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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임신의 유지 여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부모가 키우기를 포기한 아이를 낳으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상황에서 산부인과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은) 임신한 여성이 무사히 임신종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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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6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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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둥이 명의' 전종관 교수가 '임신중지' 간담회에 나온 이유 [취재파일]

(전략)

 

전 교수를 만난 건 지난 14일, 시민사회계가 마련한 '임신중지 비범죄화 후속 보건의료체계 구축 및 입법 촉구 기자간담회'였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낙태라고 불리는 '임신중지'를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제공할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선 법과 제도가 어떤 것들을 마련해야 하는지를 시민사회단체와 보건의료계, 그리고 법조계 인사들이 모여 정부에 촉구하는 자리였습니다.

기자는 지난 5월부터 임신중지 관련 취재를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전문가들을 인터뷰했고, 직접 만나진 못해도 다른 매체의 인터뷰나 논문 등을 통해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접해왔습니다. 하지만 전종관 교수의 이름을 맞닥뜨린 건 이날 간담회가 처음입니다. 많은 대중은 전 교수를 유재석 씨가 진행하는 '유 퀴즈 언더 블록'에서 수십 년 동안 많은 어려운 출산을 현실화시킨 의사로 기억합니다. 기자의 기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산모들이 전 교수의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출산' 또는 '분만'이란 단어와 좀 더 친숙한 전종관 교수가 임신중지를 논하는 자리에 패널로 나왔다는 게 놀라웠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부모가 포기한 아이까지 책임질 생각은 없다"


그는 1시간 동안 이어진 패널들의 모두발언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기자들의 질의응답 시간이 될 때까지도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교수님은 왜 이 자리에 나오셨나요?"

"저한테 오는 99%의 산모들은 아기를 낳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임신을 유지하지 않겠다는 산모들이 오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은 (사회, 경제적 이유가 아닌) 의학적 이유 때문입니다. 산부인과 의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임신부의 건강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산모의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부모가 포기한 아이까지 제가 책임질 생각은 없습니다. 임신을 한 여성이 '나는 절대 이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부모가 포기한 아이까지 책임질 생각은 없다는 그의 말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했습니다. 간담회 후 전 교수에게 따로 연락을 해 정확한 의미를 물었습니다. 전 교수는 이메일로 다시 한 번 정리된 입장을 보내주었습니다.
 

"임신의 유지 여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부모가 키우기를 포기한 아이를 낳으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상황에서 산부인과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은) 임신한 여성이 무사히 임신종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이런 말을 공식적으로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기자는 대한민국의 임신중지 현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접한 바 있습니다. 실제 임신중절수술을 제공하고 있는 의사들도 그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았고, 드러내놓고 인터뷰에 응하는 의사를 찾기는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출산하는 여성 뿐만 아니라 임신을 중지하려는 여성도 의료적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의료계 인사는 매우 소수입니다. 그 이유와 배경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날 간담회에서 들었던, 한 전문의의 이 말로 조심스레 짐작은 해볼 수 있었습니다. "동료 의사들의 백래시(backlash), 보호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질타와 협박 등 이런 현실을 마주할 때면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의 한계와 제약을 느낀다." (오정원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36주 임신중지가 문제면, 27 28주는 괜찮나요?"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근거가 됐던 형법 269조와 1항, 270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재는 임신 22주 범위 내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2020년까지 새 법을 만들라고 했지만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폐기가 됐습니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계는 관련 법이 모두 효력을 잃었으니 낙태는 범죄가 아니며 헌재가 언급한 22주라는 가이드라인도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있고, 정부는 여전히 헌재의 판결에 근거해 새 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일 뿐 그 효력이 사라진 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1대 국회에 발의됐던 정부의 대체입법안에는 임신 14주 이내에는 별도 요건 없이, 24주까지는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폐기됐습니다.

의료계(산부인과의사회)는 한 때(2020년)는 조건 없는 임신중지는 10주 이내까지만 허용해야한다고 밝힌 바 있지만 현재는 명확히 통일된 입장은 없는 상태입니다. 모체와 떨어져서도 생존이 가능한 주수가 지나면 임신중지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 보통의 의료계 입장인데 그 시기를 무엇을 기준으로 볼 것인지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갈리기 때문입니다. 전 교수는 최근 논란이 되어온 '36주 임신중지 유튜버' 사건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의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36주가 문제가 된다고 한다면 27주, 28주는 문제가 없는 건가요? 저는 헌재가 애초 (2019년 판결 때) 22주라는 가이드를 설정한 것이 부적절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전 교수는 서면 답변에서 간담회에서의 발언을 좀 더 보충했습니다.
 

"만약 22주를 생존가능성의 임신 주수로 정한다면 22주 넘는 모든 아이들은 생존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신생아 중환자실로 가야합니다. 유산(임신중지)도 22주 이전에만 가능할 수 있습니다. 22~23주 사이에 낳으면 20~30% 전후 생존가능성은 있지만 많은 아이들이 장애를 가지게 됩니다. (임신중지의 허용 여부를 주수로 제한하는 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주수로 임신중지 허용 기준을 일괄 제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전 교수의 말이 '모든 주수의 임신중지를 제한 없이 허용해야 한다'로 귀결되진 않았습니다. 그는 "인공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들은 임신 주수의 한계를 없애기를 바라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렇게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면서 "36주 태아는 99% 삽니다. 24주 태아도 50~60%도 삽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기자는 전 교수의 말을 결국 임신중지 허용의 기준은 (그가 간담회에서 말했듯)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단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이 부분은 기존 시민사회계의 주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임신한 여성의 건강"


전 교수가 간담회에서도, 또 기자와의 추가 서면 인터뷰에서도 여러 차례 '임신부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신한 여성의 건강이 모든 선택에 있어 우선이 돼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전제 하에 지금 우리 사회는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아이를 절대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한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사람들이 얼마나 정확한, 그러니까 안전하게 할 수 있느냐입니다. 안전한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불법적이거나 굉장히 많은 비용을 요구받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낙태를 해주는 대신에 비용을 300만 원, 500만 원 이런 식으로 현금을 요구하고 이런 데(병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거는 굉장히 어떻게 보면 산모의 건강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비용이 지출이 되는 거고요."


기자는 지난 6월 서울의 한 산부인과가 같은 주수의 산모임에도 주소지와 행색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 비용을 달리 받는 실태를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기자가 확인한 이 산부인과의 매출표를 보면 30주 이후 임신중지를 한 여성 중에는 수천만 원을 현금으로 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비급여 의료행위라는 이유로 일부 산부인과가, 수술 사실을 비밀로 하고 싶은 환자들의 마음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와 정책으로는 이런 병원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출산을 한 여성의 몸조리와 회복만큼 임신중지를 한 여성의 건강 회복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도 현실입니다. 전 교수도 이런 현실을 꼬집으며 제도와 정책의 보완을 촉구했습니다.
 

"초기 유산이라든지 중기 유산이라든지 비교적 안전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생길 수 있는 어떤 후유증, 합병증 같은 것도 많지는 않지만 있을 수 있거든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거를 최소화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고요. 또 다음에 임신을 계획할 때도 건강하게 할 수 있어야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안전하게 임신을 종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애를 써야 되고 적어도 산부인과 의사는 그런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진=TVN 화면 캡처)원본보기
(사진=TVN 화면 캡처)
전 교수가 유퀴즈에 출연했을 당시 "임신부의 삶의 질에는 왜 관심을 갖지 않냐"고 반문한 내용이 화제가 됐습니다. 산모가 아닌 아기에만 집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꼬집으며 임신부, 여성의 삶의 질에도 관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는데요, 이번 임신중지 간담회에서 전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서면으로 추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방송에서의 그 말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임신하는 여성과 임신중지하는 여성을 분리해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낙태죄가 폐기된 지 5년이 다 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건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입법자와 정책입안자들도 이런 분리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박수진 기자 start@sbs.co.kr

 

https://naver.me/GbDluE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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