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이재명 생각보다 필력 뛰어나다고 느꼈던 글.txt
7,583 43
2024.12.15 23:43
7,583 43

언변이 워낙 좋긴한데 글도 진짜 잘씀 오히려 말할때보다 부드러운 느낌이라 더 좋음

아래 글은 뭔가 문학 읽는것 같아서 가져와봄

 

 

lfmaLh

 


싱싱한 푸른 잎을 달고, 노란색을 뽐내는 개나리.

 

내게는 그 개나리에 대한 색다른 추억이 있다.

 

산밭 일궈 감자 심어먹는 빈한한 삶속에서도, 참꽃(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진달래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따먹으며 놀던 경북 안동 산골짜기를 떠나

불안한 마음을 안고 1976년 봄에 성남으로 이사 왔다.

 

남들이 다 가는 학교 대신 도시락 싸들고 공장 다니던 길가와 공장 담벼락엔 유난히 개나리가 많았지만 어느 순간 그 개나리들은 갑자기 내 인식에서 사라져 버렸다.

 

먹을 수 있는 참꽃과 달리 개자가 붙은 나리는 맛을 보니 너무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

지천으로 널린 개나리를 먹을 수 있는지 알아 본 후부터 개나리는 더 이상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 인생에서 비주류성과 소외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과 비례해서 개나리에 대한 기억도 그만큼 사라져 갔다.

 

그러던 개나리가 갑자기 다시 나타났다.

2004. 3.월 말이었다.

 

2003. 여름부터 가을 겨울을 지나 2004년 봄까지 나는 응급의료센타 없이 방치된 성남 본시가지에 시립병원을 설립하려고 혼신을 다했다.

 

10만명의 시민 서명에 이어 18,595명이 주민등록번호 대조하고 지장 찍어가며 만든 시립병원 설립조례. 그 조례가 2004. 3. 25. 성남시의회에서 단 47초만에

날치기로 쓰레기통에 쳐 박히는 것을 본 순간, 나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에 휩싸였다.

 

시의원들이 모두 도망간 본회의장에서, 나는 방청객들과 뒤섞여 시립병원 설립운동 대표, 변호사란 직함조차 잊어버린 채 ‘xxx’라는 욕설을 하며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이를 본 시의회와 성남시는 ‘얼씨구나, 잘 걸렸다’를 외치며 즉각 특수공무집행 방해라는 어머어마한 죄명을 걸어 우리를 고발했다.

 

 

평소 무슨 운동인지를 한답시고 괴롭히는(?) 나를 눈엣가시처럼 알고 있던 경찰과 검찰은 ‘이게 웬 떡이냐’며 즉각 체포를 결정했다. 체포 = 구속. 뻔한 일이었다.

 

노동운동, 시민운동, 인권운동 무슨 그런 운동을 한답시고 십수년을 쫓아 다니다가 백궁정자용도변경(파크뷰특혜분양) 폭로사건으로 구속된 지 2년도 안된 시점이었다.

 

 

또 구속될 수는 없었다.

 

1도 2부 3빽 이라는 말을 아시는지?

일이 생기면 일단 도망하고, 다음에는 부인을 하며 마지막으로는 빽을 써야 된다는 이야기

 

변호사 신분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일단 이해학 목사님의 배려로 주민교회로 피신했다.

 

1평도 안되는 기도실과 교회 지하의 작업실을 오가던 어느날 오후 조금의 여유가 생겨 교회 옥상에서 세상을 내다봤다.

 

그런데, 그곳에 20-30년 전부터 잊어버렸던 개나리를 다시 발견했다.

 

흐드러지게 핀 노오란 개나리들이 시청 담벼락을 따라 무수히 피어 있었다.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내 앞에서 사라졌던 개나리.

 

따스한 봄날 오후 햇살을 등에 맞으며 서 있는 내 바로 몇미터 앞에 갑자기 나타난 개나리.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청 담벼락을 온통 휘감고 노란 빛을 내뿜는 개나리.

그러나 수배자의 신분 때문에 만져볼 수 조차 없는 개나리.

 

그 개나리가 수십년의 망각을 제치고 내 가슴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세상이 온통 노란빛으로 변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희뿌옇게 세상이 바뀌더니 그 자리에, 기름때가 꼬질꼬질한 누런 작업복을 입고 냉장고 공장마당 햇볕 잘 드는 곳에 앉아 차게 식은 도시락을 까먹는,

아토피로 양 볼이 빨갛게 충혈된 15살 소년이 보였다.

 

빨랫줄 그림자가 나를 지나 한참을 지나가도록, 흐르는 눈물 속에서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끼던중 내 입에서 다시 ‘xxx'들이라는 욕설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는, 여전히 노란 색을 한껏 뿜어내고 있는 개나리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피곤함을 넘어 투지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삶에 대한 고려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그들을 내 몰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사람들의 고통스런 삶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사명감이 밀려 왔다.

 

며칠동안 더 교회에 기거하며 생각을 정리한 끝에 경찰에 자진출두했고,

그 때쯤 나는 시장출마를 결심했다.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내 앞에서 사라졌다 수십년만에 다시 시청 담벼락에 나타나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끈 개나리.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개나리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앞으로 언제 다시 개나리를 기억하게 될 지는 모르지만, 내게 있어 개나리는 여전히 빛바랜 슬픔같은 것이 깃들어 있다.

 

개나리에 대한 내 기억이 환희와 밝음으로 바뀌는 날이 있기는 바라며.

 

 

 

원문 : https://m.blog.naver.com/snhope/23049339

이재명 블로그

목록 스크랩 (6)
댓글 43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케이트💘] 🎂크리미몬스터 3종 & 립몬스터 히트헤이즈 체험단 모집 이벤트(50인) 259 00:04 7,580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1,757,104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6,514,893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9,637,869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 금지관련 공지 상단 내용 확인] 20.04.29 28,886,390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6 21.08.23 6,720,847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43 20.09.29 5,649,948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94 20.05.17 6,394,611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98 20.04.30 6,697,760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1,740,290
모든 공지 확인하기()
2692889 이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시청률 추이.jpg 12:19 5
2692888 이슈 어제 EPL 페드로 네투 미친 극장골.gif 12:18 58
2692887 유머 캠핑판 정상화를 시도 중인 다이소.jpg 4 12:17 500
2692886 이슈 키오프 하늘 비스테이지 업로드 1 12:17 25
2692885 유머 @와 태어나서 본 인형중에 제일 못생김 12:17 109
2692884 이슈 자극 없이도 통했다? ‘폭싹 속았수다’가 증명한 무해력의 시대 (feat.김중혁 작가) | 역주행자들 EP. 39 12:17 50
2692883 이슈 아이브 콘수니 레이 인스타 업뎃 (ft.산책 나옴) 3 12:16 158
2692882 정보 [중요] ASTRO(아스트로) 일본 JAPAN OFFICIAL FANCLUB에 대한 알림 - 26년 3월 31일 폐쇄 3 12:16 365
2692881 기사/뉴스 한동훈 "난 특활비 집에다 갖다준 적 없어"…홍준표 저격 7 12:15 385
2692880 기사/뉴스 “엄마도 ‘다음주는 재밌냐’고”..공효진, 500억 대작 ‘별물’에 입 열었다 4 12:14 601
2692879 이슈 [단독] 'SNL' 이진혁, '솔로 데뷔 2천일' 기념 앨범 낸다 12:13 195
2692878 유머 대나무 한줄기도 엄마랑 나눠먹는(?) 후이바오🐼🩷❤️ 4 12:12 412
2692877 이슈 어제오늘 겹경사가 많은 르세라핌 8 12:12 857
2692876 이슈 [티저] 5/6일 화요일 밤 9시에 돌아오는 <틈만 나면,> 여러분의 틈새시간을 책임집니다! 7 12:10 394
2692875 기사/뉴스 미 백악관 평면도 “전직원에 공개…구글 드라이브 올려” 51 12:10 1,574
2692874 기사/뉴스 [단독] 봉천동 방화 이면에 층간소음…방화범과 피해주민 쌍방 폭행 15 12:10 1,082
2692873 기사/뉴스 박경림, '연예계 대부' 이문세 커피차 과거 사진에 깜짝 "안티팬이 보낸 줄ㅠ" 10 12:09 1,088
2692872 기사/뉴스 이순실 오열 "3세 딸, 탈북중 인신매매단에 잡혀..살아있다면 20살 됐을 것"(사당귀) 7 12:08 1,497
2692871 기사/뉴스 [단독] 채수빈, '지거전' 후 차기작 확정…'나를 충전해줘' 주인공 8 12:07 1,029
2692870 유머 안 보이는 위치에 콘센트 꽂기 5 12:05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