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여의도의 응원봉과 동덕여대의 래커를 함께 말하기 (위근우 인스타)
1,812 53
2024.12.18 17:44
1,812 53

 

이번 탄핵 시위 최고의 히트 상품이 응원봉이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 같다. 
그동안 '빠순이'라는 멸칭으로 비하되던 케이팝 팬덤 2030 여성들이 정치적 주체로서 응원봉을 흔들며 탄핵을 외친 순간은, 
그들이 누적해온 문화적 역량이 광장에서 얼마나 강력하게 불타오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어스름이 깔리는 여의도를 환하게 밝히던 응원봉은 
아직 탄핵 가결이 되지 않던 상황에조차 '다만세'를 비롯한 수많은 케이팝 넘버와 함께 알 수 없는 낙관의 분위기를 형성했다.

 

 

 

물론 그들이 이번에 갑자기 광장에 등장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건 
그동안 젊은 여성들이 주도한 수많은 정치적 시위(많은 경우 여성주의를 동반한)에 무관심했다는 반증일 게다. 
이에 대해선 칼럼니스트 복길 님(경향신문), 언론개혁시민연대 권순택 님(기자협회보)이 이미 좋은 글을 남겨주시기도 했는데, 
당장 나로선 과거 여성들이 혜화역에 모였던 '불편한 용기' 시위를 일베 수준이라 폄훼했던 김어준이 
이제 와서 앞으로 10년 뒤엔 여성들이 한국 정치판을 이끌 거라 극찬하는 게 같잖게 보일 수밖에 없다. 
여성들이 정치적 주체로서 단독으로 광장을 점유했을 땐 폭도 취급하다가 
자기네 나와바리(물론 실제로 그렇단 게 아니라 진보저씨들이 그렇게 여긴단 얘기)에 모일 때만 
정치적 주체로 인정해주는 기준이란 뭘까.

 

 


같은 이유로 나는 진보 보수 매체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응원봉 찬가가 이젠 슬슬 불편해진다. 
앞서 말했듯 응원봉과 케이팝 팬덤엔 이미 2030(부터 그 이전 세대까지) 여성들이 세상과 불화하고 맞선 맥락이 있지만, 
이 응원봉 찬가에선 바로 그 불화의 맥락을 제거하고 딱 안전한 범위의 흥미로운 문화 현상 정도로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체제 안에 통합하려는 기득권의 간교한 지혜가 보인다.

 

 

 

그래서 지금 응원봉만큼 다시 소환해 이야기해야 할 건 동덕여대 시위에 사용된 래커다. 
응원봉 찬가와 달리 그동안 경향과 한겨레, 여성신문 정도를 제외하면 동덕여대 시위에 사용된 래커에 대한 언론들의 헤드카피는 
너나 할 거 없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부정적이고 비하적이다. 
심지어 현재 대표 진보 리버럴 팟캐 유튜브인 <매불쇼>에선 최근 이선옥을 불러 
동덕여대 래커 시위와 페미니즘을 묶어 비난한 바 있다. 
물론 락카 시위를 비난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게다. 
'응원봉은 평화적이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데요?' 
누가 들으면 학생들이 래커를 누구 눈에 다이렉트로 뿌린 줄 알겠지만, 
래커가 응원봉보단 좀 더 폭력적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시위에서, 세상에 대한 불화에서, 기득권와의 싸움에서, 폭력을 온전히 제거하는 게 가능한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글에서 1793년 없는 1789년, 
즉 자코뱅의 공포정치 없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옹호와 그리움은 카페인이 제거된 커피에 대한 선호, 
즉 혁명의 본질을 제거한 혁명의 기분만 즐기려는 것이라 비판한 바 있다. 
폭력이 옳다는 건 아니지만, 폭력과 공포가 제거된 변혁이란 어불성설이란 것이다. 
나는 시위 도구로 래커가 옳다 그르다는 식의 얘길 하고 싶지 않다. 
이미 모두가 그 얘길 하고 있기도 하지만 나는 질문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덕여대 학생들이 자신들이 처한 부당함과 비통함을 세상에 온전히 고발하기에 래커보다 좋은 도구가 있는가? 
모두가 래커가 얼마나 지우기 어려운지, 그걸 지우는데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지만 얘기하지만, 
지우기 어려운 이 흔적이야말로 학생들이 어떻게 싸웠는지에 대한 가장 정확한 기록물 아닌가.

 

 


앞서 인용한 지젝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래커 없는 응원봉에 대한 선호란, 
1793년 없는 1789년에 대한 선호 같은 것이다. 
오해를 피하자면 나는 응원봉이 투쟁적이지 않다고 별 거 아니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여의도 응원봉의 역능을 이해하기 위해선 동덕여대 래커와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여성들이 여의도에 모여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한 건 갑자기 등장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동안 그들이 정치적 주체로서 세상과 맞서온 싸움의 연장선, 그 경험의 누적이다. 
이 싸움들은 이번 여의도에서처럼 항상 응원받아오진 못했다. 
현재 동덕여대 학생들이 학측에 맞서는 싸움이 그러하듯. 
여의도의 응원봉만을 말하는 이들을, 응원봉으로부터 래커를 분리하려는 이들의 목소리를 의심해야 하는 건 그래서다. 
2030 여성들을 정치적 주체로 섬기는 척하며, 그 주체성을 제거하려는 목소리를.


 

 

www.instagram.com/p/DDrwvjcT55T

 

목록 스크랩 (8)
댓글 53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더페이스샵♡] 매끈속광채 치트키! NEW 잉크래스팅 쿠션 메쉬 글로우 + 역주행 싱글섀도우! 모노큐브 앙버터 체험 이벤트 443 12.17 39,578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12.06 215,325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04.09 4,293,737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8,007,05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6,436,183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1 21.08.23 5,581,713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34 20.09.29 4,532,594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63 20.05.17 5,143,297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86 20.04.30 5,572,015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0,396,683
모든 공지 확인하기()
2581417 이슈 대한통운 협력사 직원이 버린 담배꽁초 하나로 해태제과 공장이 불타버리면서 손해배상을 두고 300억 소송전이 진행되고 있다고 함 21:17 93
2581416 이슈 탄핵 후 개헌을 논하자 유시민이 한 말 21:17 82
2581415 이슈 체조경기장에서 앵콜콘서트 잘 마친 이찬원 근황 21:16 70
2581414 이슈 @얘들아 시발 900조가 어느정도냐하면 대한민국 5천만 국민에게 각각 2억씩 줄 수 잇는 돈이래 씨발 3 21:16 160
2581413 정보 중부지방에만 머물던 찬공기가 내일은 남부지방까지 남하해 아침 장수,군위 최저온도는 오늘보다 5~7도 더 낮아질 내일 전국 날씨 & 기온.jpg 21:15 135
2581412 이슈 오랜만에 올라온 크래비티 형준이네 누나들과 강아지 나리 영상 21:14 100
2581411 유머 샤이니 투피엠 엠씨몽이 커버한 소녀시대 "소원을말해봐" 21:13 219
2581410 이슈 오늘자 에스파 영통팬싸 중 카리나 5 21:13 485
2581409 기사/뉴스 '퍼스트레이디', 탄핵 정국 속 6일 만에 4만↑ 돌파 [Nbox] 7 21:12 343
2581408 이슈 팬들에게 받은 선물 인증으로 사진 129장이나 올려준 00년생 배우 4 21:11 966
2581407 이슈 마리끌레르 김태리 한복 화보.jpg 6 21:11 578
2581406 이슈 12월 20일부터 롯데리아 포켓몬 콜라보 소식 27 21:09 1,833
2581405 기사/뉴스 관저서 생일 맞은 尹…“지지자 꽃바구니는 전달 받아” 27 21:09 880
2581404 기사/뉴스 민주당 방송4법 재추진에 "협의체 논의가 먼저" 8 21:08 549
2581403 이슈 박근혜가 최순실 게이트를 돌파하기 위해 꺼낸 카드 49 21:06 4,984
2581402 기사/뉴스 '소방관', 15일째 200만 돌파… 기부 챌린지 2차 목표 달성 12 21:03 478
2581401 이슈 Nobody gets me Covered by 아이브 안유진 13 21:02 258
2581400 이슈 이재명이 35살의 변호사 이재명에게 43 21:01 2,362
2581399 이슈 리사 X 스키즈 방찬 Walkin On Water 챌린지 20 21:00 648
2581398 이슈 [단독] "김용현과 거의 동급"…노상원 계엄 '총지휘' 정황 22 21:00 1,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