 델라 크루즈 필리핀 드라살대 철학과 교수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임아영 기자

노엘 레슬리 델라 크루즈 필리핀 드라살대 철학과 교수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임아영 기자

크루즈 교수는 이주 돌봄노동 문제는 젠더, 인종, 탈식민주의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로 초국적 관점에서 돌봄 위기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유럽 국가처럼 강력한 복지국가, 성평등 지수가 높은 사회에서도 “(이주) 돌봄 제공자들은 휴식을 취할 틈이 없다”고 말했다.

후기 산업 사회가 발전하면서 여성이 유급 노동 시장에 진출했지만 남녀 간 돌봄 책임이 실질적으로 재분배되지 않았고 공공 돌봄 인프라도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초국적 돌봄 시장’이다.

크루즈 교수는 이러한 구조에서 필리핀은 돌봄노동의 수출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구조는 필리핀 내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요를 해결하기 어렵게 한다. 그는 “현대판 국민 영웅으로 불리는 이주 노동자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노동력 수출 전략은 필리핀의 실업, 불완전 고용, 일자리 불안정성을 완화시키지 못한 채 ‘떠도는 값싼 노동력’만을 생산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필리핀 경제는 해외 진출 노동자들의 송금액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플랫]인권 침해 드러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플랫] 이주 여성의 ‘돌봄 돌려막기’가 한국의 절반을 지탱하고 있다

한국은 1990년대 초부터 결혼 이민 프로그램, 보육지원책, 일과 삶의 균형 정책 등을 내놨지만 떨어지는 출생률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지난해 8월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지난해 8월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크루즈 교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을 시작한 한국에 ‘젠더 질서가 변화하지 않는 것’을 봐야 한다고 했다.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이 ‘한국 여성’에서 ‘필리핀 여성’으로 바뀌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및 필리핀 여성들의 지위를 전반적으로 평가절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평가절하는 계층적으로 이뤄진다. 실제 한국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많이 배치된 지역은 서울 강남이었다. 크루즈 교수는 “한국에선 진정한 여성의 해방은 없고 부유한 여성들만 돌봄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라며 “선진국이 됐지만 여전히 가부장적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조사에서 서울 수요만 높은 것에 대해 그는 “정부는 한 도시가 아닌 국가 전체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노엘 레슬리 델라 크루즈 필리핀 드라살대 철학과 교수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임아영 기자

노엘 레슬리 델라 크루즈 필리핀 드라살대 철학과 교수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임아영 기자

답은 자본주의 체제와 남성성이 변화하지 않은 데서 찾아야 한다. 크루즈 교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을 추진했던 남성 정치인들에 대해 “그들은 돌봄을 외주화하면 저출생 문제가 해결된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며 “자신들이 돌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젠더 관점에서 문화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저출생 관련 가족 정책을 내놨지만 아무리 현금을 준다고 해도 출생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젠더 관점에서 문화적으로 변하지 않는 정책을 내놓기 때문”이라며 “남성이 돌봄노동에 제대로 기여할 때 한국의 문화가 가장 많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루즈 교수는 학술 논문 등을 보면서 한국 여성들이 일자리에서 겪게 되는 압박감이 얼마나 강한지 체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한국 여성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플랫]‘시골 우리 어머니’만 찾는 당신들에게

크루즈 교수는 “내 꿈은 내 조국 필리핀이 돌봄 노동자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올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필리핀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 온 필리핀의 가사관리사들이 한국의 노동자들과 동등한 관계를 맺고 동등한 지위에 놓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장기적으로 필리핀 경제가 나아져서 이들이 해외에 가서 일하지 않아도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임아영 젠더데스크 layknt@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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