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만회하려 선물 거래하다 1300억 손실
선물 매매 일상적 행위지만, 손실액은 이례적
신한證 내부통제에 심각한 우려 제기되는 상황
금감원, 신한은 물론 필요시 다른 증권사도 점검
신한투자증권이 상장지수펀드(ETF)의 원활한 거래를 위해 호가를 대는 유동성공급자(LP) 업무를 하다가 1300억원의 손실을 내자, 금융감독원은 이 과정에서의 위법 행위 여부와 내부 통제 시스템의 실효성을 점검하기로 결정했다. 필요할 경우, LP 업무를 하는 주요 증권사에 대해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들여다보겠다며 날을 세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신한투자증권이 회사의 돈을 굴리다가 손실을 낸 거라 ETF 투자자의 손해는 없다는 점이다. 다만 손실과 별개로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잃어 회사의 평판 저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신한투자증권의 손실 규모가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현장 검사에 나섰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정도 사안이면 (관련자의) 위법 행위 여부와 (신한투자증권 자체) 내부 통제 부분을 적극적으로 살필 것”고 밝혔다. 신한투자증권에 대한 점검이 LP 업무를 하는 주요 증권사로 확대될 가능성에 대해 이 관계자는 “고민 중이고, 필요하면 실행하겠다”고 말했다. ETF LP 업무를 하는 증권사는 올해 1분기 말 기준 24개사다.
이번 사태는 이달 10일 신한투자증권이 홈페이지에 해당 내용을 공시하면서 알려졌다. 공시를 통해 신한투자증권은 ETF LP 목적에서 벗어난 장내 선물 매매로 13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1300억원도 추정 수치일 뿐 확정된 규모는 아니다. 증시의 움직임에 따라 이 손해액은 줄어들거나 커질 수 있다. 신한투자증권 내부에선 손해액이 더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LP가 선물 거래를 하는 건 일상적인 운용 방식이다. 투자자가 ETF를 원할 때 사거나 팔 수 있도록 이 물량을 받아주는 게 LP의 역할이다. 가령 투자자가 ETF를 1만원에 팔면 LP가 이를 사줘야 하는 건데, LP는 해당 ETF를 갖고만 있으면 상품의 등락에 따라 손익이 좌우되는 가격 변동 리스크에 노출된다. 이런 리스크를 회피(헤지)하기 위해서 투자자로부터 1만원에 ETF를 사는 동시에 해당 ETF 기초지수 내지는 ETF 구성종목의 선물을 판다.
문제는 신한투자증권은 이 과정에서 트레이더의 자율성을 과하게 인정했다는 점이다. 상장된 ETF가 900개에 육박하는 만큼 LP가 모든 거래를 일일이 헤지할 수 없어서 기계적인 헤지가 이뤄지는 게 보통의 경우다. 하지만 신한투자증권은 트레이더가 헤지를 해야 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의 선물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 거래로 선물을 보자 트레이더 A씨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 물을 탔지만, 손해액만 더 늘어났다.
또 A씨는 손실을 감추기 위해 회사에 허위 보고를 올렸다. 선물 거래로 1300억원의 손실을 봤지만, 외국계 증권사와의 스왑 거래(미래 특정 시점 또는 특정 기간을 설정해 금융자산이나 상품 등을 서로 교환하는 거래)를 통해 1300억원의 수익이 발생했다는 식이었다.
이런 허위 보고 탓에 A씨가 최초로 대량 손실을 본 시점은 올해 8월 2일이었지만, 신한투자증권이 손실을 인식한 건 그로부터 두 달 뒤인 이달 10일이었다. 신한투자증권은 계약의 실물이 실재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A씨의 허위 보고를 알게 됐다. 이번 건으로 비춰봤을 때 신한투자증권은 2개월마다 LP의 계약 실물을 대조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A씨가 성과급을 노리고 무리하게 선물 거래를 일으켰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LP 부서는 영업 부서라 개인 성과급은 아니지만 (운용으로 돈을 벌면) 부서의 수익으로 잡힌다”며 “(부서 수익이 나면) 부서원들과 (수익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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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LP 업무는 증권사가 자기자본으로 하는 거라 1300억원의 손실이 났다고 해도 ETF 투자자의 손해는 1원도 없다. 다만 투자자들 사이에선 신한투자증권이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LP 업무를 해왔다고 의심하고 있다. 한 투자자는 “LP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불법, 편법 행위를 일상적으로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간 유사한 행위로 이익을 본 사례가 없었겠느냐”고 반문했다.
문수빈 기자 be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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