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방송이 EBS가 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래서도 안 된다. 대중의 다양한 호기심과 은밀한 욕망을 건드려줄 쾌락 자극 방송도 얼마든지 오케이다. 고단한 일상과 무료함을 잠시라도 오프시켜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종편 예능을 보면 선정성과 폭력성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방송 메커니즘에 익숙한 연예인들이야 재주껏 수위 조절을 하며 원하는 걸 내주고 필요한 걸 챙겨가므로 문제가 안 된다. 이들은 제작진이 원하는 도파민성 에피소드를 털어주는 대신 뭔가를 홍보하고 상품을 판다. 문제는 일반인 예능.
오죽하면 방송까지 나와 부부 갈등을 공개할까 싶지만, 여기에 인위적인 연출이 덧대지며 공익성이라는 기획 의도가 대거 희석된다.
수험생이 출연하는 비교적 착한 예능 채널A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에 출연한 한 지인의 뒷담화. 그는 “녹화 도중 작가가 '너무 밋밋하면 텐션이 떨어지니 가족 갈등을 연출해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다. 사소한 다툼, 신경전 없는 집이 어디 있겠나 싶어 그때마다 응했는데 한번은 저도 모르게 몰입돼 아이를 심하게 다그쳤다”고 털어놨다.
흥미로운 건 이런 갈등을 다루는 예능이 주로 종편에 집중돼있다는 사실이다. 지상파는 아무래도 공공성과 심의규정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 걸러지기 때문이다. 한 지상파 예능 PD는 “저희도 솔직히 욕심나지만 허들 탓에 쉽지 않다”며 “종편이 독한 예능에 주력하는 건 차별화와 광고, PPL이 잘 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예능 작가는 “일반인의 불화를 다루는 예능은 섭외가 매우 어려워 출연료가 센 편”이라며 “비슷한 포맷에 출연한 경험자를 다시 불러 우라까이 할 때도 있다. 일종의 사연 돌려막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딩엄빠’, ‘무엇이든 물어보살’, ‘이혼숙려캠프’ 등에 겹치기로 나와 주작 논란에 휘말린 이들도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결국 인지도를 높여 공구 등 물건을 파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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