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재규 본인의 주장 -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계획적인 혁명이다.
- 김재규는 본인이 거사를 안할경우 부마항쟁이 5대 도시로 확산되어 많은 사람이 죽을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함.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서 300만이 죽었는데 우리가 1~200만 죽이는게 뭐 대수였겠느냐 식이었다고 함.
그에 동조하는 박대통령을 보며 큰일나겠다 싶어 민족의 민주화와 국가를 위해 죽였다는 본인 주장.
- 실제로 김재규는 미국의 기록에서도 보듯이 민주화를 자주 이야기한 정황이 있고, 개인적인 성향상 유신독재를 옹호하지 않았다는 점,
유신 이후 박정희의 재선 당시 이번 출마를 마지막으로 할 것을 종용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고 보여짐.
2. 차지철과의 갈등 등 권력암투에서 비롯됨
- 1과 같은 김재규의 주장은 차지철과 분쟁이 발생하기 전까지 김재규가 박정희의 제일가는 충신이었다는 점에서 의문을 갖게 만듬.
한마디로 박정희의 충실한 오른팔로 해먹을거 다 해먹고 권력의 실세로서 날려왔다는 것.
하지만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된 이후 대통령 경호실장인 차지철과 꾸준히 권력암투를 벌여왔으며 그 싸움에서 늘 밀리는 모양새였음.
그러다 YH 무역 여공 농성 사건, 김영삼 제명 파동, 부마사태 등이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를 보며
강경하게 대응하려고 하는 차지철과 그에 동조하는 박정희를 보며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음.
(차지철과 김재규의 사건 해결 노선이 명확히 달랐음)
사건 당일날도 차지철과의 말다툼 끝에 박정희까지 살해하며 10.26사태를 일으켰다는 썰.
3. 미국의 박정희 제거 지령설
- 10.26 사태 며칠 전 김재규가 CIA 한국지부장을 면담했음.
김재규가 군사재판 진행 당시 한미관계의 회복 또한 하나의 이유로 들기도 했음.
2011년 재미동포에 의해 김재규에 관한 당시 미국 비밀문서가 모두 비공개 처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10.26 당일 오후 2시에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를 만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뒤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음.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김재규는 박정희의 충신 of 충신으로 많이 해먹은게 맞으나
유신독재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이 박정희+차지철과 다르게 부정적인 편이었음.
차지철과는 늘 대립각을 세워왔으며 이게 10.26사태의 원인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으나
한편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임. 미국과는 10.26을 전후로 하여 관계가 있을것으로 보여지는 것도 있음.
김재규 군사재판 역시 전두환이라는 군부정권에 의해 진행되었고
재판이 빨리 진행되어 사형으로 끝나버렸기 때문에
결국 세가지 중에 어느것을 믿느냐는 사건을 접하는 개개인의 판단 문제라고 보여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