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죄다 검은 옷… 누가 죽었나요?” 한국의 ‘흑백 결혼식’
38,916 367
2024.11.23 00:44
38,916 367

“아니 여기가 결혼식장이야, 장례식장이야?”

60대 주부 박모씨는 요즘 지인들 자녀 결혼식에 갈 때마다 놀란다. 신랑·신부의 친구들이 죄다 검은 옷을 입고 오기 때문. 검정 바지에 점퍼 차림으로 부케를 받기도 한다.


그는 “예전엔 ‘장례엔 돈이 부조, 결혼엔 옷이 부조’라는 말처럼 잔칫집엔 화사하게 꾸미고 가는 게 예의였다. 그런데 예의의 기준이 바뀐 것 같더라”고 했다.

결혼식 드레스 코드가 확 달라졌다. 닥치고 블랙이다. 밝은 옷 입었다간 평생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짧은 드레스나 레이스·스팽글 장식 등 화려한 디자인도 위험하다. 딱 ‘블랙 캐주얼’이 정답이란다.

이유는 신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결혼식이라는 일생일대 이벤트에서 신부가 가장 예뻐야 하고 공주처럼 시선을 빨아들여야 한다는 것. 흰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제외한 나머지를 어둡게 깔아주는 ‘바둑알 콘셉트’로 단체 사진이 나와야 한다.

최근 서울 모처에서 열린 결혼식에 톱스타들이 참석한 모습. 송혜교, 제니, 변우석과 김고은 등이 모두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블랙 캐주얼로 '드레스 다운'한 모습이다. /인스타그램

최근 서울 모처에서 열린 결혼식에 톱스타들이 참석한 모습. 송혜교, 제니, 변우석과 김고은 등이 모두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블랙 캐주얼로 '드레스 다운'한 모습이다. /인스타그램


이달 초 서울의 한 결혼식에 블랙핑크 제니와 배우 송혜교·변우석·김고은 등 톱스타들이 참석했다. 하나같이 평범한 검은 옷이었다. 해외 팬들은 “누가 죽은 거냐” “한국 결혼식은 미쳤다. 다들 직장에 출근하는 것 같다”며 놀랐다.

외국에선 하객도 멋지게 입는다. 간혹 신부와 같은 흰 드레스를 입은 시어머니나 친구가 도마에 오르지만, 그렇다고 검은 옷으로 ‘드레스 다운’ 하자고 결의하지는 않는다.

미국인 영어 강사 제니퍼씨는 “한국 동료 결혼식에 짧은 하늘색 드레스를 입었더니 ‘네가 뭔데 차려입었느냐’는 눈총을 받았다”고 한다. 반면 한 한국 여성은 도쿄에서 열린 일본인 친구 결혼식에 검은 옷을 입고 갔다가 화려한 하객들을 보고 ‘아차’ 싶었다고.

미국의 한 결혼식 단체 사진. 신랑신부의 친구들도 화려한 드레스 등으로 차려입은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미국의 한 결혼식 단체 사진. 신랑신부의 친구들도 화려한 드레스 등으로 차려입은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불과 4~5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남의 결혼식에 정성껏 차려입었다. 단체 촬영 때도 화려한 차림 하객은 앞줄에 세워 분위기 돋우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최근 결혼 비용이 치솟고 연애부터 프러포즈, 결혼과 출산에 이르는 과정이 희귀한 경험이 됐다. 그 정점의 이벤트인 결혼식 분위기도 달라졌다. 당사자가 주인공이 되는 극강의 효용을 경험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해졌다. 너도나도 호텔 결혼식을 하면서 어두운 실내에서 드라마틱한 조명을 신랑·신부에게 쏘는 사진이 유행했다.

사진사들은 밝은 옷 입은 하객을 뒤로 빼기 시작했다. ‘밝은 옷=민폐’ 공식을 많은 이의 뇌리에 심었다. 한 웨딩 스냅 업체는 “신부들이 ‘밝은 옷 하객은 촬영에서 빼달라’ ‘재킷 속 흰 셔츠도 신경 쓰이니 포토샵으로 어둡게 처리해 달라’고 미리 요청한다”고 했다.

지난해 연말 한 연예인 결혼식. 미혼인 신부의 언니가 분홍색 투피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이 "동생 결혼식을 망치려고 작정한 것"이라며 비난을 쏟아낸 일이 있다. 신부가 "내가 입어달라며 사다준 옷"이란 해명까지

지난해 연말 한 연예인 결혼식. 미혼인 신부의 언니가 분홍색 투피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이 "동생 결혼식을 망치려고 작정한 것"이라며 비난을 쏟아낸 일이 있다. 신부가 "내가 입어달라며 사다준 옷"이란 해명까지 해야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요즘 ‘민폐 하객’ 1순위는 축의금 적게 내는 이나 예식 안 보고 밥만 먹고 가는 이가 아니라 신부보다 예쁜 하객이다. 예쁘다는 건 주관적이지만, 옷 색깔만으로 그 불순한 의도를 가려낼 수 있다니 마녀 재판이 손쉬워졌다.

블랙 하객 룩을 둘러싼 ‘프로 불편러(매사 예민한 사람)’들의 상호 검열과 갈등은 상상 이상이다. 결혼 준비 카페와 소셜미디어에선 밝은 색이나 리본 달린 옷을 입고 신부 옆에 선 하객을 콕 집어 “미친 거 아닌가요?” “자기 결혼식인 줄 아나 봐요”라며 비난한다.

수년 전 보라색이나 노란색 옷을 입고 결혼식에 간 유명인이 ‘레전드 민폐 하객’으로 다시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이 원피스 민폐일까요?” “베이지 재킷 입고 간 게 마음에 걸리는데 늦게라도 신부에게 사과할까요?” 같은 고해성사도 쏟아진다.

일본의 한 결혼식. 신부 지인들이 밝고 화사한 기모노를 차려입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본의 한 결혼식. 신부 지인들이 밝고 화사한 기모노를 차려입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여성 친척의 국룰 하객 룩이었던 한복도 화려하다는 이유로 거의 퇴출되고 양가 어머니만 입는 추세다. 손윗동서 될 사람이 흰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었다고 신부가 “내 결혼식 망치려 했다”며 격분, 집안싸움으로 번진 경우도 있다.

30대 여성 이모씨는 “친구들에게 ‘내 결혼식에는 제발 예쁘게 입고 와달라’고 사정했지만 결국 검정 일색이더라”며 “남들에게 찍힐까 봐 조심하는 것 같다”고 했다.

옳든 그르든 남들처럼 하지 않으면 인격 살인 당하는 사회, 이렇게나 칙칙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872114?sid=102

목록 스크랩 (0)
댓글 367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아비브🌿] 겨울철, 거칠어진 피부 촉촉하게 보습케어✨ '아비브 부활초 세럼 & 부활초 크림' 체험 이벤트! 536 11.20 34,288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3,729,388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7,554,12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5,786,845
공지 ◤성별 관련 공지◢ [언금단어 사용 시 📢무📢통📢보📢차📢단📢] 16.05.21 27,184,804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54 21.08.23 5,316,824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31 20.09.29 4,286,140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56 20.05.17 4,878,401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82 20.04.30 5,336,220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0,089,579
모든 공지 확인하기()
317507 기사/뉴스 [단독] 자존심 버린 롯데의 승부수…부산 센텀시티 백화점 판다 18 05:43 2,532
317506 기사/뉴스 [종합]"아빠가 두 명이라 혼란스러워" 재혼가정 초 5 금쪽이, "동생만 좋아해" ('금쪽같은') 40 03:23 5,295
» 기사/뉴스 “죄다 검은 옷… 누가 죽었나요?” 한국의 ‘흑백 결혼식’ 367 00:44 38,916
317504 기사/뉴스 "선진국 351조 부담", "더 내야" 유엔기후총회 끝까지 진통 1 00:25 901
317503 기사/뉴스 “노안 때문에…” 드래곤퀘스트 3 리메이크 플레이 포기 속출 10 00:18 3,573
317502 기사/뉴스 부동산 유튜버 tv러셀의 충격적인 근황.. 45 00:08 9,345
317501 기사/뉴스 [단독] "졸업연주회만이라도..." 시위대에 무릎꿇은 동덕여대 교수 202 11.22 21,308
317500 기사/뉴스 “이게 참교육?”…링 위에서 딸 뺨 사정없이 때리는 트럼프 교육장관 후보(영상) 17 11.22 4,361
317499 기사/뉴스 살인도 합의가 되나…‘여친 잔혹 살해’ 22살男, 42살에 풀려난다. 전자발찌도 기각 17 11.22 1,624
317498 기사/뉴스 "제주요? 그 돈이면 차라리 일본 가죠"…이런 사람들 참 많더니 벌어진 일 401 11.22 48,834
317497 기사/뉴스 라오스 방비엥 '메탄올 칵테일'에 발칵‥관광객 5명 사망 12 11.22 2,115
317496 기사/뉴스 여성 죽어도 끊이지 않는 교제 폭력, 강력 방지 입법화 시급 19 11.22 1,550
317495 기사/뉴스 소속사 대표에 성추행 당한 신인 걸그룹=메이딘?…피해 멤버 "신체 중요 부위 만지며 성추행, 강제로 키스 시도" [TOP이슈] 18 11.22 5,513
317494 기사/뉴스 미야오, 첫 시상식서 감격 첫 수상 “첫 발걸음 함께 해줘서 고마워”[MAMA AWARDS] 2 11.22 1,057
317493 기사/뉴스 변우석·로제X브루노 마스…'2024 MAMA' 초호화 라인업, 대상은 'BTS 지민' [종합] 40 11.22 3,068
317492 기사/뉴스 교제 19일만에 여친 살해…“나 IQ 60. 조현병”이라며 변명한 20대男의 최후 10 11.22 3,004
317491 기사/뉴스 다듀 최자, 득녀..딸 최초 공개 "셋이 시작하는 새로운 삶" 4 11.22 4,037
317490 기사/뉴스 인천본부세관, 관세가 486%에 달하는 고세율 품목인 중국산 서리태 230t 밀수입 적발 11 11.22 2,290
317489 기사/뉴스 변우석, 마지막 시상자 등장…"올 한해 = 선물 같은 시간…매 순간 기적같아"  19 11.22 2,727
317488 기사/뉴스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뒤통수 쳤다 3 11.22 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