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지갑, 주저앉는 경제]
내수 부진에 불법 계엄 여파까지 덮쳐
"연말 특수? 올해는 정말 꿈 같은 얘기"
주요 먹자골목 식당들 '예약 줄취소'
민간 기업, 관공서들은 '회식 자제령'
소상공인 88% "계엄 이후 매출 줄었다"
12·3 불법 계엄 사태 이후 정국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한 음식점의 12월 예약 달력이 비어 있다. 들어온 일부 예약도 취소돼 수정 펜 흔적이 남아 있다. 연합뉴스
여보세요··· 저기 사장님 죄송한데요···.
서울 종로구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인근 먹자골목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영욱(39)씨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죄송하다"로 시작하는 전화에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뒤에 이어지는 말은 뻔했다. "저희 12월 23일에 다섯 명 예약했는데요. 못 갈 것 같습니다." 김씨는 12월 들어 밀려오는 취소 전화에 열 통까지는 셌지만 그 뒤로는 포기했다. "12월 둘째, 셋째 주 예약 중 절반 가까이가 취소됐습니다."
5년 전 종각 먹자골목 고깃집을 인수한 김씨는 "올해만큼 힘든 해가 없다"고 했다. 특히 연말에 다가갈수록 내수 부진이 피부로 이렇게 와닿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김씨는 "올해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서 가을까지도 다른 해와 비교해 매출이 30% 정도 빠졌다"며 "그래도 연말에는 조금 회복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 사태에 분위기가 더 나빠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상공인 89% "방문 고객 줄었다"...88% '매출 감소'
내수 부진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올해 내내 얇아진 지갑은 불법 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로 완전히 닫혀버렸다. 특히 연말 특수를 노리는 요식업, 숙박업 종사자들이 입은 타격은 예상을 넘어섰다. 종각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씨처럼 1년 내내 줄어든 매출을 연말에 조금이라도 만회해보려 했던 이들은 "아주 달콤한 꿈이었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이모(54)씨는 "이럴 거면 잠시 휴업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이씨는 "연말에는 가격을 올려도 손님들이 들어차는데 객실의 60%가 비어 있다"며 "1년 중 가장 많이 수익을 낼 수 있을 때 돈을 벌 수 없으니 문을 잠시 닫을까도 고민한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윤 대통령의 불법 계엄 이후 실시한 긴급 경기전망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불법 계엄 이후 소상공인의 88%가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매장을 직접 방문하는 고객이 감소했다는 업체도 무려 '89%'에 달했다. 이 중 매출이 50% 이상 줄어든 사업체만 36%였다. 업종별로는 매출 50% 이상 감소한 곳이 절반 이상인 업종은 숙박업이었고 그 뒤를 식음료업(40%)이 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소상공인의 '90%'는 연말까지 경기 전망을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시국이 불안하다"... 연말 회식 취소하는 기업, 관공서
16일 오후 서울 종로의 음식점 밀집 거리의 한 상점에 송년회 예약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연말 특수가 사라지는 데는 연말 회식 취소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천에 사는 직장인 이모(37)씨는 "불법 계엄 사태 이후로 사내 회식이 모두 취소됐다"고 말했다. 불법 계엄이 있었던 3일 바로 다음 날 예정돼 있던 팀 회식은 당연히 취소됐고 19일에 잡혀 있던 부서 전체 회식마저도 기약 없이 연기됐다고 한다.
아예 회사에서 '회식 자제령'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한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박모(34)씨는 "불법 계엄, 현직 대통령 탄핵 정국에 회사에서도 굳이 신나는 연말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을 꺼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공서는 민간 기업보다 제재 강도가 더 강하다. '근무기강 확립'과 같은 공문이 내려오면서 단체 예약을 취소하거나 점심 식사로 대체하는 분위기다. 100명 이상의 대규모 송년회 대관 예약 취소가 이어지는 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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