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노숙자 시절 은혜를 베풀어주신 은인을 찾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이 노숙자였던 시절 서점에서 3일 동안 책을 읽다가 '냄새난다'며 서점에서 쫓겨난 적이 있는데, 그때 자신에게 못다 읽은 책을 선물해 준 서점 직원을 찾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한 서점서 3일 내내 같은 책 읽어"
이 글을 쓴 인물은 영화 '터널' '공기살인' '소원' 등의 원작자인 소재원 작가다. 소 작가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한 뒤 노숙 생활을 했다.
그는 "달리 갈 곳도 없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점이 유일한 여가 장소였다"며 "3일째 되던 날 벼르고 있던 직원이 '냄새난다며 며칠째 항의 들어왔다. 나가시라'라고 말했다. 순간 얼굴이 붉어지며 황급히 서점을 빠져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때 다른 직원이 서점을 나오던 소 작가를 뒤에서 불렀다고 한다. 이 직원은 소 작가에게 "이 책만 읽으시더라. 다 못 읽지 않았냐. 제가 선물로 드리겠다"며 책을 건넸다.
직원이 건넨 책은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었다. 소 작가는 당시 서점에서 내내 이 책만 읽었다. 이후 이 책의 영향을 받아 '이야기'라는 소설도 출간했다.
"서점 여러 번 찾아다녀… 찾을 수 있을 거라 확신"
그는 당시 서점 직원에게 감사하다는 말 대신 "나중에 제가 쓴 작품을 직접 선물로 드리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소 작가는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그 직원이) 내 약속을 믿고 있었는지 노숙자의 허언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에게 받은 친절을 매번 되새기며 버텨왔다"며 "그 직원은 그 책을 읽던 노숙자 청년이 어느새 기성 작가로 살아가고 있음을, 약자를 대변하는 작가라는 수식을 얻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직원을 향해 "잘 지내시냐. 당신 덕에 괜찮은 작가가 됐다. 여전히 흔들리거나 힘겨움이 찾아올 때면 그때를 떠올린다"며 "내가 과연 당신께 선물로 드릴 수 있는 작품을 집필하고 있는지 언제나 생각하고 다짐한다.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고 전했다.
소 작가는 실제로 이 직원을 찾기 위해 여러차례 노력했다고 본보에 밝혔다. 그는 "아내가 용산 소재 학교를 나와서 용산 주변도 다 돌아봤고, 서점 목록도 뽑아보려고 했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읽었던 책 표지가 1993년도 발행본이어서 1993년 이전에 운영했던 서점들도 찾아다녔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내가 20살 때였는데, 책을 선물해 준 직원은 20대 중후반 누나 뻘로 기억한다"며 "노숙자에게 당신들이 천국이라는 책을 선물해 준 사람은 전국에 한 명밖에 없지 않겠냐.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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