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동자 최 씨는 특고압 케이블 작업 '베테랑'입니다. 노동자로서는 고령임에도 울산 지역 기업에서는 관련 작업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곤 했습니다. 이번 달에도 울산의 한 석유화학 공장에서 작업 요청이 왔습니다. 지난 21일에 대부분 작업을 마쳤고, 지난 25일에는 마지막 작업을 하러 다시 공장을 찾았습니다. 이 작업을 마치면 최 씨는 가족들이 있는 인천으로 올라갈 예정이었습니다.
케이블 연결만 마치면 되는 상황이었던 10월 25일 오후 3시쯤, 아직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산화탄소가 누출됐습니다. 인근에 있던 5명 중 4명은 대피했지만, 최 씨는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최 씨는 결국 창원의 한 병원에서 심정지 상태로, 자가 호흡조차 하지 못해 뇌사 위험에 빠진 채로 가족들을 마주했습니다.
■"원청, 발주처 모두 사과 한마디 없다"
"(기업들은) 지시받은 게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그러면 "환자가 죽어도 현재 상태에서는 움직일 수가 없는 거냐?" 하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이산화탄소 누출 피해 노동자 동생
이산화탄소 누출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최 씨는 급히 울산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심폐소생술 이후에도 상황은 악화하기만 했습니다. 의료진이 급히 다른 병원을 물색했지만, 치료가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약 100km가 떨어진 창원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연락 대신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는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급히 인천에서 창원으로 내려왔습니다. 신경이 뇌로 가지 않도록 저온 치료를 하는 기계를 두르고, 인공호흡기를 통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이미 다발성 손상 징후가 보인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원청, 발주처에 상황을 듣고 싶었습니다. 상황을 잘 모른다면 직접 사과라도 받고 싶었습니다. 연락 한 통 오지 않아 최 씨의 동생이 직접 연락처를 알아 내 사고가 난 공장 안전담당자에게 전화했지만, 돌아온 답은 "국과수가 직접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아 일단 대기해야 한다"였습니다.
■"여행도 다니기로 했는데"…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여행도 좀 다니시고, 그러신다고 얘기를 하셨는데, 이거 끝나면 (인천으로) 올라오실 일정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산화탄소 누출 피해 노동자 아들
동생은 현장에 있던 다른 노동자와 연락해서야 당시 원청 감독관과 발주처 기업 사장이 현장에 있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적어도 상황은 설명해야 한다. 지금도 연락이 오지 않는 상황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KBS 취재진이 직접 공장에 연락을 시도했을 때도 "국과수가 공장에 들어와야 자세한 상황을 조사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