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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탄핵 집회에 2030 여성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 [이슬기의 뉴스 비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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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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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의 뉴스 비틀기] 여자는 항상 광장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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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시민촛불’ 집회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가운데 가수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 권우성

(전략)

집회 행렬에는 빛 발하는 응원봉을 든 이가 다수였다. 어둠 속에서 어림잡아도 그 응원봉의 물결이 열에 여섯은 돼 보였다.

이를 두고 언론이 ''젊어진' 탄핵집회… 계엄에 분노한 2030 국회 앞 집결'(<국민일보>, 2024.12.7.), "세월호·이태원 참사 분노, 짓밟힌 국회에 폭발"… 2030 '탄핵집회' 중심에 서다'(<한국일보>, 2024.12.10.) 등으로 제목을 뽑았지만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윤석열 탄핵 집회의 중심에는 2030 '여성'이 있었다는 게 올바른 분석이다. 그것은 갑자기 '팝업'된 게 아니다. 유구한 계보가 있다.

'광장에 선 여자'에게는 계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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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5월 9일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촛불집회는 사실상 여성들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 참여자의 70%는 여성이 차지했다.'

2008년 7월 9일 자 <경향신문> '고비마다 촛불 이끈 아마조네스 부대' 기사의 첫 문장이다. 2024년 12월에 나왔다 해도 무방해 보이는 이 기사는, 이명박 정권에 대항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여성들이 구심점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1987년 6월항쟁에 '넥타이 부대'가 있다면 2008년의 촛불집회는 '아마조네스(그리스신화 속의 여전사) 부대'가 이끌었다고도 덧붙였다. 더욱 친숙하게는 촛불을 든 어린 여학생으로 상징되는 '촛불소녀'와 아이와 함께 나온 엄마를 뜻하는 '유모차 부대'로 표상된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 때는 여성들이 광장에 등장한 '닭년', '미스박' 등의 여성혐오 표현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현 강원도지사)이 집회 행렬을 두고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이 불면 꺼진다"며 폄하하자, 꺼지지 않는 촛불로써 발광 다이오드(LED) 촛불과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온 것도 여성들이었다. 그것이 8년이 지난 오늘, 집회 현장에서 가장 빛나는 각양각색의 K-팝 응원봉으로 진화했다.

응원봉으로 표상되는 2030 여성들의 'K-팝 팬덤' 또한 굉장히 정치적이다. 세상은 여성들을 '빠순이'라는 이름의 '무지성·몰지각한 소비자'로 격하시켰지만 여성들은 매번 K-팝 콘텐츠의 생산자이자 적극적인 감시자, 정치적 발화를 하는 주체로 활약해 왔다. 소비자들을 향한 엔터테인먼트사의 횡포나 소속 아티스트들을 향한 노동력 착취, 아티스트의 범죄나 혐오 발언들에 대해 이들 팬덤은 계속해서 책임을 촉구했다.

한편 또 하나의 거대 팬덤으로 부상한 프로야구의 팬인 나는, 집회가 열린 국회 앞이 '또 하나의 커다란 야구장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야구장을 찾으면 들리는 응원 소리가 거의 다 여성의 목소리이듯 그곳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집회 현장에는 프로야구 구단과 선수의 자격과 책임을 끊임없이 물어온, 야구 응원봉을 든 여성들도 상당수 있었다.

'2030' 여성들이 '팬덤'을 넘어 재차 광장에 나서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위치와 차별의 경험이 몸에 켜켜이 새겨진 까닭이다. 이에 따라 불의에 항거해본 집단적 경험과 집회·시위를 조직하는 일에 대한 친숙도도 큰 몫을 한다.

2016년 10월부터 시작된 박근혜 탄핵 집회에 앞서 그해 5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에 따른 대규모 추모 집회, 7월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반대 농성처럼 여성들이 대규모로 결집하는 일이 잇따라 일어났다. 2018년 5월부터 12월까지 6차에 걸쳐 진행된 여성 관련 단일 이슈로 최다 인원인 수만 명이 모인 '혜화역 시위'(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로 '화력'을 확인했다.

올해 9월, 6년 만에 다시 열린 '혜화역 시위'는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한 정부가 초래한 딥페이크 성착취 사태의 심각성을 조명했다. 11월부터 진행된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시위는 여성들로 하여금 '상시적 조직 상태'에 있게 했다.

광장에 선 여성을 '가녀리고 여린' 마스코트라거나, 갑자기 팝업된 '기특하고 대견한 소녀'쯤으로 치부하는 것은 지난한 여성의 역사를 지우는 행태다. '2030' 남성들에게 전하는 정보라며 "여자들이 집회에 많이 나온다"던 박구용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발언(8일 팟캐스트 '매불쇼')은 여성을 광장의 객체로 폄하하며 성애적 대상화를 감행하는 말이다. 박 원장뿐만 아니라 중년 남성들은 최근의 집회를 두고 "여성들이 많이 나와 깜짝 놀랐다"는 식의 발언을 이어간다. 이는 그간 여성들이 만들어온 광장에 부러 눈감았거나 무지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광장에서 '여성혐오'를 언급하면 왜 야유를 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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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전국 296개 여성단체와 개인 1726명이 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탄핵 집회에 가면 시민들 자유 발언을 통해 사회 전반의 다양한 생각들을 들을 수 있다(이는 언론에서도 다 다루지 않기에 직접 가서 듣기를 적극 권한다). 지난 7일의 여의도에서는 광주의 시민, 삼성의 노동자, 강화도의 농민, 청소년단체 활동가, 페미니스트의 발언을 들을 수 있었다.

오상훈 삼성그룹노조연대 의장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의 두려움을 뚫고 설립된 노조가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 기조 아래 받은 탄압을 토로했다. 강화 농민 함경숙씨는 매일 계속되는 북한의 소음 공격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인 '심리 지원'을 이용했더니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면 고통스러우니까 스트레스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수영 활동가는 청소년들이 퇴진 운동에 함께 하는 이유를 전했다.

"청소년들이 퇴진 운동에 함께하는 것에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청소년도 수요일 밤 똑같은 계엄 내란 사태를 맞이했고 똑같이 밤을 설치며 불안해했고, 내 삶이 혹여나 계엄과 탄압 속에서 어긋나지 않을까 여느 시민들과 다를 바 없이 불안해했습니다. (중략) 퇴진 집회를 이유로 청소년 단체가 표적 수사를 당했고, 고등학생이 그린 '윤석열차' 풍자만화가 경고를 받고 청소년들의 기본권을 규정한 학생인권조례 폐지, 소수자 차별… 이렇게 무도한 반인권, 반민주, 반국민 정권은 청소년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심미섭 페미당당 활동가는 '쥴리 계엄'과 같은 탄핵 국면에서 다시 불거져 나오는 여성혐오를 경계했다. 그는 "다만 광장에서 안전하게 윤석열 퇴진을 외칠 권리를 요구할 뿐입니다. 남성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며 여성혐오를 하지 않을 것을 제안하는 것뿐입니다"라고 했다. 페미니스트들이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가 집회 무대에 서는 일을 반대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김 대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실명을 공개하는 등 2차 가해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여성혐오'를 언급한 심 활동가에게 야유가 날아들었고, 같은 날 정오 서울여성회가 연 '윤석열 OUT 성차별 OUT 페미니스트들' 기자회견 영상에는 '여러분들의 주장을 윤석열 퇴진과 섞지 말라'는 댓글이 달렸다. 페미니스트들이 정치적 국면에서 늘 들었던 "페미 묻히지 말라", "너네 주장을 시급한 사안과 섞지 말라", "해일 오는 데 조개 줍지 말라" 같은 얘기다.

거듭 말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당면 과제이자, 생존에 관한 문제다. 특히나 광장에서 용인된 혐오는, 이후 승리의 레토릭으로 변모해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더욱 치명적인 혐오로 작동한다. 그것이 공론장에서 늘 '덜 중요한 일'이며 후순위라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기 때문이다.

'페미 묻는다'는 혐오에 응답한다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계엄 선포 당시 국회 담을 넘지 못해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늘 배리어프리(Barrier Free·장벽이 없다)의 중요성을 외쳤던 제가 물리적 '배리어'를 느끼는 암담하고 절박한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렇듯 사회적 소수자의 처지는 시국이 엄중할수록 더욱 뚜렷해지고, 이를 절감하는 이는 더욱 약자가 된다.

여성들이 숨 쉬듯 겪는 여성혐오의 수사도 마찬가지다. 이어지는 집회에서 박 전 시장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상기시키는 김민웅 대표가 발언대에 오르는 것에 반대한다. 또한 지난 8월부터 매주 금요일 강남역 앞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OUT 말하기대회'를 이어간 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서페대연)가 이번에는 매주 토요일 여는 '윤석열 OUT 성차별 OUT 페미니스트들' 기자회견에 연대한다.

노동자, 청소년, 북한 접경지역 주민 등 모두가 발화하는 광장에서 유독 페미니스트와 퀴어, 장애인에게만 묻히느니 섞느니 하며 혐오 언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페미가 김장철 김칫소냐. 묻히긴 뭘 묻히고, 섞긴 뭘 섞냔 말이다.

이슬기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56046?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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