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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공정한 전쟁이었을까[이진송의 아니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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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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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 쓴 채 입의 감각으로만 평가
시각·촉각 등 다른 감각 간과되고
음식 둘러싼 서사와 감정은 배제

지역 인프라 차이 고려 안 되고
업계 소수자 여성 활약은 ‘편집’
철저히 육식 위주 대결도 아쉬워


세상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보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하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줘서 어딜 가든 맞닥뜨리고 마는,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정보가 주입되는 이른바 ‘장안의 화제’. 그러니까 안대 쓴 백종원이 입을 크게 벌리는 모습 같은, 글로 설명하다 보니 갑자기 화를 내고 싶어진다.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이야기다. 지난 9월17일 공개된 <흑백요리사>는 유명 셰프 20인에게 무명 셰프 80인이 도전장을 던지는 요리 대결 예능이다.

 100명이 등장하는 규모와 화려한 세트를 내세운 <흑백요리사>는 공정과 계급이라는 시대적 화두를 건드린다. 그리고 명성에 연연하지 않는 ‘공정한 판단’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시각화하고자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백종원과 또 다른 심사위원 안성재가 안대를 쓴 채 보이지 않는 숟가락을 향해 구슬프게 입을 벌리는 장면은 기묘하다. 이 장면이 다양하게 패러디되면서, <흑백요리사>는 초반 눈도장을 확실히 확실히 찍었다. 마지막 회차 공개를 앞둔 지금, 모든 조건을 배제하고 오로지 맛으로만 승부하겠다는 <흑백요리사>의 포부는 어떤 결과를 거둘까? 아니 근데, 애초에 음식이라는 것이 정말로 ‘공정’할 수 있나?


<흑백요리사>의 부제는 ‘요리 계급 전쟁’이다. 애초에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무명을 ‘흑수저’, 유명 셰프를 ‘백수저’라고 부른다. 바둑의 문법을 차용하지만, 흑수저가 ‘흙수저’의 어감을 노렸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 없다. 전통적인 요리 대결 장르라면 흑수저는 선, 백수저는 엘리트 출신의 악이다. 하지만 현실의 인물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이분화되지 않는다. 출신이나 요리를 배운 과정이 다양하고, 방송 경력이 풍부한 백수저들은 겸손하고 우아하다. 단순히 주류에게 도전하는 비주류를 응원하는 구조의 쇼는 아니라는 뜻이다. 제작진은 누구의 우승을 기대하고 판을 짰을까.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기적을 노래하라’고 주문을 건 <슈퍼스타K>처럼 실력으로 현실을 극복한다는 환상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급을 증명할 것인가, 계급을 넘어설 것인가’라는 홍보 카피를 내건 프로그램은 묘하다. 백수저가 우승하면 계급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위계를 강화한다. 그렇다고 흑수저가 우승하면, 어쩐지 제작진의 의도 같다. 물론 프로그램의 생존 여부가 실력과 직결되지 않음은 경연 과정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하지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우승자는 상징적이며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서사 구조에서, 요리 대결은 두 가지 차원에서 결과의 개연성을 확보한다. 첫 번째는 기술이나 재료, 믿을 수 있는 평론에 근거하는 ‘맛의 객관적 묘사’이고, 두 번째는 만든 사람의 정성과 먹는 사람의 추억에 의존하는 ‘맛의 주관적 묘사’이다(허재홍, ‘요리대결만화의 서술전략 연구’, 635쪽). 첫 번째는 4차까지의 요리 대결이고, 두 번째는 세미 파이널에 오른 8인이 자신의 인생을 요리에 녹여내는 미션이다. 솔푸드라는 말처럼, 음식을 둘러싼 스토리와 감정은 맛에 영향을 미친다. 에드워드 리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살며 겪은 정체성 혼란을 알지 못한다면 그가 내놓은 썰어 먹는 비빔밥은 ‘괴식’처럼 보인다. 이 비빔밥의 독특한 모양 또한 요리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음식의 맥락을 삭제하더라도, 맛이란 미각뿐 아니라 시각, 후각, 청각, 촉각의 협업이다. 자, 회차를 앞으로 조금 돌려보자.

 ‘오로지 맛으로 승부’하겠다는 <흑백요리사>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플레이팅만 봐도 누구의 것인지, 요리사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는 이유는 납득이 간다. 그럼에도 요리의 ‘맛’을 ‘입안에 들어간 물리적 한 입이 제공하는 만큼’으로 제한한 발상은 아쉽다. 음식문화 연구에서 다루듯 음식은 다양한 사회적 구조, 섹슈얼리티·인종·계급·민족 정체성 등과 접합하는 장이다. 지극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기에 입안의 감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 사실은 제작진이나 심사위원이 ‘맛’을 구성하는 데 개입하는 복합적인 요소를 누구보다 잘 알 터인데도 말이다. 예능적으로 웃기긴 했지만 맛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기준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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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객관적 묘사’라는 개연성 확보의 실패는 두 차례 이어진 팀 미션에서도 드러난다. 참가자 대부분이 자신의 요리는 하지 못하고 보조 역할에만 소모되다가 탈락하는 구성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엄격한 심사위원을 평가단으로 선정했다가 100인의 미스터리 심사단, 먹방 유튜버 같은 외부인을 등장시킬 때 이 프로그램이 정의하는 ‘맛’의 기준이 모호해진다.


이탈리아식 리소토를 덜 익었다고 생각하는 다수(아마 대부분 한국인)에게도 먹힐 익숙함을 노려야 하나? 아니면 심사위원이 강조하듯 재료 본연의 맛을 최적화하는 기술을 구현해야 하나? 심지어 두 번째 팀 미션은 ‘맛’이 아닌 사업 수완이 기준이다. 평가단인 먹방 유튜버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지원금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오직 맛’으로, ‘맛있어서’ 그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평소라면 하지 못할 경험인 비싼 음식’을 즐기는 결과를 유도했다. 맛있는 음식이 많이 팔린다면 주문 수가 중요할 텐데, 기준은 매출 총액이었다. 메뉴가 제일 비싼 팀이 이겼쥬? 맛으로 승부한다면서유? 2차 팀 미션을 기점으로 <흑백요리사>의 재미는 급락한다. 특히 갑작스러운 팀원 방출이라는 이벤트는 소위 도파민을 자극하려는 의도거나, 제작진이 쉽게 인원을 줄이려는 꼼수다. 


참가자들은 뒤늦은 시점에서 방출이라는 부당한 일을 겪고도 재료 수급이나 준비 시간에서 배려를 받지 못했다. 불공정하다. 방송 후, 참가자들이 개인 채널에서 재료 수급과 관련된 일화를 공개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셰프들에게 짧은 시간 안에 직접 재료를 수급하게 하면서 에드워드 리나 안유성처럼 다른 지역에서 왔거나, 작은 업장을 운영하는 셰프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유명 셰프의 인프라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촉박한 시간 때문에 고기를 잘못 사거나 자신의 주특기를 선보일 재료를 사지 못해 탈락하는 장면은 실력보다 인맥과 환경의 문제라 안타깝다.


지역 차별의 문제와 함께 <흑백요리사>가 간과한 것은 젠더 편향이다. 음식을 만드는 행위는 전통적으로 가사노동의 영역이자 엄마, 아내의 일이었다. 이라영은 셰프는 남성화된 직업이라며, “여성이 만든 음식은 배고픈 식구들을 먹이는 돌봄 형식의 양식이라면, 남성의 요리는 기술적이면서 창의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마치 서명이 들어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이미지를 만든”(<정치적인 식탁>, 도서출판 동녘, 2019, 59쪽)다고 지적했다. <흑백요리사>에서 여성 셰프는 셰프님이 아니라 ‘이모’, ‘어머니’, ‘여신’으로 불리듯이, 쿡방 유행 이전의 요리 방송은 언제나 주부들을 겨냥한 요리교육 방송이고 여성 셰프는 ‘요리연구가’ 정도로 불렸듯이. 

100명을 대접하는 미션에서 단체요리 전문가인 급식대가가 전혀 부각되지 않거나, 평범해 보이는 요리로 승리한 1 대 1 대결이 통편집된 것은 그가 중년 여성이자 스타 셰프가 될 재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잠 안 자고 춘권 피를 썬 트리플스타는 거듭 강조되지만, 급식대가나 이모카세 1호는 ‘어머님’, ‘이모님’이라고 불리며 보조의 역할이 당연시된다.

인생 요리 미션에서 정지선 셰프가 소수의 여성 중식 셰프로 겪어야 했던 고충은 공감받지 못하고, 키친 갱스터가 여성 셰프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는 장면은 편집되었다. 쇼를 재미있게 만드는 드라마적 요소에, 업계의 소수자인 여성 셰프의 이야기는 특수하지만 채택되지 않는 것이다.


중략


요리 대결 프로그램에서 맛의 객관적 묘사는 이야기의 개연성을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또한 공정함을 표방한 만큼 현장을 둘러싼 다양한 변수를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흑백요리사>는 이 부분에서 크게 휘청였고, 재미는 안대를 쓴 채 먹는 입 안의 감각처럼 지극히 일부에 그쳤다. 말하자면 프로그램의 완성도가, “이븐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https://naver.me/IItIh5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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